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아무래도 마시는 공기에도 빈부격차가 있는 것 같다. 난 좀 유난한 콧구멍을 가졌는데, 내 코가 말해준다.
지금 사는 곳은 집이라기보단 방에 가깝다. 침실과 거실과 주방이 경계 없이 한데 모여 하모니를 이룬다. 좋게 보면 아늑하고 나쁘게 말하면 답답하다. 방 안, 유일한 문은 화장실 앞에 달려있다. 아. 열 수 있는 창문도 한 개 있다. 주어진 예산으로 인적이 잦은 곳에 창문이 크게 열리는 방을 구하려고 어찌나 발품을 팔았던지. 두 번은 하기 싫다.
어떻게 이렇게 기막힌 방을 찾았을까 기뻐하던 것도 며칠. 콧구멍은 고통을 호소했다.
'얘야. 공기 질이 형편 없구나. 입구를 봉쇄해야겠다.'
이불 탓인가 싶어 이불을 털었다. 털어낸 먼지가 눈앞에 동동 떠다녔다. 창문을 열어도 별 소용 없었다. 좁은 방에 먼지가 쌓여만 가니 코는 서글피 울다 지쳐 먹먹하다가 꽉 막히는 일이 잦아졌다. 비염 환자는 대기오염 측정기 없이도 미세먼지와 대기 오염도를 알 수 있다.
바람은 보통 낮은 온도에서 높은 온도로 분다. 그러니까 환기를 시키려면 바깥이 실내보다 더 따뜻할 때를 노려야 한다. 최적은 정오 근처이고 넓게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다. 9 to 6? 그 시간엔 환기가 아니라 돈을 벌어야 한다.
통풍의 다른 방법은 맞바람을 이용하는 거다. 환기의 핵심은 순환인데 공기의 순환에 맞바람만 한 게 없단다. 가만 보자. 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는 바람을 일으키려면 창문이 최소 두 개는 필요하다. 창문 두 개라니. 하나 있는 방 구하기도 힘들었다고. 얼마나 부자여야 하는 거야.
집을 나와 방으로 이사하면서 내 꿈은 부자가 됐다. 부자가 되어서 창문이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 중세시대 프랑스, 영국에서는 창문의 크기와 개수로 세금을 매겼다고 하니 창문과 부자의 상관관계가 영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다.
새해 떡국을 마시러 부모님 댁에 갔다. 30년을 넘게 살던 곳인데 낯설다. 궁궐이 따로 없다. 맑은 공기에 콧구멍이 기쁘게 벌름인다.
"엄마 좋겠다. 엄마 집에는 창문이 엄청 많네. 나는 이렇게 많이도 필요 없고 딱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는데."
"그래? 그럼 창문 둘 난 집으로 이사를 해."
부자들은 가난한 이의 사정에 이렇게 무심하다.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