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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치미 Nov 08. 2024

거품 같은 소리


 말에 생각이 섞이지 않는다. 반응으로부터 쫓기거나 임기응변이거나 당장 눈이나 귀에 닿는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말해야 할 때도 글 쓸 때만큼 머리 굴릴 수 있는 시간이 압축 형태로 주어지면 참 좋겠네 생각한다.


 이런 거다. 내 반응이 필요할 것 같은 상황에 앞서 신호음이 울린다. 그러면 분위기와 목적을 가늠해 전체 삶과 생각의 역사를 탈탈 터는 정보 탐색이 순식간에 일어나고, 상황을 만나기 바로 전 그에 맞는 정확한 정보들이 나열된다. 혹시 방향이 좀 틀어졌나 싶을 경우에 쓰일 여분의 정보들까지.


 잠깐 "음." 비슷한 추임새를 넣는 동안, 나열한 정보들에 대입해 나의 얘기를 한계까지 구체적으로 전달할 만한 미세한 단어들을 찾고 입을 여는 순간부턴 급가속된 사유가 소리의 파동을 만들어 그들을 밀리 초 단위마다 내용으로 조립, 재조립한다.


 음. 좋아.


 그러니까 그런 게 가능하다면...... 헛 나간 말 덕에 인생이 꼬인 예전 상황 몇 개쯤 이제는 눈감아 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과정을 거치더라도 그것이 글이든 말이든 어쨌든 행위의 대상은 나를 이해하고 있는 내가 아니니까, 상대가 제공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반응이나 서술 같은 게 아닐 확률도 꽤 존재할 것이다. 말끔하진 않다는 거지.


 다만 만족도는 지금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지지 않을까? 적어도 스스로 이해한 상황에 대하여 가진 생각을 충분히 정확하게 전달했다는 그런 만족의 정도는. 혹시 처음부터 상황파악 자체를 이상하게 해서 바보가 됐다 치더라도 출력을 1차원처럼 해서 생기는 이불킥보다야 낫겠지.


 맥주를 즐겨 마신다. 한 입 두 입 들어가면 조금씩 생각이 굳기 시작한다. 꼭 맑게 끓어오르는 국에 전분을 푼 마냥 흐름이 느려지는데, 이 되직한 공간에선 선명한 생각이 떠오르기 쉽지 않다. 가끔 떠올라 '뽁뽁' 소리 내어 터지는 거품들은 전부 헛소리다. 이 헛소리가 그럴싸했거나 혹은 이상하게 들렸을 영혼들을 생각하다가 나의 순수한 언어능력에 대해 따져봤다. 그러다 공상에 빠졌다.


 말 자체에 소질이 없어서인지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상황을 먼저 만들어버리는 게 습관이 됐다. like 박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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