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_독서코칭을 받다, 독서시간을 확보하다(환경설정)
지혜는 서둘러 퇴근하고 ‘선플라워 카페’로 갔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요즘 제때 퇴근을 못 해서 오랜만에 와요. 자몽에이드 하나 주세요.”
“네, 자몽에이드요~. 4,000원이요.”
“사장님, 저 요즘 책을 통 못 읽고 있어요. 너무 시간이 없어요.”
“요즘 일이 많이 바쁜가 보네요, 독서 모임은 가고 계세요?”
“아뇨, 독서 모임도 나가고 싶은데 남편이 주말에 안 쉬니까 나갈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평일 낮에 일하니까 오전 모임을 나갈 수도 없고요.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요즘은 밤에 누우면 기절해요.”
지혜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몽에이드를 받아 들었다. 음료를 받았으니 자리로 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코로나 걸릴 사람 다 걸렸는가 마스크도 벗는 추세다. 커다란 6인용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은 지혜에게 사장이 “저도 앉아도 될까요?” 물으며 똑같은 자몽에이드 한 잔을 가지고 와서 앉는다. 부담스러워야 정상이지만 자주 온 것도 아닌데 사장이 친한 언니같이 느껴진다.
“책... 읽고 싶으세요?”
“그럼요,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니까요~”
“그전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읽었을 때는 어떤 시간대에 책을 읽었어요?”
“출근하기 전이랑 퇴근하고 나서 시간 나면 읽었어요. 아이 데리러 가기 전에도요. 그리고 저녁때랑 아이 재우고 나서 읽을 때도 있었고요.”
“지금은요?”
“지금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교통편이 안 좋아서요. 그리고 퇴근하면 전속력으로 와서 저녁거리 없을 때 장 봐오고, 아이 데리러 갔다 오면 저녁 주고, 치우고 책 읽어주고, 재우죠. 피곤해서 저도 자버려요.”
“음 그럼 틈새 시간을 아예 못 내나요? 예를 들어 아이 재우기 전이라든가, 저번처럼 재우고 난 뒤라던가요.”
“아이 읽어주는 책이 요즘 거의 1시간이라. 6살짜리 아이가 자꾸 읽어달라 해서 읽어주면 10시거든요. 그때 씻기고 나면 10시 반에 같이 잠들게 돼요.”
“손님, 아.., 혹시 성함이...”
“지혜예요. 신지혜.”
“저는 지은선이에요. 지혜 씨 보니까 꼭 제 옛날 모습 같아요. 제 딸이 중학생인데, 유치원 다닐 때 그렇~게 책 읽어달라고 했어요.”
“아, 진짜요?”
“네. 지혜 씨가 독서습관이 있었을 때는 시간이 나는 대로 읽으셨네요? 지금은 시간이 없고요."
"네, 맞아요."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이 나면 읽고, 시간이 안 나면 안 읽는 거네요."
"아니, 못 읽는 거죠~"
"책은 시간이 '나면' 읽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해요.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 같네요.”
지혜는 이제 갓 통성명 한 카페사장에게 서운한 마음이 든다.
“우선순위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엄마로서 살림, 직업, 육아, 뭐 하나 안 중요한 게 없지 않아요...?”
“맞아요, 다 중요하죠. 모든 일이 다 중요한데 그중에 더 급하고 중요한 게 있잖아요. 인간관계에서도 연락을 더 많이 주고받는 관계가 있고, 더 뜸하게 주고받는 관계가 있죠. 연락을 뜸하게 한다고 덜 중요한 관계가 아닐 수도 있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하지 않고 서로 이해해 주는 관계.”
“네 그런 친구가 있어요. 고등학교 친구들은 오랜만에 연락해도 마음이 편하고 마음속에선 자주 연락하는 관계보다 더 친하다고 생각돼요.”
“그럼 지혜 씨가 하는 일 중에서도 하나같이 다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시간을 더 자주, 많이 투입해야 하는 것이 있죠? 당장 해야 할 급한 일의 목록에 ‘독서’를 넣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의식적으로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우선순위’ 안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습관 만들기는 어려워요.”
“아... 우선순위로 잡고 어떻게 하면 책 읽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아침형 인간은 절대 아니라서요.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으라고는 말씀하시지 말아 주세요. 제발..."
