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스가 지그시 노려보며 말한다.
"저기, 돈까스 좋아하세요?"
다시, 내가 묻는다. (화면을 노려보며)
"그니까 어떤 돈까스?"
그는 그게 여자를 꼬시는 방법이라고 했지만.
경양식 까스냐 일식 카츠냐.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고민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열에 아홉은 경양식을 택해 왔으니까. 이번에도 주저 없이 "켱양쉭!!!" 외치는 나. 일식 카츠는 참 운도 없지. 하필 상대가 경양식이라. 얘도 다른 상황에서는 1황급 음식인데...... 아마 가츠동이나 텐동 같은 애들이랑 붙었으면 무적권 너였을 거야. 무. 적. 권.
경양식 돈까스 두 장이 왔다. 조각 내 담은 김치와 단무지, 실처럼 저며 쌓은 양배추 샐러드, 콘 양파 샐러드, 쇠고기 수프, 그리고 단단히 욱여 담은 밥과 함께. 작업실에 있는 햇반 하나 까면 두 끼는 해결할 수 있는 양이다. 햇반 및 배달비 포함 가격 대략 만 사천 원. 한 끼당 칠천 원. 맛있게 잘 먹고 만 원이면 제 값이겠거니 하는데 갑자기 삼천 원 돌려받은 기분. 이런 게 얼얼한 기쁨인가...? 꽤 얼얼하군. 게다가 그 기분, 한 번 더 남았다.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뭐 먹을래?"라는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돈까스라고 대답해!"라고 하는 재촉에 가깝다. 상대가 친구가 아니더라도 "뭐 먹을래요?"라는 질문은 "나 맵으로 일단 돈까스 집 좀 찾아도 될깝쇼?"라는 통보 같은 요구 같은 질문 같은 구걸 같은, 같은 같은 뭐 그런 거 같은 거다.
고민 없는 선택 끝에 메뉴를 돈까스로 정하고 나서야 고민에 들어간다. 경양식이냐 일식이냐. 혼자라면 고민할 일은 잘 없겠지만 함께 하는 경우 바로 수싸움 돌입이다.
"경양식은 고기가 별로야."
"응. 일식 먹을 바엔 수육집 가는 게 나음."
"응. 경양식 잘하는 집 별로 없음."
"응. 반사."
"양배추에 뿌린 케찹 마요네즈 별로임."
"??? 지난번에 유자 참깨 드레싱 먹다 토할 뻔."
사실 이건 싸움에 밀린 사람도 행복한 다툼이긴 하다. 금과 금 중에 금을 고르는 싸움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입에 착 달라붙는 맛과 두툼하고 부드럽고 바삭한 맛 사이에 잘못된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의, 차이를 느끼는 방식들에 대해선 존중한다...... 는 뻥이고 그냥 닥치셈. 경양식 애니웨이임.
나는 하루 지난 맛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게 아니다. 정확히, 사랑한다. 그리고 하루 지난 것들 중엔 식은 그대로 먹을 때 더 즐거운 것들이 있다. 그들을 대표하는 게 경양식 돈까스다. 그러나 이걸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조금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1. 냉장실에 절대 집어넣지 않을 것(절대라는 단어 절대 안 쓰는 편인데 이럴 땐 절대 써줘야지), 2. 팬 프라잉을 한다? 꿈이라고 해줘 제발...... 3. 에어 프라이어? 오븐? 전자렌지? 저스트 킬 뎀 쉿! 4.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아무 포장하지 않은 상태로 건조하고 서늘한 실온에 방치할 것'.
그런데 쓰고 보니 그냥 아무 짓도 안 하면 되는 거네. 음.
방치한다. 그게 너와 내가 남은 경양식 돈까스를 존중하는 최선의 방식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까다로운 건 생각이 다 했다.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이제 하루 지나면 적당히 눅눅하고 적당히 바삭한, 튀김과 고기 중간 어디쯤 만나 서로를 겸손하게 녹이다가 끝내 엉겨 붙고 만 질감과 풍미를 기분 좋게 느낄 수 있겠지. 그 위에 설탕을 치건 액젓을 들이붓건 아무 상관없다(쿡쿡). 어쨌든 그 상태의 돈까스는 대충 무슨 짓을 해도 맛있는 거다. 더군다나 따뜻한 밥과 함께라면...... 우음...... 그러니까 꼴깍 경양식 돈까스 꼴깍 를 밖에 가만 놔두는 꼴깍 것, 그 자체가 꼴깍 최고의 조리 꼴깝 다.
그렇게 남은 돈까스 한 덩이, 식탁 위에 있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고마움을 담아 바라본다. 무려 백 퍼센트라는 믿을 수 없는 확률로 날 행복하게 할 것이므로. 그럼 내일 점심을 기대하며 이만.
여름? 비? 건조하고 서늘한 곳이 없으시다고요?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