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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Mar 03. 2019

아이들은 놀면서 큰다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아이들은 놀면서 큰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봐도 공기놀이, 술래잡기, 땅따먹기, 팔방 뛰기, 피아노 치기 등 참 이것저것 많이도 하고 놀았다. 하고 놀 게 없어지면 급기야 이름도 없는 독창적인 놀이를 직접 만들어 놀았다. 날마다 같은 친구들과 모여 놀아도 또 놀이터에 나가 놀고 싶었다. 질리지도 않았나 보다.


 놀면서 클 때는 지난 나이인 요즘. 나는 여전히 논다. 월/수/금요일 친구와 수영장에서 만나 헤엄을 친다. 결국 각자 헤엄치지만, 들어가고 나갈 때 발가벗고 샤워장에서 수다 떠는 그 찰나가 묘미다. 달에 한 번 책을 핑계로 친구들과 모여 독서 토론을 한다. 내가 지금 맞는 소리를 하는지 틀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만 하여튼 재밌다. 개발자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모였던 게 몇 차례인데 의지박약으로 말아먹었다. 그래도 프로젝트를 반찬 삼아 먹었던 밥이 꽤 맛있었다.


 머리가 크고 한동안 친구 만나는 일이 재미없던 시기가 있었다. 카페에서 떠들다가 자리를 옮겨 밥이나 먹고 술이나 마시는 일의 반복이었다. 만날 때마다 하는 얘기도 비슷하고, 딱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지도 않고. 그 시간에 책을 한 자 더 읽고 낮잠이라도 실컷 자면서 휴식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와의 놀이가 일상에서 퇴장하는 순간이었다.

 그 무렵 나는 왜 오랜 벗과 보내는 시간에 시큰둥했을까. 친구와 노는 게 다시 즐거워진 후에야 보인다. 놀이에는 놀 거리가 있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어릴 땐 방과 후에, 하다못해 쉬는 시간에 짬을 내서 놀 때마저도 뭐 하고 놀지 함께 모여 모의했다. 일명 놀 궁리다. 놀이가 본업일 때는 종일 놀 궁리를 했는데, 나이 좀 먹었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놀 궁리를 건너뛴다. 20년 전 놀던 방식 그대로 닥치는 대로 노니까 당연히 재미가 없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놀이는 자칫 비장해지기 쉬운 일도 오래도록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목적이 노는 데 있으므로 진지할 순 있어도 심각하진 않다. 소중한 이들과 오래도록 신나게 놀기 위해선 어른들에게도 놀 궁리가 필요하다.


 입사 동기 이직 축하를 핑계로 물맛 좋다는 제주도에 차 마시러 놀러 와서 놀이로 쓰는 일기. 끝.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 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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