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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Mar 10. 2019

자랑을 좀 해야겠다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자랑을 좀 해야겠다. 발탁 월반을 했다. 월반한 지 불과 두 달 만이다. 레인 신참인 나에게 이런 영광이! 역시 난 대단해. 그런데 내가 다이빙을 못 한다는 게 탄로 나면 어쩌지? 강등되는 건가?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레인이 바뀌는 순간까지 나는 레인 꼴찌였다. 같은 레인 물개 청년들도 내 수영 실력이 빈하다고 생각하는지, 언제나 내게 꽁무니를 비워줬다. 그마저도 더딘 헤엄에 곧잘 따라잡혔다. 게다가 지난 두 달은 결석이 잦았다. 수영 실력이 그다지 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금 딱 균형 맞춰서 레인 인원을 조정했으니까 결석하시면 안 돼요!"
 어쩐지 빠르다 했다. 발탁 승진의 내막이 밝혀졌다.

 운칠기삼. 인생은 타이밍이라 때로는 정의보다 운의 힘으로 꼴찌가 앞장설 때도 있는 거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고수도 어처구니없겠지만, 이럴 때 보통은 꼴찌 본인도 어리둥절하다.

 내겐 나쁜 버릇이 있는데 바로 의심병이다. 의심이 많아 종종 작은 칭찬도 마다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선미는 정말 부지런해." 오해다. 나는 내 실체를 안다. 뱃속에서 천둥소리가 나는데도 밥 차리기가 귀찮아 배고픔을 참기로 결정하는 나를 안다. 나의 못생긴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수줍게 칭찬을 거절한다. "아니에요. 저 게을러요." 겸손이 지나치다. 부지런하다는 데 게으르다고 반박할 것까지야.

 의심병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 건 몇 해 전 일 때문이었다. 친구를 통해 좋은 기회가 하나 찾아왔는데 내 가난한 실력이 들통날 것 같아 두려웠다. 친구의 칭찬과 기대가 지나치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민망함에 말했다.
 "너는 내 친구니까 나를 객관적으로 못 보잖아."
 "엇, 그렇게 말하면 서운한데..."
 친구는 세심히 고른 단어들이 무색해지고 거절당한 느낌이라고 했다. 기껏 준비한 선물이 쓸모없게 여겨진 것 같아 무안하다고도 했다. 내 비틀어진 겸손과 두려움이 나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해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인생사 많은 일이 운에 좌우되므로 서 있는 자리가 모두 제 실력 덕인 줄 오만하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겸손을 핑계로 나를 발견해준 귀한 이의 안목을 깎아내리진 말아야지. 운을 방패 삼아 가능성을 의심하는 데 나를 허비하지 말아야지. 못된 버릇을 아직 못 고치고 월반 하나에 별생각을 다 한다. 다이빙 못하는 게 신경 쓰이면 수업에 빠지지나 말아라.




* 일기(日气)는 매주 한편씩 헿요일에 올라옵니다.
* 김민기 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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