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숨 막히는 소설

책 <숨>

by 시드업리프터

#전반적인 소감

처음으로 발제를 준비해 보는 마음으로 다음 모임에 빠지면 안 되는 책임감+토론 질문을 찾겠다는 열정+발제자로서 두꺼운 책 내용을 잘 파악해 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한 챕터를 다 끝내기도 전에 나는 ‘으악 망했다’ 싶었다. 생각보다 책 내용을 이해하고 집중하고 빠져들기가 어려웠다. 요즘 들어 부쩍 집중이 어려워진 정신적 산만함 때문일까?


평소 SF 영화를 좋아해서 장르에 대한 흥미도 높았다. 꽤 재밌을 거라 기대했는데, 머릿속에 구체적인 내용이 그려지지 않으니까 부분적으로 내용을 소화할 수 있었다. 장면 장면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는 아예 가상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풍부하게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는데 (영화로 나왔을 때 상상한 대로 펼쳐진 장면들에 기분이 다 좋아졌다) 테드 창의 소설 속에는 기존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미래지향(?)적으로 묘사돼서 그런 걸까? 나는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질문은 발제를 통해 쭉쭉 풀어보도록 하고 SF 소설임에도 삶을 통찰하는 문장들이 있어 인덱스 스티커를 과감히 붙여두었다.


#내용과 생각들

29p.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십 년 뒤에도 같은 집에 살고 있다니. 그렇다면 그는 부자가 되지 못했고 나이 든 아지즈에게선 조언 따위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미래는 희망을 내포하는 데 이십 년 뒤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자신을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 안에 생략된 인생사를 스스로 알게 된다면 슬플 것 같다…


56p.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과거와 미래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쪽도 바꿀 수 없고, 단지 더 잘 알 수 있을 분이다. 과거로의 제 여행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그곳에서 제가 배운 것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스스로 대단한 희망이 없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139p.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닮기는 했지만, 똑같지는 않다. 블루감마 사는 십여 명의 마스코트들을 위해 새로운 거처를 찾아줄 필요가 사실상 없다. 동물 안락사에 수반되는 문제 따위는 완전히 배제한 채, 그저 정지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중략) 디지언트들은 죽는 것도 아니며, 버려졌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141p. 고양이, 개, 디지언트.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정말로 돌봐야 하는 것들의 대용품에 불과해. 너도 언젠가는 아이의 의미를,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거고, 그러면 모든 게 바뀔 거야. “


241p. 그들을 마치 인간인 것처럼 간주해, 있는 그대로 놔두지 않고 데릭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잘못일지도 모른다. 마르코를 존중하고 싶다면 그를 인간처럼 대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반려동물만큼 애정을 받았으면서 버튼 하나로 반려동물 보다 더 쉽게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게 과학 소설임에도 애달프게 들렸다. 디지언트과 교감을 느껴놓고서, 정서적 교류의 연습 도구로서의 수단일 뿐일까? 한순간에 가치가 격하되는 그들의 존재. 너무 슬프지 뭐야, 그런데 인간 중에서도 차별당하는 이 사회에서 인간이 아니라면 얼마나 더 큰 격차가 존재할까?


271p.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몇천만 명이나 되는 사용자들이 몸에 장착한 개인 카메라로 자기 삶 전체를 연속적으로 기록하는 라이프로그를 유지해 왔다. 사람들은 과거의 즐거웠던 순간을 다시 체험하거나 (중략) 신제품인 리멤의 알고리즘은 당신이 ‘바늘’하고 말하는 순간 그것이 묻혀있는 건초 더미 전체를 검색해 준다.

-처음에는 신박하다 느꼈지만 내용이 전개될수록 인생 모든 것을 기억할수록 인생의 가치는 하락하지 않을까? 선택에 따른 고민은 지금의 불안을 야기하지만, 선택을 번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재미는 있을까? ‘다 해보는 것’이 무엇을 위한 완벽일까 싶기도 하다.


415p.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우린 다른 사람들이 가진 걸 언제나 부러워하진 않아. 하지만 프리즘을 통해 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잖아. 바로 너잖아.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가진 걸 네가 가져야 한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문제는 네가 아니야. 문제는 프리즘이야.

-타인과의 비교를 하지 말라는 사회에서 자신과의 질투라는 시선이 너무 새로웠다.


#인사이트

297p. 글은 입 밖에 내서 말을 하기 전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단어들 또한 단순한 말 조각이 아니었다. 단어들은 생각의 조각이었다. 그것들을 옮겨 적으면 생각을 벽돌처럼 잡고 다른 배열들 속에 끼워 넣을 수 있었다. 글쓰기는 단지 말을 하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일단 보고 나면, 그것들을 개선시켜 더 강하고 정교하게 만들 수 있었다.


301p.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 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대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329p. 난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아. 과거에도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477p. 당신은 이 세계에 있는 당신의 행동만 변화시키고 있는 게 아닙니다. 미래에 분기할 당신의 모든 버전들에게도 그런 변화를 심어주고 있는 거예요. 더 나은 사람이 됨으로써, 당신은 미래에 분기될 더 많은 평행세계에도 더 나은 버전의 당신들이 살고 있을 가능성을 보장하고 있는 겁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