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씨앝 Jul 01. 2018

10만 년 전, 인류는 불을 발견했다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10만 년 전, 인류는 불을 발견했다. 이후 내내 불씨를 살리고, 지키고, 열과 빛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웠다.

뜨거움에 혼을 다하던 우리가 차가움을 다루기 시작한 건 겨우 100년 남짓.

냉장고 속에서 얼음 한 덩이를 얼리기 위해 보일, 라부아지에, 돌턴, 아보가드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베이컨, 뉴턴 등 교과서 속 철학/과학 스타들을 줄줄이 소환해야 했다.

역사가 100년밖에 안 된 이 신비한 물건에 들어가면 뭐든지 수명이 길어진다.

 


 냉장고가 빛을 발하는 여름은 수박의 계절이다.

계곡물에 돌담을 쌓아 수박을 가둬놓고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지칠 때쯤 쩍! 갈라 먹는 계절이다.

주말 낮, 매미 소리와 함께 난닝구 차림으로 온 가족이 모여 수박 물을 뚝뚝 흘려가며 핥아먹는 계절이다.

 친구들과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한 녀석이 수박 한 통을 들고 나타났다. 오호라 너도 이제 미쳐가는 나이구나. 혼자 지내는 녀석인데 수박은 먹고 싶고 혼자서 한 통 다 먹기는 부담스럽다는 거다. 소분해서 파는 건 또 그 맛이 안 난다나. 하여간 까탈스럽다. 여튼 ‘어떻게 하면 수박을 먹을 수 있을까~’ 노리다가 보인 기회가 오늘. 머릿수가 많은 날이었단다.

 수박은 달았다. 수박이 비싸서인지, 복작복작 모여 먹어서인지 유독 꿀맛이었다. 시끌시끌 수다를 채워가며 수박을 갉아먹다 보니 이렇게 이웃을 한데 모아 밥도 지어먹고, 소 한 마리를 잡아다가 바비큐도 해 먹고, 낚시를 해다가 생선도 회 쳐먹으면 뭐든 더 맛있어지겠다는 공상에 빠졌다. 그래. 옛날엔 이렇게 살았을 거야. 그땐 냉장고가 없었으니까. 상하기 전에 다 먹어치워 줄 다른 입들이 필요했을 거야.

 뭐든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사람이 조미료인 셈이다. 여름날 가족, 친지, 친구들과 멤버십을 다지러 굳이 장을 바리바리 싸 들고 멀리 MT를 떠나는 건 냉장고 없이 지내는 체험을 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함께 요리를 하고 푸짐하게 한 상 차려 나눠 먹는 기쁨을 맛보려고.

할머니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고거 조막만큼 해서 맛이 나겠니?”

할머니는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오면 음식이 맛이 없어진다고 하셨다.


여름날 입맛이 없다면 그건 다 냉장고 때문이다.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