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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Oct 23. 2021

비밀은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말할 곳이 없는 거야

환경을 논할 때 내가 사랑하는 책

 인경이네 집은 늘 북적였다. 간혹 인경이가 없을 때에도 복닥거렸다. 방하나에 주방 겸 거실 하나가 전부인 그 작은 집에서 어떻게 10명 가까이 어울려 놀았는지 미스터리지만, 집과 집 사이, 내 어깨 높이 정도 되는 짙은 녹색 문을 열고 왼쪽으로 난 비좁은 통로를 따라가면 인경이네 집이었다. 치킨이나 피자 따위를 시켜먹을 때마다 사장님께 우리는 그 쪽문을 강조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그 문 아래 어디쯤에 적갈색 벽돌을 쿡쿡 찌르면 열쇠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배고프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무리 속에서 누군가 허전한 속을 고발하면 인경이는 김치찌개를 데워줬다. 우리가 김치찌개 냄비를 다 비우고 가는데도 다음날이면 김치찌개가 또 있었다.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우리는 그날 학교에서 겪었던 재수 없는 에피소드들을 나누면서 깔깔 웃었다. 엎드려 자고 있는데, 평소에는 아무 말 않던 영어 선생이 미쳐서 다짜고짜 일으켜 세워 체면을 깎은 이야기. 점심을 먹고 교내 식당을 빠져나가는 길에 침을 퉷 뱉었다가 음악한테 딱 걸린 너를 내가 다 봤다는 이야기. 교복을 줄이면 줄였다고, 늘이면 늘였다고, 양말 높이까지 간섭하는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는 망할 교칙. 3학년 2반의 그 멋진 오빠.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시답잖은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밥공기가 말갛게 비워져 있었다. 수저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면 인경이네 집에도 학교 종이 땡땡땡 울리는 것처럼 일제히 주섬주섬 겉옷을 챙겼다.

 “아오, 김선미 때문에 맨날 이렇게 나가는 거 아니야.”

 이렇게나 배려가 깊었다. 비흡연자인 나를 생각해서 2명이든, 8명이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태우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 같은 잔소리도 꼬박꼬박 챙겨주었다.

 “너 수행평가 안 해?”

 “선미 너, 학원 갈 때 되지 않았어?”

 “김선미, 그러다가 성적 떨어지면 어쩌려 그래.”

 인경이네 근처 편의점 앞에서 학원 봉고차를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수행평가는 너희 반이 더 빠른데. 근데 인경이네 부모님은 대체 언제 오시는 걸까.


 엄마는 내가 인경이네로 하교하는걸 탐탁지 않아하셨다. 걔들은 학원도 안 다닌다니. 조끼는 꼭 코르셋처럼 조여놔서 숨도 못 쉬게 왜 그러고 다닌다니. 문방구 집 아줌마한테 들었는데 물건도 훔친다더라. 그리고 거기 다녀오면 딸 머리카락에서 담배냄새가 아주 진동을 해. 알아?

 엄마가 내가 해 준 말을 모조리 까먹어서 그렇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비록 으슥한 골목에서 산적처럼 나타나 삥도 좀 뜯고, 좀도둑질을 하고, 공부에 관심이 없고, 선생님 말씀도 안 듣지만, 잘 들여다보면 착하고 저들끼리의 신의를 지키는 아이들이었다. 정작 자기는 숙제도, 시험 준비도 안 하면서 내 학원 생활과 시험기간은 꼬박꼬박 챙겨줬던 걸 보면 학생의 직분 중에 공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와 정연이 둘 때문에 겨울이면 모두가 집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담배를 태울 만큼 사려도 깊었다.


 인경이네 집으로 들어서는 쪽문처럼 지나치기 쉽지만, 김치찌개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잘 듣다 보면 오해를 풀 수 있는 단초가 있었다. 대신에 뭐라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복잡하고 긴긴 이야기였다. 저마다 일찍 집에 가기 싫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은 나에게도 있었다. 공부 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심각한 갈등이었다. 대체로 그 갈등은 가정에서 비롯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해소하기 어려웠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집 밖으로 나가서도, 집 밖에서 간섭해서도 안 되는 금기가 있는 나라니까. 아이의 본분 중에 어른의 말에 순종하는 게 있는 것처럼 어른의 본분에도 아이들의 말을 잘 안 들어주는 게 있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우리의 문제 행동에만 집중할 뿐 김치찌개를 끓여주고 잠자코 얘기를 들어줄 여력이 없었다. 어쩌다 어떤 실마리를 듣고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지, 그렇다고 밖으로 나돌게 그냥 둬야 할지 어쩔 방도를 몰라 에휴 그래도 그럼 안되지. 하고 결국 탓하는 말로 마무리했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013년, 나는 자주 억울했다. 일이 이렇게 된 사정이 다 있는데 사수는 자꾸만 본론만 말하라고 했다. 지금까지 말한 게 나의 본론이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본론과 사수의 본론은 다른 것 같았다. 시스템에 항목 하나를 추가하기 위해 다섯 번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게 아무래도 이 문제의 핵심 같은데 사수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바꿀 수 있는 걸 개선할 생각을 해야지 왜 바꿀 수 없는 것에 자꾸 골몰하냐고 답답해했다. 보고서의 빈 화면을 볼 때마다, 억울했던 횟수만큼 사수의 마음을 자주 추측해야 했다.

