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사도 1톤 트럭으로 충분하기를
올해 5월 이사를 했다. 오피스텔을 벗어나 침대 하나가 딱 맞게 들어가는 방 하나와 거실이 분리된 공간으로 터를 바꿨다. 이사할 때마다 가전제품을 이고 다닐 게 막막해서 6평 오피스텔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었는데 코로나를 이길 순 없었다. 주방과 침실과 식탁과 책상이 한 데 섞인 원룸에서 1년 넘게 재택근무를 이어나가기는 어려웠다.
오피스텔을 구해 독립하던 날, 이사하는데 든 비용은 3인 가족 저녁식사 영수금액만큼이었다. 내가 가진 짐은 아버지 승용차로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양이었다. 부모님 도움을 받아 두 시간 만에 짐을 풀어 말끔히 정리하고 우리 가족은 보리굴비를 먹으러 갔다.
4년이 흐른 이번 이사에는 39만 원이 들었다. 1톤 트럭을 가득 채우기 위해 건장한 이사 전문가 두 분이 도와주셔야 했다. 그마저도 일주일 동안 나 나름대로 짐을 정리하면서 75L 들이 종량 봉투를 3개나 비운 거였다. 캐리어에서 책과 이불이 나오고 신발장에서 옷이 나왔다. 물론 거기에 그런 게 들어있는 줄 몰랐다. 가전은 아직 배송 전이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꾸러미가 새 집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이삿짐 참사를 겪고 나니 짐을 푸는 한 달 동안 집기를 사들이는 데 신중해졌다. 문제는 어떻게 구매하는 게 진짜 신중한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최고로 싼 걸 고르는 게 신중한 건가, 최고로 예쁜 걸 고르는 게 신중한 건가, 평생 쓸 물건인지 판단하는 게 신중한 건가. 모든 물건이 살 때만큼은 평생토록 쓸 것 같은 환상과 각오로 들이는 거 아니었던가.
"나는 기능이 하나뿐인 건 안 사기로 했어."
나처럼 혼자서 꽁냥꽁냥 지구를 아끼는 연습을 하는 친구의 기준을 빌려오기로 했다.
제일 먼저 못 사게 된 건 전기밥솥이었다. 전기밥솥이 하는 일은 밥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럼 밥은 뭐로 짓는단 말인가. 나에겐 언젠가 겉멋으로 사들였던 무쇠솥이 있다. 무겁다는 이유로 금세 시들해져 녹슬어가고 있던 무쇠냄비의 녹을 털어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저녁, 일주일에 한 번 솥밥을 만들어다가 얼려두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포기한 건 주방 칼 & 집기 세트였다. 나에게는 이상한 로망이 하나 있었는데, 요리도 잘 안 하는 주제에 넉넉한 주방이 생기면 최소 5개짜리 주방 칼 세트와 국자와 집게, 부침기 등으로 구성된 6종 주방 집기 세트를 거치대에 걸어 전시하고 싶었다. 주방 상판 위에 깔 맞춰 진열된 주방기구 세트를 상상해보라. 멋지지 않은가. 실상은 칼은 두 자루면 충분했다. 작은 과도와 어디에나 쓰기 좋은 크기의 중도. 조리 도구도 국자와 부침 기면 충분했다. 집게도 필요 없다. 우리에겐 긴 젓가락이 있다.
상판에 주방 도구도, 전기밥솥도 없으니 말끔한 게 좋아서 정수기도 포기했다. 맹물보다야 보리차가 맛있으니까. 무엇보다 공간을 낭비하는 이 인테리어. 부잣집 같아서 마음에 들어.
가까운 신혼부부들로부터 들은 명언이 있다. 가전은 거거 익선. 전자 제품은 크면 클수록 좋다는 트렌드를 반영해서인지 1인 가구가 쓸만한 작은 가전은 선택의 폭이 적었다. 내가 냉장고를 구매한 매장은 양문형이 아닌 냉장고가 없어서 상품을 보지도 못하고 주문해야 했다. 중고 매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간이 없어 안고 자는 한이 있더라도 꼭 사야 한다는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도 생략했다. 있으면 편했겠지만 처음부터 없으니 딱히 불편한 줄 모르고 산다. 셋톱박스 등 TV에 따르는 잡다한 장치들이 있길래 내친김에 TV도 들이지 않았다. 가전을 소박하게 들이니 쇼핑에 시간이 쏟지 않아 좋았다. 지구 끝까지 최저가를 찾아 헤매거나 알파벳 하나만 다른 모델명 사이의 차이점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어서 스트레스가 적었다. 이렇게 나름 필수 가전이라는 것들을 생략하고도 우리 집은 더 무언가를 들일 공간이 없다.
쳐다보면 한 숨 나오는 물건들을 모두 버리자 햇살이 좋은 날 집 안에서 넋을 내려놓고 멍하니 쉬고 있을 때 흐뭇할 일 밖에 없다. 지내는 공간에 애착이 더해진다. 자주, 많이 버리면 결국 난 또 환경 파괴자인가 싶었다. 하지만 자주 버려봤더니 결국 구매한 물건의 대부분은 쓰레기봉투에 담길 거라는 걸 알아서인지 사고 싶은 욕심이 적어졌다. 자연스럽게 괜히 쇼핑몰에 들어가 시간을 쓰던 습관도 사라졌다. 여기에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누군가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 할 때 갖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아! 친구들이 갈수록 스님 같아진다며 놀린다.
내가 지내는 곳은 어느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집처럼 텅 빈 공간은 아니다. 누군가의 눈으로 본다면 난 여전히 맥시멀리스트다. 그리고 불현듯 다시 사고 싶은 게 많아질 수도 있다. 아직도 종이책은 포기를 못해서 책장은 불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목표는 미니멀리스트다.
환경 보호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차를 산 것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줘 너무 잘했다고 까지 생각해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소심하게 목소리를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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