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르륵. 팔과 다리가 이불 위에서 움직이는 소리다. 시원한 이불의 감촉이 잠을 잘 자게 한다. 이 감촉은 잠을 잘 때 어릴 적 기억을 상기시켜주며 봄을 알리는 알람의 역할을 해준다. 비는 말한다. 이제 겨울을 깨우고 보내야겠다고 봄과 같이 방문할 예정이니 겨울잠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일어나라고 속삭이지만 봄비의 소리가 마림바처럼 듣기 좋고 봄비가 가져온 봄내음이 포근해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늑장을 부리게 된다.
달콤한 토닥임은 어릴 적 엄마의 품에서 나를 재우려고 등을 두드리는 듯한 편안함을 준다. 그동안 직장과 가정에서 신나게 움직이며 달궈진 나의 정신과 육체를 식혀주는 선선함이다. 이 선선함은 내가 깰까 봐 살며시 들어와 이불에 스며들어 수고했다며 나를 감싸준다. 선선함의 촉감이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준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 비가 오는 날을 무지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도 하늘에서 비가 오면 하교하기 전 비가 내리는 걸 보고 가기도 하며 한 번은 장마철 등굣길엔 비가 오지 않았지만 하굣길에 비가 무진장 쏟아져 고민하다가 비를 맞으며 갔던 기억이 있다. 쏟아지는 비는 다 큰 성인이 샤워를 다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비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언제부터일까?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는데 앞서 말한 하굣길에 갑자기 비가 오는 경우 우산을 챙겨서 데리러 오시는 게 힘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우산을 들고 온 부모님 손을 잡고 집에 가는데 나는 실내화 가방을 우산 삼아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에 간 기억이 있다.
누가 보면 '어릴 때 속상한 기억이겠구나'라고 아련한 시선으로 볼 수 있지만 나는 데리러 오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 그저 비 오는 게 좋아서 '쏴아아'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참방참방' 물장구를 치며 집에 가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지금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게 계기를 생각해 봤다. 바쁜 사회생활의 시끌벅적함과 인간관계에서 생긴 마찰의 어수선함이 계속되는 상황 속에서 오해와 불신 등 불화가 점점 커지며 달궈진다.
이런 달궈진 불화를 한 번씩 내리는 많은 비가 모든 걸 식혀주며 고요하게 만들고, 비를 피하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기에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됐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어릴 적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점점 선명해진다. 오늘도 이불 위로 살며시 스며드는 봄내음과 봄비의 선선함을 덮으며 늦잠을 자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