‘한 장으로 요약하랬는데.’


 대체 이 작은 종이 한 장에 이토록 복잡한 문제를 다 담을 수 있나 수수께끼를 들고 포털에 보고서를 검색하니 과연 연관 검색어로 원 페이지, 한 장 이 따랐다. 중역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아랫사람은 말을 덜어내고, 줄이고, 축약한다. 모든 맥락이 제거된 한 장 짜리 보고서에는 지난 일주일, 한 달 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졸여서 농축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정수만 담아낸 문장이 현대 추상 미술처럼 심오한 만큼 해석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지. 내가 쓰고도 미심쩍은 이 개념 미술품을 가지고 무엇을 결정할 수 있을지 알쏭달쏭 하지만 이걸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의사결정권자들의 역량 이리라 우러렀다.


 몇 년이 흘러 윗사람의 입장을 추측하는 건 출근길에 커피를 주문하는 것처럼 당연한데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뭔지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보다 얼마 전에 입사한 그 신입은 왜 매번 본론 없이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거 이해할 겨를도 없이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이 웅얼거리던 어떤 말을 놓쳐서 일을 그르쳤는데 언젠가 내가 들었던 말을 똑같이 돌려주었다.

 “그런 게 있으면 중요하다고 말했어야지.”


 며칠 전 시월의 중반, 대기온도 3도, 체감온도 -1을 찍었다. 이틀 전까지 반팔을 입고 외출했는데 부랴부랴 목도리를 꺼내야 했다. 작년 4월엔 눈이 내려 역대 가장 늦은 봄눈이라는 기사를 봤다. 역대 가장 늦은 봄눈은 매해 날짜를 갱신 중이다. 지구가 뜨거워진다는데 봄에 눈이 나릴 땐 지구온난화가 루머인 것 같다. 올해는 여름 내내 비가 내렸는데, 작년에는 여름 내내 비가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망고를 재배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태국에나 가야 실컷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 비싼 망고가 한국에서도 난다니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분간하기 어렵다.

 2019년 12월부터 발생해 2020년 1월까지 해를 넘기도록 끄지 못했던 호주의 산불은 지구에 살고 있는 전체 코알라의 1/3도 함께 불태웠다. 우리가 아는 게 코가 크고 귀여운 그 동물뿐이라 코알라가 강조됐을 뿐 이름 모르는 수만 종의 동식물이 모조리 재가 됐을 거다. 이 화재가 역사상 가장 큰 화재인가 아닌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오래도록 자연을 땔감으로 삼았다는 데는 논박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한 여름 최고 기온이 섭씨 10도가 채 안 되는 툰드라 기후에 속하는 아이슬란드는 높아진 기온과 해수면으로 농작물 재배가 가능해졌다. 이것은 희소식인가 비극인가 단언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온을 낮춰야 하는지 높여야 하는지 에라 모르겠다. 이걸 사장님께 보여줄 한 장 짜리 보고서에 담으면 '이상기후'가 될 것이고, 어른들이 보면 뜻대로 잘 다뤄지지 않아서 속상한 '불량 기후'이지 않을까? 뭐가 어떻게 이상하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단어나, 원인까지 해결하자니 까마득해서 드러난 면만 표현한 단어나 적절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환경을 논할 때 내가 사랑하는 책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는 지구에 닥친 위기들을 12가지로 세분화하여 구체적인 수치로 설명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인 여파를 가감 없이 설명하는 바람에 다소 절망적이기도 하다. 또 다른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서는 '기후 양치기'라는 단어를 소개하며 환경문제를 떠들며 관심이 쏠리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원인을 바로 보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우울과 불안감을 지나치게 심어주어 정서적인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절망과 의심을 오가는 내 혼란한 마음을 알아차려준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같은 책도 있다. 모든 것을 바로 돌려놓기 어렵지만 개인이, 사회가, 정치가, 경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단호하지만 상냥하게,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들 모두 원페이퍼가 아니며, 김치찌개가 놓인 한 번의 식사에서 다 들을 수 없는 방대한 양을 담고 있다.


 자생할 능력이 없거나 약하고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중요하고 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희석된다. 복잡하고 중요한 주제일수록 원인을 하나로 요약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 인간은 자연을 약자의 위치에 두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착각하며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모른 체 해왔다. 1878년 영국에서 최초로 발견되어 1952년 12월에는 단 5일 만에 1만 명의 사상자를 냈던 원인에 스모그라는 이름을 달아준 이후로 백여 년이 흘렀다. 스모그 같은 자연의 신호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해지고 재앙으로 언급될 만큼 심각해졌을 땐 엉킨 실타래가 지구의 크기만큼 커져서 낙담하는데 긴 시간을 썼다. 내가 불량 청소년을 키워온 건가 절망하기 쉽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상한 이유를 쉽게 말해주기도 한다. 내가 평범한 어른이 된 것처럼 말이다.



 




환경 보호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차를 산 것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줘 너무 잘했다고 까지 생각해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은 소심하게 목소리를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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