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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Oct 21. 2018

경의선 숲길 공원을 걷다 그와 마주쳤다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높고 파아란 하늘에 새털구름이 넘실대던 휴일, 경의선 숲길 공원을 걷다가 그와 마주쳤다. 연남동부터 효창동까지 6km가 넘는 버려진 철길 자리에 나무를 심고 도랑을 내어 만든 공원엔 예전의 음산하고 쓸쓸했던 폐철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밝고 힘찬 기운이 가득하다. 그 기운이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비견된다 해서 구 경의선 철길의 별명은 연트럴파크가 됐다. 20m가량의 좁지도 넓지도 않은 폭이 거닐기도, 잠시 앉아 쉬어가기도 적당하다. 그래서 나도 그랬다.

 공원에 활기를 주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이 길의 주인공은 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트럴파크엔 개가 많다. 네 발을 통통거리며 걷다가 갑자기 주저앉아 뒷발로 목덜미를 긁어대고, 목줄을 쥔 반려인의 다리 밑에서 애교를 부리다가 느닷없이 똥을 누는 그들의 자유로움은 공원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거기서 그를 만났다.

 성인 여성 허벅지 중간쯤까지 오는 키에, 황금빛 털을 뽐내며 맞은편에서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가 개울로 성큼 뛰어들었다. 물과 산책로 사이의 턱은 꽤 높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물방울을 튀기며 걷고 싶은 만큼 걷더니 다시 훌쩍. 길 위로 올라 젖은 발을 털지도 않고 가던 길을 다시 걷는 그의 뒷모습이 가뿐했다.

 주저하지 않음. 감동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가끔도 만나기 어려워진 거침 없음. 보고 듣고 경험한 일이 많아질수록 얼마나 갖기 어려운 능력인지! 그래서 더 많이 안다는 건 더 많이 조심스럽고 두려움이 크다는 거라고 했다. 누군가는 이 조심스러움을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라고 말하기에 개울로 뛰어드는 개를 보며 동경한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개였다면 발을 내디딜 때까지 무엇을 이유로 주저했을까. 잘못 발을 디뎌 넘어질까 봐 무서웠겠지. 물 안에 물컹하거나 뾰족한 무언가라도 있을까 봐 두려웠겠지. 사람들이 쳐다볼 테니 창피할 걸 염려했겠지. 신발은 어째야 하나 걱정했겠지. 발이 젖고 난 후 뒤처리가 벌써 귀찮았겠지.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겠지. 그럼 풍덩! 하는 그 기분은 영원히 모르겠지.

 주저하지 않는다는 건 무지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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