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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Feb 10. 2019

갑자기 집이 어디서 생겨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아이고 그럼 어떡해? 갑자기 집이 어디서 생겨. 저런. 어쩌면 좋대?"

이모와 명절 인사를 나누던 엄마 낯빛이 어둡다. 언뜻 듣기에 이모가 지내던 임대주택을 비워줘야 한다는 것 같다.

 작년 초겨울 이모네 경사가 있었다. 서른보다는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외아들인 사촌 오빠가 드디어 백년해로 배필을 만났다. 전국에 흩어진 친지들이 모두 모인 대경이었다. 결혼식 전날 나는 이모와 한 침대를 썼는데, 이모는 너무 좋아서 잠도 안 오는지 밤늦도록 깜깜한 천장을 보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대하던 오빠의 결혼이 까닭이 되어 이모는 지낼 곳을 잃었다.

 "법이 바뀌었다네. 애들한테 말도 못 했어."

 사촌 오빠 내외 수입이 4,500만 원이 넘어 그렇게 된 거라고 했다. 응? 식구가 늘었으니 수입이 늘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더구나 결혼하면서 오빠가 이모네 세대 밖으로 나왔으니 임대주택에 사는 이모 가구는 오히려 수입이 줄었다. 이모는 왜 집을 잃게 된 걸까.

 지난 12월, 큰아버지 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큰아버지는 구정이 오기 전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하셨다. 오래간 미국 생활을 하시다가 한국에서 여생을 보낼 마음으로 귀국 한 지 3년 만에 백기를 드셨다. 일흔 넘은 노부부가 한국에서 집을 구하고 정착하기가 경제적으로 쉽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남의 땅에 묻히는 게 영 마뜩잖지만, 미국에 가면 집도 나오고, 생활비도, 일주일에 두어 번 가사 도우미도 지원해준다니 김치 좀 덜 먹어도 그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러고 보니 미국은 부양가족의 개념이 없나 보다. 큰아버지네는 다복하여 장성한 자식이 넷이다.

 TV도 뉴스도 자식과 부모의 삶을 분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미리미리 연습하라고 일러준다. 내 집 마련에 집착하지 말라고도 한다. 우리가 아는 잘 사는 나라들도 월세 내면서 불안하지 않게 지낸다고. 인식을 바꿔보자고 한다.


 외할머니의 거처를 두고 외가 식구들이 모여 여러 차례 회의했던 게 생각난다. 이따금 큰 소리가 나기도 했던걸 떠올려 보면 자식을 다섯, 여섯 낳던 부모님 세대에도 어르신 모시기란 쉽지 않았나 보다. 노년 부부 월 적정 생활비가 230만 원 이라던데, 그마저도 서울은 더 필요하다는데 외동인 나는 엄마 아빠 두 분 계실 집이라도 있다는 게 내심 안심이다.


 나이 듦이 개인사로 치부되니 불효하기 쉬운 세상이다.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 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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