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쿼터'가 들어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파운더'라는 단어는 뭘 말하는 걸까. 얼른 떠오르지 않으니 일단 제친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더블'과 '치즈' 뿐이다. 게다가 이름 하나에 쿼터와 더블을 같이 쓴 건 뭐지. 절반은 알겠는데 절반이 미덥지 않아 하던 대로 빅맥이나 부른다. '배고플 때의 모험은 너나 해'라는 말, 꼴딱 삼키며. '더블 쿼터파운더 치즈 버거'를 한 입 베어 물기 전까지의 일이다.
운동회였나 개교 기념식 전이었나. 아니면 반장 선거 다음이었나. 비슷한 어떤 행사 즈음 반 친구 어머니께서 이름 모를 햄버거를 돌리셨다. 초딩 때다. 별 게 아닌 것으로도 한창 '우오옷' 비슷한 괴성을 지르던 때. 그런 시기를 보내던 나에게 이 날 받은 햄버거란 너무나 별 것이었다. 포장지를 벗기자마자 훅 치고 들어오던 햄버거 냄새가 여전히 콧속 어딘가에 남아있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외치고 '꿀꺽' 마침표 찍는 시간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분 단위로 넘어가진 않았을 거다 아마. 아무튼 전에 맛본 것과는 조금 다른, 야채도 없고 조금의 단 맛 마저 없는. 빵, 패티, 피클, 케찹, 머스터드. 이게 전부...... 어딘가 맛이 허전하면서 어딘가는 꽉 채운 맛. 한 입 먹고 궁금해 한 입 더 먹어보고 싶은 욕망이 흑염룡처럼 솟는 맛. 시간이 지나서야 안 거지만 사실은 그게 '햄버거'의 전부였다. 이를테면, 근본. 갓츄.
나에겐 돈이 부족했고 조금 있더라도 감히 햄버거 선생님을 모실 만큼의 여유란 없었다. 유일한 초대권은 부모님 주머니 깊은 곳에 있었는데, 초딩을 경험해 본 예전 초딩들은 알겠지. "부모님은 그런 분 초대하려고 주머니를 뒤지진 않으셔." 아니면 그런 것에 쓸 돈만 일부러 주머니 깊은 곳에 두신다던가. '오늘은 한 번쯤 허락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두 분 안에 서기만을 바라다가 난 인내라는 걸 배웠다. 그리고 그 인내로부터 먼저 말하지 않는 법을 또 배웠다. "난 절대 먼저 말하지 않아." 몇 차례 썸이 실패한 이유다.
또르르.
학교 행사의 그날은 아무 인내 없이 첫 번째 햄버거를 쥐게 된 날로써, 그런데 하필 손에 쥔 햄버거의 맛이 다른 것들과 달랐기에 특별한 날로 기억하고 있다. 맛은 또렷하게 남았지만 나머지 기억이 희미해 더 특별하다. 뭔가 갬성 돋는 글 한 챕터 정도는 쓸 수 있는 사건의 구성이랄까. 예를 들어 '뽀얀 기억 속에 너의 온기만 오롯이 남아'같은 류의... 우웩. 도로시 나라시 오이시. 갑자기 쓰기 싫다.
패스트푸드의 꼭대기에서 햇살 대신 화살이나 맞다가 끝내 정크 푸드가 되고 만 이 기구한 햄버거를 늘 연민했다. 괜히 과장스레 꾸며낸 얘기가 아니다. 진심으로 그랬다. 지닌 내용에 비해 너무도 하찮은 취급을 받았으니까. 그런 취급을 하도록 부추기는 미디어 역시 놀랍도록 미웠고. 이토록 균형 잘 잡힌, 맛있으면서 단순한 먹거리가 대체 어딨음? 그래서 가끔 햄버거를 입으로 꼭 안았다. 안아줄 때마다 전했다. 너만 한 아이는 다시없을 거라고. 수제 버거? 그건 햄버거가 아니다. 그냥 수제 버거다. 나에게 의미있는 햄버거란 '프랜차이즈 앤 패스트푸드'밖에 없다.
그러나, 연민을 하면서도 사랑하진 않았다. 안고 싶어 죽겠는 그런 감정은 아니었으므로. 먼지처럼 돌아다니는 주변의 편견들에게 열심히 항변하면서 가끔 생각나면 한 번씩 찾아가거나 초대해 보는 거지. 그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건 사실 따로 있었는데... 그게 그러니까, '그날의 햄버거'.
