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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한 템포 늦게 뭔가를 알아차리는 때가 많다. 그 이유에 대해 한동안 생각을 해봤는데(빠르게 도달한 결과는 그냥 멍청함이었으나 일단 무시했다), 나는 나에 너무 빠져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거나 연민하는 쪽은 아니고 궁금해하는 형태로.
나는 누구보다 나를 이해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만 이해한다. 관계 안의 '나'는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과거부터 지금까지 행동을 나열하면서 드는 감정은, 공부를 그만두고 싶은 정도의 벅찬 혐오감이다. 이 혐오를 관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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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가 조금이라도 풀리는 경우 막무가내로 주저앉아 다른 상황을 던진다. 날 흔드는 것 앞에서, 단단하게 굴던 의지를 알아서 무너뜨린 뒤 갑자기 의논하지 않은 다른 것에 대한 의욕을 쉽게 만들어 나타난다. 고민, 투쟁, 해결 따위를 싫어해 편한 방법대로 환기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불신과 변덕이 된다. 사람들은 당황한다. 그럴 때 그들의 눈 모양을 알고 있다. 왼쪽은 'ㄷ' 오른쪽은 'ㅅ'.
평소엔 정말 느긋하다. 아니, 행동하지 않는다. 아니, 게으르다. 아니, 게으르다 하는 것보다 더 심한 표현 없나? 게으른 것보다 더 심하게 게으르고 그것보다 좀 더 심하게 게으른 걸 간단히 표현할 만한.
도파민은 이 게으름의 주재료이고 당연히 난 돌이킬 수 없는 중독자다. 상대의 애가 타든 말든 나의 시간은 따로 흐른다. 간혹 은근한 과시를 하다 약간의 겸손함이 필요했는지 게으름을 인간적 어설픔처럼 활용하여 흠 같지도 않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긴 했는데...... 정확히, 이건 대단한 결점이다. 그러니 자신이 게으르다는 표현을 쓰고 싶거든 정말 많이 고민해 보길 바란다. 아, 찾았다. 게으르고 게으르다는 표현보다 더 심한 말. '사람이 아니다'.
난 사람이 맞다.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직 은유다. 그것을 끝내 좀 과장된 은유로만 남기기 위해 오늘도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 근처의 한숨 소리는 이제 일상의 안부와 비슷하다.
그런데 과장이 옅어지고 은유가 힘을 잃고 비로소 정말 사람이 아니게 되는 동안에도 '생각만'하면 어쩌지? 사람이 되기 위해 '생각만'했던 내가 얼마나 더 미울까. 조금씩 다듬어온 사람의 기준이 있다. '생각만'하는 게으른 나는 도파민이 줄줄 새는 기준 언저리에서 우습지도 않은 은유나 하고 있다. 생물로써의 사람은 나에게 의미가 적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보다 나은 사람이고 싶어 생각을 거듭하다 생각이 고였다. 고인 자리에서 삭힌 내가 난다. 열등의 냄새. 남보다 갖추지 못한 것, 모자란 것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는 역시 냄새가 깊고 진하다. 집에선 그렇다 치고 밖에 나갈 땐 표정 위로 표정을 껴입을 수밖에 없다. 이 열등감을 조금이라도 맡게 하면 안 된다. 코를 막는 사람 앞에서 내 혀는 뾰족하고 날카롭게 변할 것이므로. 그런 모습은 끔찍하다.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도파민에 쩐 게으른 상태로 변덕을 준비하면서 열등감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싫어진다. 그게 믿기지 않아 자꾸 나를 확인한다. 그런 시간 위를 걷느라 템포를 놓친다. 그러고는 느린 나에게 또 한 번 미움을 더한다.
누군가는 나의 여유가 참 매력적이라고 했다. 놀리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ㄷ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