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나는 털복숭이다.
터럭이 솟을 수 있는 모든 부위에 남들의 몇 곱절씩 털 가닥이 송송 이다.
털 많은 계집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눈물이 쏙 빠진다. 이름보다 원숭이, 금수로 더 많이 불리고, 난 정말 진화가 덜 된 걸까 종을 의심케 한다. 너무나 원초적이어서 어른들 보기엔 귀여워 보일 수 있는 놀림과 장난이 정체성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엔 아이를 움츠러들게 한다. 보고 느낀 그대로를 말하는 어린아이들의 천진함엔 잔인한 구석이 있다. 성격이 모나서 망정이지 조금만 착했더라면 뿌리를 찾아 동굴로 들어가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춘기 땐 여름 내내 곁눈질로 팔에 난 털을 살피느라 눈에 쥐가날 뻔 했다. 눈알을 정신없이 굴리며 내 팔과 남의 팔을 번갈아 비교했다. 아마도 내 면도 솜씨가 당시 사내 녀석들보다 좋지 않았을까? 짐승과 원시인까지는 아니어도 그 시절 역시 나는 상처투성이였다.
“어! 대박. 김선미 팔 털 ㅈㄴ많아!”
서른이 넘은 지금은 아무도 나에게 내 몸에 난 털로 말 붙이지 않는다. 심지어 몇 번의 여름을 함께 보내고도 모르고 지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여전히 털복숭이지만 아무도 털털이들에게 신경 써줄 겨를이 없다. 나조차도 내 몸의 털털이들을 예전처럼 집요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도, 친구들도 털 따위보다 중요한 일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이거 뭔가 서운한데.
얘들아 나 털 많다.
털복숭이야.
여기 좀 봐줄래?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