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불안해요라고 말하는 용기있는 어른

- 불안정의 안정을 찾아가는 비트윈잡스 사람들

by 시드업리프터

로이스김을 알게 된 건 SNS 알고리즘 때문이었다. 유퀴즈에서는 구글 상무가 실리콘밸리에 간 스토리로,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책을 쓴 작가의 북토크로, 링크드인에서는 평산책방에 찾아가 텀블벅 펀딩으로 성공한 책을 전달하는 글의 피드로 나타났다.


활발한 작가활동을 하는 그분의 여러 책들 중 <퇴사하면 큰일 날 줄 알았지>를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비트윈 잡스라는 단어도 처음 알았고, 지금 나의 커리어 방황기를 하이퍼리얼리즘으로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아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정독했다. 사람들은 비트윈잡스이라 쓰고 사회적 지위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생긴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적은 38인의 에세이 모음이었다.

나의 삶의 방점은 발랄한 할머니가 되는 것인데, 로이스김님은 해맑은 할머니로 살겠다는 나의 장래희망의 과정 중에 중간지점에 있는 나이대에 있는 롤모델로 딱이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었다. 직무도 똑같고 탄탄한 커리어를 밟았어도 기업의 위치와 상관없이 해맑은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자원봉사 활동, 스타벅스 아르바이트, 트레이더 조 마트에서 일해보기 등. 흔히 말하는 윗 분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한 적 있는데 로이스김은 사회적 지위가 기대하는 그런 근엄한 모습보다는 (물론, 회사에서의 자아는 다르겠지만) 열정이 넘치고 또 열의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멀리서 한 명의 디지털팬으로 살다가, 링크드인에서 비트윈잡스 커뮤니티의 11월 모임 소식을 접했다. 책을 보면서, 이 커뮤니티에 나도 가보고 싶다.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덜 불안했을지도 모르고 또 책 집필 과정에 참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망설임은 1초 분, 당장병 말기인 나는 참가 등록했고, 어제 비트윈잡스 커뮤니티에 다녀왔다. 로이스김의 스피치와 함께 다른 분들의 스피치가 이어졌다. 연사자의 커리어 궤는 보통이 아니고 신기하다고 느껴졌다. 한 분은 해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글로벌하게, 한 분은 국내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해야 하는 정치 쪽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다.


이어서 근황토크가 이어졌고 자기소개가 필수였다. 글쎄, 고민과 생각정리를 그동안 하도 많이 해도 그런지 내 소개가 어렵지는 않았다. 다른 한 명 한 명의 커리어가 정말로 다양했다. 지금까지 특정 주제에 관한 네트워킹을 가도 쏠림 현상이 심했다. 대기업만 관심이 쏠리는 곳, 스타트업끼리 뭉치는 곳, 혹은 작가들끼리 뭉치는 곳 등등. 어떤 모임에 가도 나는 어깨너머의 사람이었는데 이 모임은 정말 신기하게도 다양한 커리어를 거친 사람이 알차게 꾸며온 본인의 커리어를 능숙하게 소개했다. 군인에서 방산 기업으로 오래 재직한 분, 진짜 레이오프 얼마 안 된 후 와서 침울해 보이는 사회초년생, 대기업과 끈끈하게 협력하면서 사업을 여러 개 일구고도 또 새 사업을 시작한 장년의 대표님, 공공기관의 해외 파견 중에도 대기업을 목표로 이직하면서 자기 일을 브랜딩 하는 사람, 개발자 아빠로 육아대디를 하다가 다시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사람. 아이 둘을 키우면서 다시 커리어를 이어가려는 사람들까지 비트윈잡스에 범주에서 한 조가 되어 소개를 마쳤다.

이렇게까지 커리어가 다양하다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 역시 커리어가 하나로 정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큰 궤적을 그려오신 분들이 많았고, 나의 경로가 오히려 무난해 보일 정도였다. 회사 안에서는 15년 다니는 분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이직 자주한 나에 대한 성찰이 이어졌었고, 프리랜서 안에서 나는 이제 막 세팅을 시작하려는 병아리라서 이것저것 해야 할 게 많은데 어디에서도 나는 비슷한 상황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위축이 유난히 드는 곳에 몸담고 있단 사실을 자각했다. 시선이 확장되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 것. 그리고 딱 한 분에게 눈길이 갔다.

오랜 회사 생활 중에 나만의 브랜딩을 고민하는 사람. 그분은 이직에 성공했지만, 나는 셀프 브랜딩 과정 중에도 계속해서 채용 공고가 뜨면 미련이 남아서 고민하는 것이다. 그 분과 나는 발을 걸친 사람들이었다. 한 분은 진짜 두 발을 걸치고 번아웃의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같았고 나는 두 발을 모두 대고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보아하니 나이대도 비슷해 보여서 결혼생활과 근무지라는 사적인 영역, 이직, 브랜딩까지 이것저것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저 그 상태를 찐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상대로서 반가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로이스김의 비트윈잡스 프로그램을 마치고 인사이트를 많이 얻고 나왔다. 그중에서도 이 기간에는 자기 인정과 자존감이 중요한 것. 그리고 모든 경험은 중요한 것이고, 적극적으로 네트워킹하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나는 이 기준에 충족하면서 살고 있다.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생각됐다. 구겨졌던 얼굴도 펴졌고 주체적인 일상을 살다 보니 만족감이 훨씬 높아졌다. 배우고 싶었던 인풋도 넣고 콘텐츠도 매일매일 생산해 나가면서 아웃풋의 균형까지 잘 이루며 살고 있다. 좀 더 애매한 기간이 계속될 테지만 이런 과정 하나하나에 의미를 붙이는 요즘을 행복의 질로 따지면 훨씬 높을 것 같다.

비트윈 잡스에 다녀와서 느끼는 게 가득한 하루였다. 기분 좋아서 그만,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와 5가지 안주로 배부른 상태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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