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의 홈플러스 산책기
아빠랑 나는 종종 홈플러스에 놀러 간다. 반찬거리와 야채를 사러 전통시장을 다녀오신 아빠는 더 필요한 재료를 구하러 한 번 더 몸을 움직이시는데, 그럴 때 ‘너도 같이 갈래?’ 하고 제안을 하신다. 우리 가족은 꽤 화목한 편이지만 엄마랑 아빠랑 특별히 가족들이 무언가를 같이했던 추억은 별로 없는 편이다. 여행이나 현장학습 같은 가족들의 대이동과 모험의 기억은 별로 없지만, 소소하게 장을 같이 보거나 안양천을 같이 걷는 일상적인 것들은 어른이 되고 너무 늙어버린 캥거루족으로 살면서 어릴 때보다 더 같이 시간을 보내는 횟수가 늘었다. 우리 부녀는 한때는 술친구로 한때는 전통시장을 같이 다녔던 시장 친구로 지냈던 적이 있었지만 아빠의 산책 제안도 크게 줄었고, 나도 집에 있는 날은 모처럼 쉬는 시간이라 굳이 엉덩이를 떼고 싶지 않아서 거절도 종종 했다.
그래도 그날은 모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빠랑 홈플러스 장 보러 갈 채비를 한다. 채비라 할 것도 없이 세수하고 양치하고 대충 운동복 입고 모자 푹 눌러쓰고 선크림 바르는 데까지 딱 7분 정도 걸린다. 화장할 일이 없으니 준비가 빨리 끝나는 게 동네 산책의 편리한 점이다.
홈플러스도 걸어서 15분 거리라 벌써 도착했다. 우리 부녀는 빨리 걷기 선수들이라 다리는 뱁새처럼 짧아도 황새만큼 빠른 속도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아마 아빠랑 별 말없이 걸어가면서 걷는 것 자체에 집중해서 일 수도 있다. 여하튼 우리 가족의 사랑의 언어는 말보다는 행동 쪽이 분명한 편이라 그렇다.
식품관 코너를 가려고 에스컬레이터 앞을 향해 걷는 찰나, 낯선 사모님 비주얼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동네에 운동복을 입고도 거닐만한 우리 동네 홈플러스에 루이뷔통 가방을 메고 금팔찌와 금 목걸이를 두른 고객이라?! 홈플러스도 백화점 VVVIP 같은 멤버십 프로그램이 있던가? 패션에는 아무리 정답이 없다지만 때와 장소에 이질적인 옷은 분명 걷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더 이상한 조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화려한 명품족 사모님의 오른팔에 걸린 루이뷔통 가방에 남성용 트렁크 팬티가 걸려있는 황당한 꼴이란?! 그것도 레오파드 패턴이라 눈에 더 띄었다. 평소 과묵한 우리 아빠에게서 첫 번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도 덩달아 눈에 휘둥그레졌지만 아줌마가 팬티를 사려고 한 것일지? 의도치 않게 걸린 것일지 굳이 이해하려 애써보았지만, 뇌도 풀가동을 멈췄다.
아빠가 나의 팔을 꼬집으면서 순간적으로 앞장 세웠다. 아빠 등 뒤에 있다가 순식간에 사모님 시야에 내가 들어왔다.
“저기요, 가방에 이거 걸려있어요. 아셨어요?”
“응? 엄마야 이게 뭐야.”
금목걸이 금팔찌 찬 명품족 사모님들도 놀랄 때는 매한가지구나. 평범한 나처럼 엄마를 찾으시네. 너무나 당황하시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속옷 매장을 열심히 돌아봤나? 하필이면 남성용 트렁크 팬티 100 사이즈였다. 어머머 사모님도 참~
만약 내가 그 순간에 혼자 있었다면 그 사모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 딱히 짚어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가족들한테 쫑알쫑알 얘기한다던지 카카오톡 방에 아무나 들어달라며 이야기하고 털어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달랐다. 남자인 내가 말하면 민망해하실 것 같으니 딸 보고 얘기해 챙기라고 하셨다. 그분이 출구로 나가게 되면 밖에서 더 심하게 창피당할 수도 있다면서. 오지랖이 넓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나지만, 정말 선의의 행동이나 정의, 불의의 행동이 눈앞에 닥쳤을 때는 입을 다물고 있는 시민 1이었을 것 같았는데 아빠의 선의의 오지랖은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