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다가오면 부스스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어디서부터 자신이고 어디서부터 자신이 아닌 것인지 씻으면서 또는 옷을 입으며 생각한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나와의 대화는 기억의 저편으로 휘발되어 막을 내린다. 선택한 건 본인이라 말하지만 우리들이 매 순간 선택한 사항은 온전히 스스로 집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원시시대부터 무리생활을 하지 않으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져 단체생활에 일반적으로 맞추게 된 특징일까?
요즘 이슈로 MZ세대(개인적으로 이런 단어 구분은 원인과 결과를 제공하는 당사자로 만드는 듯 보인다.)들이 퇴사, 퇴직이 빈번하다고 말한다. 낮은 임금, 경직된 조직문화, 의미 없는 회식 등 뉴스거리가 가공되고 포장되어 상품처럼 나온다. 포장을 뜯어보면 낮은 임금의 경우, 받는 보수에 비해 업무량이 과다하고 그칠 줄 모르는 물가상승이 원인이라고 뭉뚱그려 설명된다. 경직된 조직문화는 단어를 바꾸거나 문장을 추가해 소통의 부재로 탈바꿈한다. 결국 적응을 못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그만두는 젊은 세대들의 문제를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한다고 한다.
반대로 sns에서 관련 영상을 보게 되면 본인들이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경험을 소신 있게 이야기로 전한다. 경직된 조직문화로 모 직장은 돌아가며 밥 당번을 하지만 팀장이상의 직책들은 숟가락만 든다고 말한다.(놓는 것도 아니다.) 차리고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고, 먹기만 하는 사람은 고정이다. 또 다른 조직은 상사 모시는 날이 있어 그들의 기분을 맞춰줘야 하며 명분을 붙여 만드는 잦은 회식들이 난무한다고 말한다. 차라리 굿판을 만들자고 하고 싶다. 빙의된 사람이 이런 작태를 만들었을 수도 있어 작두라도 타고 망령들을 떨쳐내고 싶을 테니까.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젊음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한다. 그들이 뿜어내는 젊음의 패기와 열정을 토대로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새로이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렁찬 발진은 구시대의 산물과 사상들로 이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닫게 만든다. 모두를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단체생활이라는 가면을 쓴 권력자 한 사람 아니면 그 외 몇몇 사람의 구호로 자주 쓰이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취업도 준비'만'하거나 쉼이 길어진다. 정작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삶에 여유가 없어 연애와 결혼, 이혼의 모든 과정을 예능 프로로 시청하며 대리만족한다.
그들은 같은 나라지만 다른 문화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이들이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할 때 이전 세대들은 지금 MZ세대들의 위치에서 단체를 이루고 번영과 발전이라는 안전망을 구축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또는 사회나 국가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모든 성장 과정을 똑같이 거친다고 모두가 보편적인 기준에 충족할 수 없다. 기준에 충족하더라도 인원이 한정되어 소수에 들어가지 못하며 내가 선택을 당할 수도 있는 길들의 책임은 나에게 다시 덮어진다.
결국 겉은 젊어 보여도 정신은 노쇠해 타인에게 선택을 미루게 되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