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약속한 듯 신입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매년 그들의 눈빛은 빛이 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은 합격의 보상이 눈으로 뿜어진다. 그들을 보면 과거의 모습들을 회상할 수 있게 되고, 꿈꿔왔던 모습들을 지워진 머릿속에서 다시 찾을 수 있게 된다. 업무 중 옛 기억에 대한 회상은 단잠 같은 휴식이지만 이미 처음을 찾고 있다는 행동이 성장을 못한 건지 아니면 까마득히 잊어버릴 정도로 성장을 해서 소싯적 기억을 떠올리는 중인지 밀고 당기며 생각한다.
상념에 빠지기 무섭게 직장상사는 우리들을 부른다. 다른 생각을 할 때마다 직장은 일을 부여하고 지시를 한다. 생각 없이 누군가 지시한 일을 하다 보면 가끔 비집고 나오는 생각이 있다. 모두가 하고 있는 일들은 누군가의 생각이고 직원들이 머리를 모아 나온 결과이기에 생각을 언어로 전달하고 현실로 이끌어낸다.
하지만 의견을 제시하고 확인만 받으려는 사람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목표의 방향이 틀어지고, 판단을 조금 더 보충해야 할 때 조심스럽고 소신 있게 건의를 한다. 수평적 구조의 직장으로 탈바꿈하자는 합창이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의견을 하나씩 말한다. 하지만 들어만 줄 뿐이다. 공중에서 폭격되고 부유물로 가라앉아 앙금이 퇴적층을 형성한다.
이후 상사는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지시한 일과 별개로 진행하라는 업무가 늘어났다. 우선 정당하게? 지시한 업무라 아무 말 없이 다들 "네"라고 대답하며 급하지 않은 일들을 업무수첩에 적는다. 20분 앉았을까? 돌아가며 호출한다. 완벽주의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상사는 닉네임 이상으로 행동했다. 한 팀원인 동료가 왜 이렇게 급하고 무리하게 진행하는지 질문했지만 답은 항상 같았다. "그냥 해야죠. 지시한 내용은 다 하는 겁니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옥상에서 햇살을 받으며 우울함을 말리고 있었다. 점심식사 전 지시한 내용만을 따르라는 말이 머리에 맴돌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상사가 다가오더니 손에 있던 커피를 건네며 말한다. '직장은 원래 그렇다 그러니 맞추자'는 조언을 한다. 실질적으로 도와주지도 않는데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남을 바꾸는 일보다 자신을 바꾸는 게 빠르다는 말들을 이런 식으로 재해석해 놀라웠다. 이 같은 상황들이 있으니 고전들이 지금까지 살아서 조언을 하는 듯 보였다. 커피가 절로 들어가지만 조언을 해주는 상사의 말은 한 귀로 들으면 한 귀로 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려는데 마지막으로 해준 말은 "버티자"는 말이었다.
이상하게 버티자는 말은 듣기 싫었다. 학창 시절 좋은 성적을 위해,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좋은 학위를 취득하려고, 학점과 인사점수를 위해, 승진이 안 돼도 버티고, 아파도 이를 물고 출근해 버티고, 입원해서도 업체와 연락하고, 투병도 견뎌야 한다. 나중엔 죽음도 버티라고 하지 않을까?(이미 그런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되묻고 싶었다. 버티는 건 쓸모 있고, 버티지 못하는 건 쓸모없는 걸까요? 태풍이 오는데 반갑게 맞이하고 버티는 사람이 있나요?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산 아래 위치한 집안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오는데 꿋꿋하게 버티기 가능합니까? 조금 더 실생활에 맞춰 보면 벌통을 모르고 건드렸는데 벌들이 나왔습니다. 멧돼지가 달려오고, 들개들이 물기 위해 주둥이를 벌리고, 보행자 신호에 횡단을 하는데도 달려드는 차를 보며 버티는 사람이 있나요? 사람들은 각자의 역치가 다릅니다.
이번엔 회사에 대입해 묻고 싶었다. 신입이나 실무자 직원들은 태산 같은 대표님이나 임직원들이 분노하면 쌓아 올린 인사고과 점수와 상여금은 산사태 같은 인사조치로 무너지고, 몰려오는 서류 작업은 쓰나미에 휩쓸리고, 지시한 일처리가 안되면 멧돼지 같은 상위부서에 들이 받히고, 영혼에 상처를 남기는 말을 벌처럼 쏘아댑니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버티다는 동사로 '외부의 압력, 어려운 주변상황에서 참고 견디다.'로 나왔다. 여기서 버티는 건 주체지 객체가 아니라고 해석된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남들이 버티라 해서 버텼을까 싶다. 주변의 조언이 난무해도 선택을 한 건 자신들이었다. 남이 버티라고 말해줘서 버티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견뎠을 것이다. 어쩌다 다채로운 단어들과 생각들은 쓸모 없어지고, 한정된 생각들이 그 자리를 지배했나.
해가 따스하게 내리쬐며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을 즐기지도 못 한 채,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1층 안내데스크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동료한테 들어보니 신입들 행사가 있다고 한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직원들은 축하와 함께 덕담을 건넨다.
'잘 버텨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