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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Feb 17. 2019

살면서 가장 아까웠던 시간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살면서 가장 아까웠던 시간이 언제야?"


 친구와 커피를 홀짝이다가 재밌는 주제가 나왔다. 살면서 아까웠던 순간은 참 많다. 당장 어제 새벽 3시까지 눈이 시뻘게질 때까지 보던 넷플릭스부터 침대와 한 몸이 됐던 수많은 주말. 공부 안 하고 신나기만 했던 학창 시절. 애먼 관계에 공들이느라 소중한 사람들을 못 챙겼던 때. 다투고 자존심 세우면서 버티느라 마음만 불편했던 몇 시간. 사람은 후회의 동물이라는데 쓰고 싶은 데 쓰지 못해 아까웠던 시간이 어디 한둘일까.

"음. 결정을 미뤄서 어영부영 지났던 시간."


 그중 제일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이다. 넷플릭스 열심히 한 보상으로 넷플릭스는 내가 정말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척척 추천해주고, 주말 내내 침대에서 뒹군 덕에 주중에 체력이 뻗친다. 신났던 학창 시절은 추억이라도 남겼다만 선택을 미뤘던 기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설령 기억나더라도 고민하느라 괴로웠던 감정만 남아있다.

 예전만큼 좋지 않은 연인을 두고 마음을 되살려 보려는 노력도, 끊어내려는 결심도 하지 않아 무의미하게 한참을 더 만난 것. 회사에 남겠다는 결정도 이직하겠다는 결단도 내리지 않아 애매한 연차만 쌓였던 시기. 모임 약속에 거절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시간이 다 되어 터덜터덜 나가 시계만 쳐다봤던 날. 모두 불편하고 찜찜해서 무엇에도 몰두하지 못했던 시간이다.

 나는 왜 아무 결정도 못 내리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며 멀뚱멀뚱 있었을까? 그때의 나는 상황이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결정만이 옳다는 편견과 한번 결정하면 무를 수 없다는 강박에 있었던 듯 하다. 미지근한 관계에 헤어지는 것 만이 답이겠는가. 오랜 관계에서 밍근한 애정이 소소한 노력으로 다시 뜨거워지는 걸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때 연인과 'keep going' 하기로 했었다면 얼마 못 가 이별하더라도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한참을 소모하진 않았을 거다. 이직이나 퇴사만 능사가 아니다. 그때 회사에 남기로 했다면 그 안에서 배울 것과 커리어를 다시 찾았겠지. 결국 퇴직 면담을 하더라도 이력서도 안 쓰고 퇴근 시간만 기다리면서 하루를 대충 보내지는 않았을 거다. 시간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나가 놀아야겠다 결심했다면 한바탕 수다라도 실컷 떨지 않았을까.

 애정 없는 관계를 지속했어야 했다고, 회사에 머물렀어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결심은 흩어진 정신과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준다는 걸 잊지 않고 싶다. 집중해서 총력을 쏟아야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더 빨리 응답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 끝엔 결정이 수반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결정이다. 변화가 없는 것도 결정이다. 결정은 번복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으면 그저 시간만 흐른다.


 알았지 선미야?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 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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