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그거 알아? 엄마가 싫어하면 핫! 한 거고, 친구조차 싫어하면 힙! 한 거래. 키키킥"
유행이라는 말로 부족해 Hot이라고들 하더니 이젠 Hip이란다. 새로움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갈망은 무수한 취향을 만들어낸다. 가끔 들어가 몰래 훔쳐보는 인스타그램 속 친구들의 일상은 기발하고 개성이 넘쳐 이런 걸 더러 힙스터라고 하나보다 추측한다. 안타깝게도 유행에 더딘 나는 이따금 소외감을 느낀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때, 입문교육에서 TPO라는 말을 배웠다. 왜 회사의 복장 규정을 지키는 게 좋은지 뒷받침하는 말이었다. Time Place Occasion.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맞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부장님도 아이돌 노래를 부르는 요즘 같은 시대의 TPO는 Hot하게 Hip 한 거다. 누가누가 더 힙한가 경쟁하는 사이 촌스러움은 설 자리를 잃었다. 많은 나이도 아닌데 입는 것도 먹는 것도 듣는 것도 구닥다리인 나는 TPO에 맞지 않는 언행을 할까 봐 점점 조용해져 갔다.
연휴 전 친구 하나를 꼬셔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초대했다. 명륜동에 있는 LP 바인데 온갖 흘러간 노래를 틀어준다. 언젠가 비장의 무기랍시고 사람들을 이끌고 갔다가 뭐 이런 촌스러운 데가 다 있냐며 타박을 받았다. 그 후로 누굴 데려가기 더 조심스러웠다.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옆에 선 친구의 눈치를 살살 보며 문을 열자마자 목청이 터지라고 노래를 부르는 딥 퍼플, 토킹 헤드, 신해철, 그리고 장필순. 힙이 지나가는 속도에 보폭을 맞추느라 가랑이가 찢어지던 중 옛날식 반주와 낡은 목소리에 안락함을 느꼈다.
"근데, 여기는 왜 좋아?"
"촌스러워도 된다고 허락받는 느낌이야."
큰 소리로 때 지난 노래를 따라 부르고 흥이 솟으면 벌떡 일어나 춤추는 허름한 바 안의 다른 일행들을 보며 이 공간 밖에서도 마음껏 촌스러울 수 있기를 그린다.
두고 봐라. 나의 촌스러움이 언젠가 힙한 클래식이 되리라.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 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