먹을 때마다 생각났다. 생각날 때마다 배가 울었다. 새로운 프랜차이즈, 새로운 버거를 만나면 매번 기대를 하다가도 매번 실망한 채 퉁퉁 부은 배를 측은히 쓰다듬다 자리를 떠난다. '너도 그 아이는 아니었네. 그 아인 대체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다른 날과 다르게 그날은 돈까스 대신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친구 조 아무개 씨는 전형적인 맛알못으로써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다. 아무거나 대충 잘 우물거린다. 아, 맛알못 중엔 감각 자체는 날카롭거나 확고한 입맛을 가진 부류가 있는데 조 아무개 씨는 그런 것관 상관없이 천재형 맛알못이다. 그냥... 둔감함이 너무 예민한 사람. 어설픈 요리에겐 고마움을, 칭찬을 기대하는 요리 앞에서는 화병을 불러오는 뭐 그런. 이렇게 맛에 대한 변별력이 자고 일어난 내 뒤통수처럼 평평함에도 딱 두 가지만큼은 불룩 솟아있다. 바로 돈까스와 햄버거다. 이들에 대해서 만큼은 이상하게 나보다 상세히 말한다. 실제 그렇게 느끼는지 아니면 어디서 학습해 온 것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버거마다 쓰는 쇠고기 패티가 달라."
"그래?"
"그런 것도 못 느껴? 둔하네."
"어이가 없네."
"그리고 같은 프랜차이즈면 세계 어딜 가도 햄버거 중량은 작은 오차 범위 안에 있어."
"확실해?"
"확인은 안 해봤어."
"확인하고 말해."
"야채 빼고 먹으면 고기 감칠맛이 확 살아나."
"너 감칠맛을 알아?"
"그래서 햄버거는, 맥도날드야."
"감칠맛 아냐고."
"맥도날드라고."
"버거킹."
"빅맥 꺼져."
"??? 와퍼 말하는 거야?"
"와퍼가 뭔데. 먹는 거? 아무튼 빅맥 꺼져."
"혼나고 싶어?"
"너 같은 햄알못이 뭘 알아."
"혼나고 싶어?"
"너도 내가 먹는 거 먹어 봐. 그리고 절 한 번 해."
"혼나고 싶어?"
"하찮아 너."
그렇게 우린 맥도날드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시키는 메뉴를 이번엔 자세히 관찰했다.
이름에 '쿼터'가 들어가 충분치 않아 보인다. '파운더'라는 단어는 뭘 말하는 걸까.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더블'과 '치즈' 뿐이다. 게다가 이름 하나에 쿼터와 더블을 같이 쓴 건 뭐지. 절반은 알겠는데 절반이 미덥지 않아 그냥 하던 대로 빅맥이나 부르려다가.
야채가 껴 있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패티가 두 덩이라는 것도. "얘 패티는 다른 애들이랑 고기가 달라. 가격도 비쌈." 옆 사람(조 아무개 씨)이 소름 돋게 가까이서 중얼거리는 것도 듣고.
"배는 고픈데... 아 진짜. 조 씨, 나 모험을 해야 할까?"
"이따 절 할걸?"
"손절?"
자리에 앉아 대충 폰이나 보고 있었다. 그가 한참 안 보이더니 푸짐한 세트를 한 아름 들고 계단을 올라온다. 추가로 이것저것 많이 시켰나 보다. 발 리듬에 맞춰 두근두근. 뭐지. 왜 설레지. 그래, 모험은 원래 이런 거니까. 콩닥콩닥. 미지의 맛, 그러나 기대보다 나을 거라며 혀를 간질이는 예상 군침.
"얌마. 잡솨."
그의 볼이 발그레한 것처럼 보이는 게 매우 언짢았다. 팰까?
감튀를 트레이에 쏟아놓고 케찹을 한 군데 모아 짠다. 코울슬로의 비닐을 벗겨 한 차례 핥는다. 그리고.
그리고,
햄버거를 집어 든다.
사이즈에 비해 무겁다.
와우. 묵직하네.
포장을 한 겹 두 겹 연다.
응?
냄새가 달라. 다른데? 뭐야 너.
한 입 크게 베어문다.
응?
두 입.
"어때. 지려?"
아. 아. 아.
미쳤군.
미쳤어.
그래서 너를 지금.
너를.
여기서 만나네.
정확히 너는 아닌데
다시, 정확히 너네.
내 키가 자랄 때 너도 자랐구나.
반갑다.
너무 반가워 미칠 것 같다.
"더블 쿼터파운더 치즈 버거."
그래, 더블 쿼터파운더 치즈 버거.
네 이름 짓는 법을 알았으니
며칠은 먹어야겠다.
(그리고 난 3kg가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