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앝 May 17. 2018

손가락은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손가락은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

정말 그렇다.

손가락이 내 속을 얼마나 꿰뚫고 있냐면, 지난 10년간 거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녀석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후회가 없을 정도다.

점심 메뉴 고르기부터 입/퇴사, 이직까지. 만주벌판처럼 넓은 커버리지를 자랑하는 신통방통한 김선미의 손가락 정리를 공유한다.


고민이 많은 너야. 갈림길을 만났니?

지금부터 네 맘이 어디로 기울었는지 알게 해줄게.

옆에 친구가 있으면 더 좋아.


친구에게 지금 네 고민의 선택지 만큼 손가락을 펴달라고 해.

할까? 말까? 는 두 개.

짜장면? 짬뽕? 볶음밥? 은 세 개.

이제 손가락마다 보기를 넣어달라고 하자.

그리고 섞어. 정말 섞이는 것처럼 손가락을 요리조리 돌려 달라고 하면 더 좋아.

섞고 있다는 액션이 중요하거든.

자 이제, 골라!

골랐어?


뭐가 나왔대?

볶음밥?

기분이 어때?

“…”

왜에. 뭔가 아쉬워?

그럼, 볶음밥은 아니야. 볶음밥은 보기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어.

짜장면, 짬뽕으로 다시 골라.

 

뭐가 나왔대?

하래?

기분이 어때?

그래, 하자! 싶어?

잘됐네! 해! 그럼.


애걔? 이게 다냐고? 응!

얼토당토않아 보여도 직접 해보면 감이 뙇! 오니까 생각날 때 속는 셈 치고 해봐.

 갈림길 앞에 섰던 순간을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고민은 이해와 득실을 따지느라 내 욕구를 무시할 때 시작된다. 머릿속 계산기와 속마음이 따로 놀면서 이도 저도 못 하는 거다. 똑똑하고 영리해진 우리는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을 낮추려다가 오히려 더 괴로워졌다. 짜장면, 짬뽕을 고르는 사소한 순간까지도.

 이때, 무작정 결정을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고민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결심의 순간, 잊고 있던 본심이 불쑥 튀어나온다. 분명 볶음밥도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볶음밥 먹을 생각을 하니 애초에 볶음밥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할까 말까 고뇌하다가 ‘하자!’ 결정했을 때 가슴을 누르던 체증이 가시기도 한다. 제아무리 암산 왕이어도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푸는 게 더 명쾌하고,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답을 보고 채점하는 게 훨씬 쉽다.

  오래, 깊이 고민하는 게 능사가 아닐는지 모른다. 마음에 없는 일을 끝까지 해내기란 정말이지 어려우니까. 그래서 셈으로 내린 결정은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후회가 깊다. 썩 내키지 않았기에 놓치고 간 보기가 미련의 뒤꽁무니를 계속 따라다닌다. 하지만 마음의 추가 기울어 일어난 결정은 결과가 뜻한 만큼 좋지 않더라도 ‘ㅋㅋ 그럼 그렇지.’ 하는 후련한 맛이 있다.


역시, 맘대로 하는 게 최고다.


누군가 옆에서 뭐가 더 낫겠냐며 갈팡질팡이라면, 지금이다.

손가락을 빌려주자.

“야, 골라봐.”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안 귀여운 사람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