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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Aug 19. 2018

들을 땐 좋은데 내가 하려면 어려운 말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들을 땐 좋은데 막상 내가 하려면 어려운 말이 있다.

좋아하는 이유.

“자기는 내가 왜 좋아?”

준비가 덜 되었을 때 이보다 숨이 턱 막히는 심문이 또 있을까.

이때,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딨냐는 말 따위는 답이 될 수 없다.

다행인 건, 잘 말했을 때 상으로 받는 함박웃음부터 대답이 신통찮을 때 받게 될 눈빛 공격, 면전에 댄 질타까지 듣는이의 피드백이 분명하니 날이 갈수록 너를 좋아하는 이유도 선명해진다.

그래서 ‘자기가 왜 좋은가?’는 난도 낮은 질문이다.

난이도 상의 질문은 엉뚱한 데서 나온다.

몇 해 전 소개팅 자리에서였다.

신사는 나에게 주말에 보통 뭘 하고 지내냐고 물었다.

“아하. 그 영화. 많이들 추천하던데 뭐가 그렇게 좋아요?”

“아.. 그냥 뭐 영상미도 좋고, 배우 연기도 좋고, 음악도 좋고..”


세상에 이렇게 재미없는 대답이 다 있나. 진짜 좋아하는 거 맞나?

볼만한 영화는 원래 다 영상미가 좋고, 배우의 연기가 좋고, 음악이 좋다.

차라리 좋은 데 이유가 어딨냐고 하는 게 나을뻔 했다.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에서 정작 할 말이 없다는 데 놀라 한동안 주변을 살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나 인생 영화가 있냐고 물었을 때 선뜻 말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그 책, 그 영화가 왜 좋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나아가 그 이유를 흥미롭게 설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무렵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볼 땐 참 좋다 해놓고 막상 덮고 나면 뭐가 좋았는지 금세 잊히는 게 책이고 영화다. 그래서 서로의 감상이 따끈따끈 살아있을 때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작정하고 꼬치꼬치 캐물어 줄 사람이 있다는 건 희소하고 귀한 경험이었다.

책 읽기가 작가의 생각을 훔치는 도둑질이라면, 누군가와 같은 글을 읽는 건 여러 사람의 시각과 지식, 경험을 훔치는 똑똑한 도둑질이다.

혼자서 한 글을 다양한 시야로 읽을 수 있으려면 연관된 책을 최소 3권은 봐야 한다. 현대인이 책 못 읽는 제1 이유가 시간 부족이라는데 3권은 너무 많다. 같은 책 읽은 사람 3명이 모이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

연애할 때 자주 질문받고 혼꾸녕이 나서 너를 좋아하는 이유를 열 개는 댈 수 있는 것처럼, 책도 한 5년 꾸준히 질문을 나누고 의견이 오가니 어느새 그 책이 좋은 이유 두어 가지는 말할 수 있게 됐다. TV에 나오는 유명인사가 무슨 책에 어떤 구절이 나온다며 인용할 때 저런 건 어디서 갑자기 샘솟는 건가 했는데, 남에게 설명하는 책 읽기도 햇수가 쌓이니 나에게도 생각나는 구절이 아주 없지는 않더라.

누군가가 무언가를 좋아한다 말할 때 우리 귀는 솔깃해진다.

애정하는 이유를 열정적이고 흥미진진하게 설명할 땐 그 사람이 잘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아저씨가 괜히 잘 팔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자주 해보지 않았기에,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건 대부분 같이하면 쉽게 풀린다.

온갖 것에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해준 독서 모임 트레바리가 2018년 9-12시즌, 함께 이유를 찾아갈 멤버를 기다리고 있다.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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