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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Apr 07. 2019

다시, 봄이다

글: 김선미, 그림: 김민기

 다시, 봄이다.
 친구에게 바람을 맞았다. 아내와 양재천에 벚꽃 보러 가야 하는 미션이 생겨서란다. 그러고 보니 가로수에 꽃이 피자 산책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미세먼지가 자욱한 궂은 날씨에도 계절의 은총을 받으려는 마음이 거리마다 모였다.

 내 첫 번째 봄의 기억은 딸기 꼭지에 있다. 차가운 물에 갓 씻은 딸기가 소쿠리에 담겨 평상 앞에 올라왔다. 당시 우리 가족은 처마가 드리운 낡은 집에 살았는데, 평상에 앉아 맞은편 처마 밑 돌 틈에서 자라난 풀이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딸기를 입에 넣어주길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선미야, 여기 봐봐. 초록색을 한 번에 잡고 이렇게."

그날 처음 딸기 꼭지 따는 법을 배웠다. 딸기 꼭지 따는 법도 배워야 할 줄 아는 나이였다.

 내 생생한 봄의 기억은 창경궁 벚꽃 나무 아래에서 먹던 주먹밥에 있다. 대학에 입학해 처음 해본 CC였다. 같은 과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단둘이 만난 첫 데이트였다. 어색한 공기에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고궁 산책을 하다 벤치에 앉았다. 친구는 직접 싼 도시락이라며 밀폐 용기를 내밀어 보였다. 우락부락한 외모가 곰돌이 인형처럼 귀여워 보이던 순간이었다. 일개 인간은 날씨가 부리는 마법을 피할 재간이 없다.

 내 마지막 봄의 기억은 수영장 물에 처음으로 발끝을 담그고, 일기의 첫 문장을 고민하던 작년 4월을 소회하는 지금이다. 계절은 처음과 끝의 구분 없이 순환하지만 나는 계절을 봄부터 센다. 겨울, 봄, 여름, 가을은 어쩐지 어색하다. 그래서일까. 봄엔 유독 첫발을 떼던 순간이 많았다.

 무엇이든 처음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봄은 세상의 기억이다.
 다시, 봄이 왔다. 가만히 앉아있기 어려운 날씨다.





* 다음 주, <헿요일의 일기> 첫 번째 시즌 종료 기념 특별 편을 기대해주세요:>
* 김민기 님의 그림은  http://instagram.com/kimminkiki/​ 에서 더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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