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연 속에 살고 있어
오늘 날씨가 맑은지 궁금한가? 인스타그램을 켜보라. 스토리에 온통 파란 물결에 흰구름으로 가득하다면 그날은 산책을 나서야 한다. COVID-19는 자연과 관계의 소중함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사람과 직접 관계하지 못한 만큼 우리는 하늘을 자주 바라보았다. 그래서인지 SNS에는 하늘과, 풀과, 물가를 담은 사진들이 부쩍 늘었다.
그날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슈퍼마리오 게임 배경 같은 하늘이 차곡차곡 쌓였다. 집에 박혀 있느라 이틀 째 신발을 신어보지 못한 날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늘은 나가야지 다짐했다. 출근이라는 장치가 밖으로 꺼내 주지 못하니 친구들이 올리는 사진에 이끌려서라도 나가야 했다. 발을 감싸는 천의 감촉이 낯설다고 느끼며 현관문을 열자 살랑바람이 뺨을 간질였다. 바람은 가로수로 쓰인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에도 숨을 불어넣어 사각사각 마른 잎 비비는 소리를 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과 하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생명의 징후는 소리라는 생각을 했다.
SNS에서 봤던 것처럼 나도 하늘 사진을 찰칵 찍고 당현천 변을 따라 걸었다. 제초작업이 한창이었다. 여름 내 웃자란 풀들을 이용하는 작업자들의 손이 분주하다. 시끄러운 모터의 굉음 사이에서도 개울 물이 흐르는 소리는 제법 우렁차게 들렸다. 지난 이틀간 비가 온 탓이었다. 수량이 불어나 빨라진 물살에도 아랑곳 않고 오리는 동동 여유를 부렸다. 이것들을 꼼꼼히 보고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차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COVID-19는 나에게 반려식물 돌보기라는 취미를 남겼다. 나는 참 보통 사람이라서 온 지구가 앞 뜰 가꾸기와 홈 가드닝 붐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과 날씨를 살피고 분무기 소리를 내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분무질을 하면서 잎을 하나하나 살피고 무르거나 시들지는 않았나, 벌레가 꼬이지는 않았나 근심하는 게 일이다. 손 끝으로 화분 위의 흙을 만져보고 찔러보며 물을 줄까 말까 고민한다. 근무시간 중간중간 베란다로 나와 바람에 흔들리는 잎을 보는 게 이 취미가 주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자연은 최고의 관광 상품이다. 당신은 그곳에 앉거나 누워서 일상이라는 옷을 잠시 옆에 벗어두고 휴식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길에 흙을 밟으며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작은 화분 하나도 보고 있자면 지루할 틈 없는데, 대자연 그 자체는 어떠하겠는가. COVID-19는 사람이 자연의 일부임을 선명하게 밝혀주었다. 많은 생명을 순환하는 자연으로 되돌려 보냈고, 또 자연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만질 수 있는 거리에 남아있는 자연이 많지 않아서,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거나 반려식물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집에서 모시게 되었다. 에어비앤비 등 여행 및 숙박 기업에서는 COVID-19 이후 여행 트렌드로 탈 도시, 친 자연을 예측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을 만끽하러 여행한다. 온몸으로 자연을 소비하는 일개 동물이다. 앞 뜰의 식물과 같이 물과 빛과 바람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쉽게 병든다. 도시는 자연이 충분할 때, 지겨워질 때쯤에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자연의 상당 비율은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기 위해 소비된다. 곡식을 익히고, 가축을 키우고, 그 가축을 살찌울 곡물을 재배하기 위해, 어류를 포획하기 위해 사용된다. 지구 상에 토지 면적 중 1/4 이상이 가축의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된다. 1kg의 닭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3.2kg의 사료가 필요하다. 1kg의 소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20kg의 사료가 필요하다. 이 가축들이 소비하는 물은 지구 전체 물 소비량의 1/3에 달한다. 지금도 가축을 키우고 가축에게 먹일 먹이를 생산하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 면적은 줄어들고 있다.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 만지고 관찰하며 우리를 쉬게 할 수 있는 공간의 대부분이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모든 인류가 고기를 끊는다면 이 토지의 75%를 다시 회수할 수 있다. 자연을 되찾을 수 있다. 환경을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채식이 자꾸 언급되는 이유이다.
베란다에서 돌본 나의 자연은 너무 연약하고 또 강인했다. 5일간 집을 비울 일이 있었는데, 베란다 문을 닫고 갔더니 물을 충분히 줬음에도 바람을 맞지 못해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양 볼이 쪽 빨려서 영혼을 빼앗긴 듯이 줄기와 잎이 흙바닥에 붙어 있었다. 부랴부랴 물을 주고 지켜봤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리고 3일인가 지났을 때 죽은 잎은 여전했지만 줄기에 다시 힘이 생겨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희망해 보았다. 살아있다는 증거가 더 있을까 샅샅이 뒤지던 어느 날 죽은 줄기에서 새 순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풀은 바람 하나가 빠졌다고 죽을 둥 살 둥 할 만큼 연약했고, 죽은 줄기 사이에서도 새 생명을 낼 만큼 강인했다. 실내에서 곱게 키운 녀석도 이토록 기특한데 야생에서 비, 바람을 넘어선 태풍과 홍수, 폭염에 맞서는 진짜 자연은 더욱 굳세고 강할 것이다.
4번의 채식을 시도했고 4번 실패했다. 유제품, 계란, 생선 등 웬만한 건 다 먹는 페스코에 도전했는데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나를 기다려주는 한 계속 도전하고 또 실패할 것이다. 자연이 나를 포기하지 않았듯이.
환경 보호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차를 산 것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줘 너무 잘했다고 까지 생각해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소심하게 목소리를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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