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엄마와 저녁 외식은 또다시 실패
모처럼 좋은 일이 생겨서 엄마와 저녁을 한 턱 쏘기로 했다. 엄마는 원하는 것은 없지만 이건 싫어 저건 싫어 유형으로 메뉴 정하기가 꽤 어려운 스타일이다. 이 날도 뜨끈한 굴국밥을 먹고 싶었는데 카카오톡 문자에 답이 없으셔서, 한 시간 뒤 메뉴를 정정했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그러면 쌀국수 어때요?”
“어~ 바빠서~ 엄마 회사서 갈까?”
“엄마 회사 근처로 갈게요, 몇 시까지?”
역시나 답이 없으셨다. 그래 바쁘시다는데 하는 수 없지~ 오후까지 내 할 일 하다가 퇴근 무렵에 연락을 챙겨야겠다 싶었다. 엄마는 끝내 답이 없었고 엉덩이 가벼운 엄마의 딸은 엄마가 일하는 동네 근처로 가서 겨우겨우 대면에 성공했다. 몇 번의 혼란이 있었는데 문자의 해석 차이가 있었다.
“마트에서 회를 할인하고 있더라고~ 나는 회를 사가겠다고 한 거야.”
“뭐? 내가 회사까지 찾아간다고 했을 때는 그럼 왜 아무 답이 없었던 거야?
“굴국밥 별로야~ 쌀국수도 별로야~
“그럼 뭘 먹고 싶은 거야?
“아무거나~”
소통의 오류. 만나자마자 메뉴 정하기 실랑이. 결국, 쌀국숫집으로 향했다. 내 엄마지만 외식 메뉴 한번 정하기 정말 어렵다. 마침 지도 검색으로 역에서 걸어서 10 분한 유명한 쌀국숫집 하나와 역에서 3분 거리인 저렴한 가성비 쌀국숫집이 나왔는데, 조금이라도 피곤하실 엄마를 생각해서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찾아갔다.
“여기 사람이 아무도 없냐, 맛이 있으려나 모르겠는데?”
아,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 엄마는? 그냥 식당에 무작정 들어가 앉았다. 멀쩡한 식당이었고 7시가 안 됐으니까 그럴 수 있다 치자. 점심 장사로 사람이 조금 있을 것 같은데 저녁은 파리만 날리는 그 집을 의심할리 만무했다. 쌀국수 하나랑 볶음 쌀국수 하나에 월남쌈 하나를 주문했다.
데이트로 찾아갔다면 셀프 코너에 있는 물과 앞치마, 반찬거리는 남자친구가 벌떡 일어나 같이 챙겼을 텐데, 엄마라면 다르다. 여왕님 모시듯이 내가 다 해야 한다. 물 2컵, 앞치마 2장, 소스통 2개, 반찬 2종류. 그런데 이 집은 고수가 셀프 코너에 있었다. 고수 단가가 높아져서 무한리필인 집은 본 적이 없는데 이게 바로 시장 인심인가? 신이 나서 고수를 그릇 하나 가득 눌러 담았다. 시장에 있어서 그런지 식사 가격도 저렴하고 고수 양도 넉넉해서 이 식당에 대한 호감이 넘쳐 올랐다. 음식이 나왔을 때도 물론 시장인심답게 강남역 맛집에서 먹는 쌀국수 보다 한주먹은 더 들어간 것 같다. 고기 양도 많고 면도 많고 시장 인심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그 호감은 딱 거기까지였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쌀국수는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이 적은 메뉴인만큼 보통의 맛이었다. 언젠가 쌀국수의 원조격인 미분당에서 배운 고수와 해선장 소스, 고기의 조합을 엄마에게 알려주려는 찰나, 고수 잎의 생김새가 평소와 달랐다. 한 입 넣자마자 그것이 셀러리 잎인 것을 알았다. 고기는 양지가 아니라 한국식 불고기였다.
월남쌈이 나왔을 때 땅콩소스가 듬뿍 담겨있길래 또 시장인심인 줄 알았다. 1줄 분량만 챙겨주시지 왜 이렇게 많이 주시지? 그래도 이왕 받은 김에 듬뿍 퍼올렸을 때 땅콩 소스가 아니었다. 황톳빛에 농도가 진해야 할 땅콩소스가 묽었고 겨자 소스를 섞은 맛이었다.
그다음은 야채 볶음 쌀국수 차례였다. 내가 아는 한, 땅콩 소스가 올려져 있고 잘 읽은 스크램블 계란이 익숙한 비주얼인데, 하물며 청경채도 없었고 당근과 양파가 중심이 된 잡채 맛이 났다. 베트남 쌀국수 식당인데 타이 쌀국수인지? 헷갈렸다. 시장의 인심에서 기분이 좋았을 뻔했는데 진짜 현지 맛을 재현하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 집에서 남은 재료로 엄마가 조리법 따르지 않고 만든 내 맘대로 볶음면이었다. 간장 소스도 제대로 섞이지 않았고 면도 뭉쳐있고 엄마랑 모처럼 외식인데 이런 데를 오다니 대실패였다. 엄마와 소통의 오해는 있었어도 맛있는 저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셀러리에서 느낀 배신감에 현지의 맛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요리가 나왔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다.
내가 찾아간 곳은 시장 한 구석의 저렴한 식당이었고 리뷰 따위는 살펴보지도 않았다. 의심 없이 찾아간 내 탓이지 사장님께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리뷰를 찾아봤는데 온갖 피드가 칭찬 일색이던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나만 느끼는 애매함이 동네의 맛집이었다라니… 어쩌다 발견한 글에서 식사권을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인 게 티가 났다. 그럼 그렇지. 나 역시 블로그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지만 이 식당에 배신당한 썰을 적나라하게 알리자니 소상공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이 갈 수 있어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물론 내가 인플루언서는 아니지만, 좋은 평가는 널리 퍼졌으면 하는 마음에 적극 리뷰를 올리는 데 반대로 안 좋은 평가는 되도록 넘어가거나 신중하려고 한다. 사람들의 알 권리 보다 소상공인의 먹거리가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베트남 청년이 서빙을 해주고 있었다. 그 사람도 현지식이 아니 흉내내기에 그치지 않은 가짜 쌀국수를 팔고 있는 식당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반찬 재료를 사려고 시장에서 나물을 몇 가지 샀다. 옆 칸에 고수가 한 소쿠리에 5,000원이었다. 고수 5천 원이면 그 식당에서는 10개 테이블에 제공할 수 있었을 양인데 나오는 길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고수가 아니라 셀러리에서 느낀 배신감에 인스타 스토리로 표현했다. 물론 식당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고수 예찬론자들이 너도나도 불편함을 표현해 줬다.
‘고수 무한리필인 줄 알고 한 그릇 신나게 담았는데 셀러리였던 것’
기분 나쁜 한 끼의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