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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치미 Nov 15. 2024

경양식 애니웨이


 스윙스가 지그시 노려보며 말한다.


 "저기, 돈까스 좋아하세요?"


 다시, 내가 묻는다. (화면을 노려보며)


 "그니까 어떤 돈까스?"


 그는 그게 여자를 꼬시는 방법이라고 했지만.


 

 경양식 까스냐 일식 카츠냐.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고민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열에 아홉은 경양식을 택해 왔으니까. 이번에도 주저 없이 "켱양쉭!!!" 외치는 나. 일식 카츠는 참 운도 없지. 하필 상대가 경양식이라. 얘도 다른 상황에서는 1황급 음식인데...... 아마 가츠동이나 텐동 같은 애들이랑 붙었으면 무적권 너였을 거야. 무. 적. 권.


 경양식 돈까스 두 장이 왔다. 조각 내 담은 김치와 단무지, 실처럼 저며 쌓은 양배추 샐러드, 콘 양파 샐러드, 쇠고기 수프, 그리고 단단히 욱여 담은 밥과 함께. 작업실에 있는 햇반 하나 까면 두 끼는 해결할 수 있는 양이다. 햇반 및 배달비 포함 가격 대략 만 사천 원. 한 끼당 칠천 원. 맛있게 잘 먹고 만 원이면 제 값이겠거니 하는데 갑자기 삼천 원 돌려받은 기분. 이런 게 얼얼한 기쁨인가...? 꽤 얼얼하군. 게다가 그 기분, 한 번 더 남았다.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뭐 먹을래?"라는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돈까스라고 대답해!"라고 하는 재촉에 가깝다. 상대가 친구가 아니더라도 "뭐 먹을래요?"라는 질문은 "나 맵으로 일단 돈까스 집 좀 찾아도 될깝쇼?"라는 통보 같은 요구 같은 질문 같은 구걸 같은, 같은 같은 뭐 그런 거 같은 거다.


 고민 없는 선택 끝에 메뉴를 돈까스로 정하고 나서야 고민에 들어간다. 경양식이냐 일식이냐. 혼자라면 고민할 일은 잘 없겠지만 함께 하는 경우 바로 수싸움 돌입이다.


 "경양식은 고기가 별로야."


 "응. 일식 먹을 바엔 수육집 가는 게 나음."


 "응. 경양식 잘하는 집 별로 없음."


 "응. 반사."


 "양배추에 뿌린 케찹 마요네즈 별로임."


 "??? 지난번에 유자 참깨 드레싱 먹다 토할 뻔."


 사실 이건 싸움에 밀린 사람도 행복한 다툼이긴 하다. 금과 금 중에 금을 고르는 싸움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입에 착 달라붙는 맛과 두툼하고 부드럽고 바삭한 맛 사이에 잘못된 선택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의, 차이를 느끼는 방식들에 대해선 존중한다...... 는 뻥이고 그냥 닥치셈. 경양식 애니웨이임.


 나는 하루 지난 맛을 사랑한다. 좋아하는 게 아니다. 정확히, 사랑한다. 그리고 하루 지난 것들 중엔 식은 그대로 먹을 때 더 즐거운 것들이 있다. 그들을 대표하는 게 경양식 돈까스다. 그러나 이걸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조금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 1. 냉장실에 절대 집어넣지 않을 것(절대라는 단어 절대 안 쓰는 편인데 이럴 땐 절대 써줘야지), 2. 팬 프라잉을 한다? 꿈이라고 해줘 제발...... 3. 에어 프라이어? 오븐? 전자렌지? 저스트 킬 뎀 쉿! 4. 이게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아무 포장하지 않은 상태로 건조하고 서늘한 실온에 방치할 것'.


 그런데 쓰고 보니 그냥 아무 짓도 안 하면 되는 거네. 음.


 방치한다. 그게 너와 내가 남은 경양식 돈까스를 존중하는 최선의 방식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까다로운 건 생각이 다 했다. 나는 행동하지 않는다. 이제 하루 지나면 적당히 눅눅하고 적당히 바삭한, 튀김과 고기 중간 어디쯤 만나 서로를 겸손하게 녹이다가 끝내 엉겨 붙고 만 질감과 풍미를 기분 좋게 느낄 수 있겠지. 그 위에 설탕을 치건 액젓을 들이붓건 아무 상관없다(쿡쿡). 어쨌든 그 상태의 돈까스는 대충 무슨 짓을 해도 맛있는 거다. 더군다나 따뜻한 밥과 함께라면...... 우음...... 그러니까 꼴깍 경양식 돈까스 꼴깍 를 밖에 가만 놔두는 꼴깍 것, 그 자체가 꼴깍 최고의 조리 꼴깝 다.


 그렇게 남은 돈까스 한 덩이, 식탁 위에 있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고마움을 담아 바라본다. 무려 백 퍼센트라는 믿을 수 없는 확률로 날 행복하게 할 것이므로. 그럼 내일 점심을 기대하며 이만.


 여름? 비? 건조하고 서늘한 곳이 없으시다고요?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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