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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치미 Dec 06. 2024

배가 뒤틀린다


 "난 정치에 관심 없어."


 "니가 그 말 두 발 뻗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건 니가 안 갖는 관심을 다른 사람들이 가져줘서 그래."


 "오늘 하루 잘 버티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오롯이 나에 집중한 글 몇 줄 쓴 다음 푹 자면 그만이지 사는 게 뭐 별 거 있어?"


 "별 거 있는 사람들 많던데? 너 버텼다고 하는 그런 오늘이라도 오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날을, 목숨 걸고 버티지 않았음? 그들에겐 매일이 별났겠지."


 "알 게 뭐야. 그러든 말든. 나는 나야. 내가 선택한 삶이 아냐. 난 태어날 마음 없었어."


 "다 그래. 다 선택하지 않았어. 자기 삶을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이 지구에 있긴 함?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선택 사항에 대한 너의 책임은 좀 가벼울 수 있다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삶이기 때문에 스스로라도 보상해 줘야 된다는 거?"


 "그렇지."


 "그러면 근데 왜 굳이 보상하려고 노력해?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면 그냥 죽으면 되잖아."


 "...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함부로 말하지 마."


 "너의 어쩔 수 없는 그 삶이 죽음이란 것보다 조금의 가치라도 더 있다면, 너도 그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몰라. 양 쪽 말 다 들어봐야 해."


 "그렇지. 마루타 부대, 아우슈비츠 수비대 애들 말도 들어봐야지. 그렇지?"


 "2024년 한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된 나라고 우리는 안전과 자유에 대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돼. 여태 아무 문제없었잖아. 머리 아픈 얘기는 하지 마."


 "계엄."


 "그건 야당이 의석 독식하면서 사사건건 특검, 탄핵 외치니까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그랬겠어.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야당이 국회를 독식한 건 어떻게 이뤄진 건데?"


 "... 투표."


 "투표는 누가 하는 건데?"


 "국민..."


 "국민이 왜 표를 몰아줬을까."


 "..."


 "그리고 '오죽하면'과 '비상계엄'을 같이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한다면 '비상계엄'이 뭘 뜻하는지 몰라서 그런 건데... 그런데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거 봐 봐."



 "국회는 어디 딴 나라 세상이 아냐.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목소리 내는 곳이야 그냥. 국회 하는 짓 보면서 눈살 찌푸릴 때 많잖아? 미안하지만 그건 국회만 그러는 거 아냐. 너도 그래. 나도. 우리도. 집단을 이루고 있고 에고라는 게 존재한다면 다른 집단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어. 그 마찰의 파편들을 밖에서 조망할 땐 국회의 민낯이나 네 집단, 내 집단의 민낯이나 다 똑같아. 그게 사람 사는 곳이야. 태어남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왕 태어난 거 어떻게든 좋은 선택을 해보려고, 태어남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좋은 선택권을 주려고 우리가 직접 뽑은 사람들이 모여 싸우는 곳이야. 물론 그중엔 개인의 생존, 생존 이후의 포식을 바탕에 깔아 둔 사람들도 있어. 그것 역시 우리네 모습과 다르지 않지. 어쨌든. 그러니까... 그 사람 사는 곳의 대표들을, 그러니까 한 개인이 우리를! '1번'처럼 한다고 하잖아. 개인의 '오죽하면'이 5천만의 '자유와 생명'과 등치 되는 거, 그거 아니야 절대. 우주만큼 절대."


 "반 국가 세력이라잖아."


 "누가. 누가 반 국가 세력이야? 우리가 192석 만들어 준거야. 그게 반 국가 세력이야? 국민의 85프로가 지지하지 않고 국민의 3분의 2가 반 국가 세력이면, 잠깐 이거 계산 어떻게 되는 거냐. 누가 국가고 누가 반 국가 세력임?"


 "몰라... 어쨌든 난 정치에 관심 없어. 오늘 하루 할 일 마치고 맛있는 거 먹고 뽀송하게 샤워하고 자기 전 차 한 잔 마시면 그만임."


 "씨발... 존중한다. 너도 사람이니까. 난 제발 니가 정치에 관심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오래 유지됐으면 좋겠어. 생존이 아니라. 그런데, 사람 아닌 게 사람을 부려서 사람을 해치는 상황은 도저히 못 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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