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이별 극복기
지난주 여의도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고 왔다. 즐겼다는 단어를 주저 없이 꺼낼 수 있는 건 이별 상황으로 인해 며칠 만에 되찾은 웃음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감사한 주말 이어서다.
이 호텔 숙박 예약 내역은 취소 불가에 환불 불가인 이 상품은 사실 버리고 싶었던 골칫거리였고 되도록이면 아예 처분해 버리고 싶었다. 30만 원 가까이 주고 산거라 돈도 무지하게 아까웠고 멀쩡한 돈이 새나가는 게 참 마음 아프기도 했다. 어떻게든 양도를 해보려고 인스타그램에 DM을 달라는 공지를 올려보고 당근마켓에도 올려봤는데 소소한 소비 치곤 거액의 돈을 주고 거래하는 위험이 있다 보니, 찔러보기가 난무하고 너무 저렴하게 후려치기를 해서 기분이 나빠졌다. 차라리 거기를 내가 가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호텔 방을 거래하려던 가진 노력은 별로 달갑지도 않은 과정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조용히 썼을 텐데 노력해 볼 만큼은 해봤다.
혼자 있는 밤은 두렵고 무서웠는데 외출을 감행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고, 나 역시 주변의 여러 명에게 찔러보기를 했다. 나와 함께 놀지 않을래? 슬픔을 반으로 나눠볼까? 나 혼자 무서운데 같이 있어줄래?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낼까? 등등 이런 말을 제안하면서도 내심 이래도 되나? 나 진자 혼자 있고 싶은데?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내키지 않는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혼자 있고 싶어도 혼자 있기 무서운 상태. 그 주말의 나는 슬펐다가 무던했다가 밝았다가 어두웠다가 전전긍긍인 상태였다. 이별의 소회는 고민하던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개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을 끊었다는 상태가 너무나도 슬펐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하게 기능을 하고 있기에 또렷하게 작동하는 이 두 개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 결정타를 날렸으니 시드니에 잠깐 살 때부터 inner child를 잊지 않고 있는 언니를 떠올리며 호캉스를 제안했다. 홈런을 맞았고 골대에 골이 정확하게 들어박혔다. 우리는 늘 그렇듯 급작스러운 번개 호캉스를 좋아했는데 그날도 언니가 바로 기차표를 예매했고 올라올 채비를 마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순간 혼자 지낼까 그냥 약속을 취소할까? 오늘 밤에 울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에서 오늘 뭐 입고 갈까? 언니랑 어떤 음식을 먹을까? 언니랑 여의도 한강에 놀러 가볼까? 주변에 맛있는 커피집이 어디 있을까? 알아보면서 분주함으로 변했다. 어쩌면 다행이다 싶은 순간이다.
호텔 가서 할 일이나 놀거리 같은 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언니를 만나면 그냥 그날 할 수 있는 걸 하는데 예를 들면, 저녁 먹다가 다이소에서 놀거리 사갈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걸로 파티할래? 등등. 그날도 그랬다. 아무것도 없었고 분명한 건 우리는 매년 와인을 곁에 두고 술 취한 유럽의 예술가처럼 놀았다. 이번에도 딱히 뭘 하고 놀지는 않았고 크리스마스 엽서를 사 와서 서로 샤워할 때 적어주기, 노래 듣기, 대화하기, 각자 폰을 만지며 누워있기 같은 뭐 별거 없었어도 소소하게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언니랑 이런저런 아무 말이나 가능했던 것은 공통적으로 inner child의 존재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철없는 소리 찍찍 던지기, 선을 넘어도 혼나거나 나쁜 짓이라고 지적하지 않기, 그러면서도 각자의 방어기제가 있어서 들을 건 듣고 넘길 것은 넘기는 필터가 있다. 근본적으로 외로움에 기반한 멜랑꼴리함이 있어서 우리는 같이 있는 듯 외로움을 타고 외로운 듯 사람들과 꼭 함께 지내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몇 주 동안 입에 대지도 않던 와인이 참 맛있게 넘어갔다. 새벽에 종종 깼어도 침구가 편안해서 잠도 되게 잘 잤다. 조식 없이 한참을 누워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각자 스트레칭을 하며 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짚을 수는 없지만 맛있는 저녁과 커피, 짧은 산책, 심술궂은 가을의 한강 바람에 시렸던 코 끝. 아무 말, 와인 한잔으로 너무나 좋은 기분전환이 됐다. 무엇보다 언니의 배려가 제일 고마웠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는 스스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지만 이별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눈물을 흘릴 만큼의 슬픈 상황도 아니었다.
이별했다고 하면 왜 헤어졌냐, 무슨 일이었냐, 누가 헤어지자고 했냐, 찼냐 차였냐 같은 물음표 공격으로 숨어들고 싶은 내 마음이 더 쿡쿡 찔리게 되는 원치 않는 상황이 제일 두려웠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없어서 좋았다. 내심 겁이 났던 것도 같은데, 어쨌든 말을 안 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언니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그 점이 고마웠다. 지금도 이별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 있을지 몰라도 나는 꽤 빠르게 회복 중이다. 호캉스 덕분에 더 빠르게 올라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호캉스를 계기로 사기를 당할 뻔하는데 다음번에 이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