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에 가면 한 번 먹어봄직한 음식이 있다. '스프 카레'다. 짱 맛있다. 왕왕왕 맛있다. 인도와 중국, 일본 이 세 나라 식탁 위 냄새들이 균형감 있게 섞여 있다. 엄마표 카레를 하루 지나 다시 끓인 것보다 쪼끔 더 맛있다. 고, 일단 써보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기억이 옅다. 어쨌든 이 스프 카레 위에 토치로 지진 느타리버섯이 한 무더기 올라오는데...... 나 죽어.
버섯을 좋아하게 된 계기다. 그전에는 싫었다. 사람의 입맛은 집이 만든다고 했다. 우리 집에선 버섯을 늘 물렁하게 먹었다. 물렁물렁. 우욱... 그렇게 생긴 입맛은 편견이 됐다. 밖에서도 물렁물렁. 우욱...
버섯은 물렁한 거. 물렁하면서 이상하게 맛이 비리고 다른 재료 식감까지 방해하는 거. 그게 어떤 버섯이든 맛이 없어 관심이 생기지 않아 이게 그게 저게 그냥 그런 거. 버섯 좋아한다는 사람을 이름 모를 야채 한 주먹 씩 보란 듯 집어먹는 사람보다, 아니. 갑자기 소매 걷으며 수줍게 감춰 둔 이레즈미를 드러내는 형님들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 그러는 건지 생각해야 하니까. 생각엔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 에너지는 딱 내 행동 되짚을 만큼만 충전해 있다.
스프 카레 위의 느타리버섯은 어떤 변화 같은 거였다. 맵짤쿰쿰한 국물에 적셔 바사삭 오도독 씹은 다음 한껏 맛을 취하고 나서야 앞서 느낀 게 고소함(그 이상의 무엇)이란 걸 알았다. 뭐지. 트릭인가. 먹을 만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맛있잖아. 버섯이 이렇게 맛있었음? 낯선 땅에서 고생하다 입 댄 낯선 음식이 마침 입맛에 꼭 맞았기에 딸려오는, 같잖은 플라시보 같은 건가? 아니다. 확실히 변했다. 분명히 비렸는데. 분명히 물렁했는데... 신기하군. 싫었던 게 한 순간 좋아진다고들 하는 얘기가 마냥 판타지는 아니었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말에 사랑 대신 사람을 집어넣으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이 변화는 좀 참신했다. 사람이 어떻게 변해?
이렇게.
고작 입맛만 변한 게 아니다. 이건 인식이 변한 거다. 인식이 변했다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얘기라서. 그러니까 그때는 버섯이었지만 언젠가는 버섯이 사람으로, 사람이 관념이나 이념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버섯 주변에는 '다른 배경'과 '다른 조리', '기대했던 음식'이라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렇게 조건이 딱 주어지는 상황은 쉽게 생기지 않을 거다 아마.
올리브유 두 바퀴 두르고 뭉텅뭉텅 찢은 새송이 버섯을 볶다가 으깬 마늘을 넣는다. 마늘이 노릇노릇하게 변할 즈음 빻은 후추를 뿌린다. 그리고 맛소금 한 꼬집. 불을 끈다. 소분한 버터 조각 하나 넣어 천천히 녹인다.
겁나 맛있군.
죽도록 싫은 그 친구랑 언젠가 같은 식탁에서 이 맛을 느낄 수 있을까?
설마.
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