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병사로 살아가는 중

헤어져서 오히려 다행이야

by 시드업리프터

남자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면서 관심병사라는 단어가 익숙해서 꺼내 들었다. 요즘 내 상황이 그렇다. 관심병 사는 이제 도움 병사, 배려 병사라는 명칭을 쓴다고 한다. 이성 문제 또는 가정문제를 안고 있는 병사, 복무 부적응자, 신체질병자, 체력 저조자 등을 일컫는다.

최근 2주 동안 급격한 심적 변화를 겪고 주변 친구들이 일부러 연락해서 따로 챙겨주기도 하고, 엄마가 매일 운동을 데리고 나가려 하고 말을 일부러 건네신다. 요즘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스러운 배려를 받으며 살고 있다.

나의 근황은 병사들은 전역하는 날까지 하루하루를 세면서 보내듯, 나도 하루살이처럼 24시간 그날의 할 일에만 집중하면서 ‘지금’과 ‘현재’에 있으려 애쓰고 있다. 사실 지금의 나는 괜찮다. 그런데 언제까지 좋은 상태일 수만은 없는 걸 알고 있다. 일시적으로 좋음이 전체적으로 이상 없이 잘 지낸다는 말로 전해지는 건 ‘괜찮은 척’하는 것 같아서 일부러 좋다고 답하지 못한다.

“요즘 괜찮아?”라고 묻는 말에 “안 괜찮지만, 생각보다 정리 잘하고 지내고 있지”


아주 정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한 단어 조합이다. 큰 이별을 겪었다. 늘 그랬듯 이별이 찾아올 때는 매번 힘들었다. 힘들지 않은 적 없었지만 비교적 빠르게 회복한 시기도 있었고 몇 년간 방황하기도 했고, 때로는 괜찮을 거라며 참았다가 다음 연애 상대 앞에서 한꺼번에 몰려오는 이별의 후폭풍도 겪을 만큼 나이도 먹었도 경험도 쌓였다. 이번에 헤어진 건 이별의 슬픔보다 그 현실을 마주할 두려움이 더 컸다.


나의 슬픔 상태를 모두에게 알려야 하는 일이 두려웠다. 이별한 뒤 눈물 폭풍에 빠져들면 다음날 지장이 생긴다. 두꺼운 쌍꺼풀이 없어질 만큼 눈이 부어서 두 눈이 모기에 물린 것처럼 모두에게 ‘나 울었어요’ 알리는 꼴이 된다. 이별하면 힘들다는 마음에 이상한 지점이 생겨도 그냥 지나갔던 것, 이별을 겪고 싶지 않아서 관계의 의문점을 굳이 풀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이번에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고 아직 진행 중이다.) 정리 후 내린 결론은 더 일찍 헤어졌어야 했다는 후회였다. 두려움 때문에 미루다가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렇지만 관계가 끝을 향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애정을 다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은 남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더 큰 상처를 떠안고 살아야 할 책임을 덜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미련은 없도록 지냈던 것에 후회도 없다.


머리로는 관계에 대한 문제와 원인이 확실하니까 이 어려운 시간을 잘 보내자는 스스로의 다짐이 세워져도 정작 마음은 속상함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기를 여러 번. 이렇게 머리, 마음 두 개의 섬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번 이별은 참 다르게 와닿는다. 속상함의 크기도 역대급으로 커서 힘들지만 크게 배운 점 있어서 이 시간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메타인지가 잘되는 나이가 돼서 그런 것일까? 스스로 너무 힘들어서 겪고 싶지 않았으면서도 정말 따끔하지만, 진작에 직면했어야 할 현실인 이슈가 산더미처럼 높아 보였다. 이제야 하나씩 꺼내보며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헤어져서 다행인 것 같다. (‘-다’ 확신의 문장으로 끝맺기엔 씁쓸하니까)


가장 속상했던 것은 올해는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신분상승 기회의 문이 코 앞에서도 닫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실패할 때마다 상대에게 많이 의지했다. 그러다가 자존감이 바닥칠 때도 있었다. 절대 숨기고 싶은 말들도 해버리고 말았다. 뚜렷하게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는 없었어도 대부분 지금껏 원하는 방향대로 잘 풀리고 있다고 자부했던 내 인생이, 2025년에는 한없이 고꾸라지고 무엇이든지 채워지지 않는 해였다. 거의 다 와서 엎어지고, 사라지고, 거절당하고, 취소되고 비교당하고. 원래 하고 싶은 것도 즐기고 싶은 것도 놓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라 그걸 다 쥐고 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것을 욕심이라는 단어에 갖다 붙이니까 꽤 잘 어울렸다. 완벽한 상태가 되기 위해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이별로 인해서 마음이 휘청일 때, 상대방에게 의지할 수도 없어졌다. 나는 아예 감정적인 빈털터리가 된 느낌이었다. 이제는 헤어졌으니 스스로 다시 일어서고 스스로 채워나가면 된다.

겸허하게 살자는 모토를 걸어놓고 1월을 맞이해 놓고 퍼즐처럼 모든 것을 깔끔하게 짜 맞추려고 했던 나였다. 손에 다 쥐고 살려고 했던 마음이 11월이 돼서야 비로소 보였다. 믿었던 사람마저도 없어졌기에 당연한 것들은 없고 나는 스스로 더 겸허해져야 한다.


가장 아끼던 친구들의 연락이 요 근래 자주 온다. 잘 헤쳐나가길 바라, 이 기간 잘 이겨낼 거야, 밥 먹자. 내가 이별의 당사자인 만큼 온전히 상실로 인한 아픔의 터널을 지나고 나와야 하는 건 나이지만. 마음 써주고 시간 써주고 나를 생각해 준 친구들의 존재가 정말 감사하다. 각자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쁠 텐데 나의 슬픔을 함께 지켜주겠다는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되게 따스워졌다.


관심병사를 챙기는 주변 병사들처럼, 사람들은 나를 아련한 시선으로 보는 것 같고 눈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괜찮은데 괜찮지 않을 거라는 기준을 전제로 깔고 바라보는 게 약간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딴 건 모두 자존심이다. 안 괜찮으면서 뭘 괜찮은 사람 대하듯이 보길 바라는 거야. 챙겨주고 신경 써 주는 사람들에게 그런 시선마저 거두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말자 이 눈치 예민보스 F감성이여.

이로써 나는 한 번 더 단순해질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새로운 공부를 하고 매일 꾸준하게 할 일을 한다. 매일 운동을 하고 매일 명상을 한다. 자연스럽게 감사일기를 시작했다. 실컷 비워내는 중인가 보다. 과거는 없다. 하루하루에 충실하면서 이 터널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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