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단순한 나는 칭찬을 받고 나면 없던 힘도 솟는다.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며 투덜대던 순간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칭찬 한마디에 신이 난다.
칭찬은 사족보행하는 강아지도 두 발로 걷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원래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칭찬 대신 '기대'라는 선물을 받는다. 아직 확인하진 못했지만 훌륭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대를 갖가지 영역에서 받는다. 훈늉한 부하직원, 훈늉한 상사, 훈늉한 부모, 훈늉한 효자, 훈늉한 연인, 훈늉한 친구. 누군가는 기대를 부담과 같은 말로 쓴다지만 기대만 놓고 보면 나는 참 잠재력이 대단한 사람인거니 기대란 녀석은 칭찬만큼 좋은 거다.
다만, 기대는 칭찬과 달리 목소리가 없다. 잘 해야 하니까, 잘할만하니까, 잘 하는 게 당연하니까 굳이 누군가 나서서 "잘했구나." 해주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잘했다는 인정과 보상 없이도 제 몫을 해내는 사람이 되는 거였나 보다. 그러고 보니 "기대 이상인걸!"이라는 칭찬은 있어도 "기대만큼 잘했군."이라는 칭찬은 없다.
작년 이맘때쯤, 이직하고 반 년이 지나도 난 지진했다. 칭찬으로 먹고사는 김선미가 칭찬받을 구석이 없으니 점점 작아졌다. 더구나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는 칭찬을 받아도 썩 좋지 않을 터였다. 어쩌지. 칭찬이 고팠다. 탈탈 털면 뭐라도 나올까 싶어 노트를 꺼냈다.
그동안 한 일
할 수 있게 된 일
전보다 잘 하게 된 일
노력 중인 것
노력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
노력해도 잘 안되는 것
...
다시 생각해도 당시 나는 객관적으로 후졌다. 그래도 전과 비교해서 적어놓고 보니 조금은 나아진 게 있었다. '더디지만 좋아지고 있어. 이제 속도만 내면 되는 거야.'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격려에 기분이 썩 괜찮아졌다. 입안을 돌며 까끌거리던 밥맛도 금세 좋아지기 시작했다.
수영을 시작한 지 여덟 달이 지났다. 월반해서 레인을 이동할 때마다 나에게 상을 줬다. 기특해 김선미. 250m를 한 번에 헤엄치다니. 출석도 꼬박꼬박 잘하고 주말에도 연습한 보람이 있어. 아이템을 받아 마땅해. New 수경 하나, New 수영복 두 장, New 수영모자 두 장을 부상으로 줬다. 지루할 틈이 없다.
레인이 바뀌었다.
나는 지금 오리발을 쇼핑 중이다.
오예! 살맛 난다! \>_</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