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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May 23. 2018

네 탓이오, 네 탓이오, 너의 큰 탓이옵니다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

꾸벅꾸벅 졸다가 쿵쿵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신도들이 자기 탓이라며 가슴을 쳤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나, 친구를 따라 성당에 갔다.

기타도 치고 드럼도 치고 율동도 하는 개신교 예배와 다르게 가톨릭 미사는 엄숙하고 숙연해서 정말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내 탓 하길 좋아했다.

덕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편이 편해서였다.

누군가를 탓한다는 건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때 남 탓해봐야 그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나쁜 상황이 반전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갑갑했다.

내 탓이라 여기고 나를 바꾸는 게 더 편했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해보는 게 더 희망적이니까.

나만 잘하면 되니까.

하지만 내 탓에는 한계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나를 둘러싼 세계가 더 넓어진다.

더 복잡한 관계 속에 놓이고, 내 힘만으로 제어할 수 없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무엇보다, 못된 성격으로 계속해서 내 탓 하기란 지치는 일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남 탓하기에 푹 빠진 건.

“네 탓이오, 네 탓이오, 너의 큰 탓이옵니다.”

인성이 역행하는 순간이었다.

속이 다 시원했다.


재밌는 건, 남 탓도 오래 하다 보니 배우는 게 있다.


지나친 내 탓은 오만이다.

나만 바뀌면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기저에 있다.

다른 사람의 역할과 영향력을 미약하게 보는 겸손하지 못한 태도가 깔려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라고 말했을 때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내 탓도, 남 탓도 질리도록 하고 나서야 보인다.

‘너 때문이야!’는 ‘네 도움이 필요해!’의 동의어다.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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