맛 좀 봐라, 어글리 푸드(Ugly Food)
남자 친구를 오징어로 만드는 영화로 <아저씨>가 있다면, 여자 친구를 주꾸미로 만드는 영화가 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주연을 맡은 배우 한효주의 우아한 외모와 분위기, 목소리로 개봉 당시 연인 동석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영화는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남자 '우진' 역으로 21명의 주요 배우를 포함해 100여 명의 배우들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진은 한효주 배우가 맡은 이수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잘생긴 얼굴이 나올 때까지 자고, 또 자고, 다시 잠을 청한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과 모순된 거 아닌가 비꼬려는 찰나에 페이드 아웃과 함께 우진이 박서준 배우의 탈을 쓰고 등장하는데, 극장 객석에서 '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이 영화의 백미다.
우진처럼 얼굴을 몽땅 바꾸지는 못해도 윤기라도 내보려고 나도 일주일에 두어 번 팩을 한다. 차갑게 해야 더 효과가 좋대서 냉장고에 정성 들여 보관한다. 이렇게 하면 중력의 방향으로 내려앉으려는 피부에 탄력을 부여해서 노화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팩은 헬스&뷰티 스토어 올리브영에서 샀는데, 매장 안을 돌아보면 팩 말고도 '이너 뷰티'라는 수식어를 단 제품이 부쩍 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이너(inner)는 마음이 아니고 장기다. 장기 뷰티. 내면의 아름다움이든 외형의 아름다움이든 미(美)라는 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혹하기 쉬운 것임이 분명하다.
외모지상주의는 인간뿐만 아니라 식물에도 적용된다. 백화점 식품 매장에 진열된 과일과 채소는 손으로 빚은 듯이 모양이 반듯하고 반짝반짝 광택이 돌아 자연에서 나고 자란 작물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낸 게 아닐까 추측할 정도이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그림책에서 딱 이렇게 생긴 사과와 감자를 보고 한글을 깨쳤다. 복숭아는 하트 모양이라고 배워서인지 어릴 땐 무르거나 못생긴 과일은 손도 대지 않았다.
"선미야, 이것도 맛은 똑같아."
못생긴 음식에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 건 독립을 하면서부터 인데, 첫째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귀찮아서였고, 두 번째 이유로는 예쁠수록 과일은 비쌌다.라고 착각했다. 내가 정말로 못생긴 작물을 만난 건 2년 전이었다. 지인의 부모님이 귀농해서 농사지은 첫 복숭아를 무료로 보내줘도 되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귀한 복숭아를 공짜로 주면서도 양해를 구하는 모순이라니. 맛이 없나?
"그게, 좀 못생겼어. 상품 가치가 없어서 팔지도 못하거든. 맛은 똑같으니까 받고 놀라지 말어."
딸기만 한 복숭아를 본 적 있는가? 감귤만 한 복숭아를 본 적 있는가? 복숭아에 뿔이 나서 어떻게 깎아야 할지 난감한 적 있는가? 그렇다. 만약 당신이 도시에 살고 있다면, 시장에서 가끔 만나는 못생긴 과일조차도 외모가 준수한 편에 속한다. 농작물이 국내 대형 마트 진열대에 입성하려면 적어도 미끈한 몸매와 매끄러운 피부, 타이트한 몸무게 기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1/3은 내가 지인에게 받은 것처럼 알음알음 전해지는 극 소량을 제외하고는 폐기된다. 꼭 무게를 달지 않아도 1/3이면 적지 않은 양이라는 걸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못난이 농작물이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 시작은 2014년 프랑스의 대형마트 체인인 인터마르쉐(Intermarche)에서 울퉁불퉁한 다리처럼 생긴 당근을 포스터에 걸면서부터였다.
"못생긴 당근? 수프에 들어가면 상관없잖아."
맛과 영양소에는 문제없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어글리 푸드(Ugly Food)를 싼 값에 판매하는 푸드 리퍼브(Food Refurb) 캠페인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꽤 익숙해진 개념이다. 마트에서 일반가보다 30~50% 저렴한 어글리 푸드 코너를 종종 만날 수 있다. 2018년에 미국에서 설립된 미스핏츠 마켓(Misfits Market)은 3년 만에 유니콘이 되었다.
SBS 예능 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에서 백종원이 못난이 감자를 활용하면서 한국 대중에도 못난이 농작물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포털에 검색해보면 국내 기업도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자취생이 많은 대학가 인근의 마트나, 교내 간식거리로 어글리 푸드가 어떨까 상상해본다. 처음부터 그대로 먹기 꺼려진다면 주스나 잼, 수프로 시작해도 괜찮겠다.
<뷰티 인사이드>에서 우진은 이진욱 배우의 얼굴을 뽑았다가(객석에서 두 번째 탄성이 나오는 장면이다.) 이수의 직장 파티에 가려고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운다. 혹시 잠들었다가 못생긴 얼굴로 변하면 안 되니까. 나는 언젠가 맵씨 나는 옷을 입으려고 보정 속옷의 도움을 받았다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체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우리가 일자로 쭉 뻗은 오이만 장바구니에 담는다면 오이는 평생을 동그랗고 길쭉한 플라스틱 감옥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이의 비타민과 함께 스트레스도 섭취하겠지.
환경 보호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차를 산 것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줘 너무 잘했다고 까지 생각해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소심하게 목소리를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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