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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Sep 09. 2018

벼가 잘 익을 날씨다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이야, 날씨 좋다! 벼가 잘 익을 날씨야.”

친척들은 모두 도시 생활을 한다.
언제 모를 심고 어떻게 무르익어 수확에 이르는지 사실 잘 모른다.
그냥 이만큼 기막힌 날씨면 벼도 잘 익지 않을까 해서 아무 말이나 던져보는 거다.

올해 여름은 복숭아가 참 달고 맛있었다. 한 입보다 좀 더 크게 썰어 입안 가득 물고 오물오물하면 과육의 식감을 느낄 새도 없이 과즙이 터져 나와 입속 전체를 헹구어 주는데 크. 달다. 달아.
그래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개씩 먹었다.

올해 여름은 평년보다 혹독했다. 비 오는 날이 적고 볕은 지나쳤다. 서프리카, 서하라, 서집트 등 갖은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이래서 사람이 살 수 있겠냐던 폭염 덕에 복숭아는 달았다. 알이 굵어지는 시기에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해를 먹고 당도가 쑥쑥 오르는데 장마랄 것도 딱히 없었으니 과일이 달기 좋은 여름이었다.

나에겐 그저 덥고 추운 게 날씨다.
나들이 가기 좋은지 아닌지가 좋은 날씨의 기준이다.
그런데 날씨가 나 놀기 좋으라고만 있는 게 아닌가보다. 녀석은 복숭아에 맛을 채우고, 묵직해진 쌀알에 벼를 고개숙이게 하고, 나를 살찌운다.
올해 여름 마지막 복숭아 한 알을 입에 넣고 단맛을 즐기고 있자니 내가 날씨를 먹고 있구나 싶다.

애국가 3절 같은 하늘이 계속이다.
밥 맛이 좋으려나보다.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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