"하하, 독서가 지혜 씨 일이 아니라 제 일인 것 같네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면 독서가 간절한 만큼 다른 일에 쓰는 에너지와 시간을 최대한 줄여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저녁 20분이든, 밤 시간이든 책을 읽으려면 '읽을 힘'이 남아 있어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혜는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일에 대해 다시 끄적여보았다.
회사일, 집안일, 육아. 하나 더 있다. 유튜브.
첫째, 회사일. 최선을 다해도 일을 빨리 끝내기는 어렵다. 조절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둘째, 집안일. 어차피 집안일이란 여러 번 해도 큰 티가 나지는 않았다. 일이 밀리면 신경질이 나긴 하지만 두 번 중 한 번은 참아서 집안일하는 총횟수를 줄여 보기로 한다. 퇴근 시간이 늦은 남편에게 아침에라도 빨래를 개어달라고 부탁한다. 아이가 건조된 빨랫감 위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놀거나 전갈 피규어로 빨랫감을 헤치고 놀아도 눈 한번 질끈 감는다.
셋째, 육아. 밥 차리는 시간을 줄인다. 안 먹는 반찬 종류를 4개씩 만들어 놓고 서운해서 아이를 위협할 게 아니라 만드는 반찬 개수를 2가지로 줄이고, 반찬가게에서 사 오기도 한다. 아이가 평소에 잘 먹지는 않지만 먹었으면 하는 반찬을 '4팩 만원’ 코너에서 사 온다. 아이가 두 입 이상 먹지 않아도 만드는 노력이 없었으므로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어른이 먹으면 그만이다.
아이에게 책 읽어 줬던 시간이 기존 1시간이었다면 이제 밥 먹은 후 30분 이내로 제한한다.
‘저기 긴 시곗바늘이 6에 갈 때까지만 읽어줄 테니 집중해야 해.’라고 말하며 시간을 정하거나, ‘여기 이 표시까지만 읽어 줄 수 있어.’라며 읽기 전부터 소제목 하나가 끝나는 지점을 포스트잇 플래그로 표시해 준다.
“더~ 여기까지! 더 읽어줘~!!”
“안돼, 더 읽어주면 엄마가 엄마 할 일을 못 해서 도훈이 잠을 재워줄 수 없어. 답답하면 도훈이가 빨리 한글에 관심 가지는 게 편할 거야. 그러면 읽고 싶은 만큼 마음껏 읽을 수 있어.”
넷째, 유튜브. 유용한 정보인 줄 알았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 30초짜리 "Shorts"를 과감히 외면해 본다.
유튜브 설정에서 '알림' 항목으로 들어가서 맞춤 동영상과 구독 중인 채널 알림을 과감히 ‘알림 해제’한다. '내 페이지'- '시청시간'- '시청중단시간 알림'에서 '0시 20분' 혹은 '0시 30분'으로 시청 최대시간을 설정해서 알림이 오도록 한다. ‘휴식시간입니다.’ 알림을 무시하고 더 시청했었던 습관을 인지한다. 자신을 속이지 않을 정도로 현실적이고도 객관적으로 제한 시간을 설정하고 반드시 지킨다. 점차 시간을 줄여 나간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를 만들어 개인 PR을 해야 되는 상황인지, 사업 기반을 다질 목적인지 큰 의미 없이 시간만 보내는 용도인지 진단해 보고 지인만 볼 수 있게 비공개로 전환한다. 특정 주제로 사진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네이버 비공개 밴드를 만들어 사진을 업로드한다.
이제 확보된 시간, 아이 재우기 전 30분 책을 읽는다. 아이가 더 놀아 달라고 하면 '혼자 노는 시간이 하루 30분은 있어야 자기 스스로 생각할 힘이 생겨서 똑똑해진대.'라고 말해 준다.
아이의 책 읽는 시간이 좋은 것처럼 '엄마도 책을 읽어야 우리 집 식구가 더 행복해질 수 있으니 이 타이머로 30분까지는 말 거는 것을 참아달라'라고 얘기해 본다.
설정한 시간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시간이 줄어들수록 빨간색 면적도 줄어드는 뽀모도로 시계로 30분을 맞춘다.
알람시계를 엄마와 아이가 잘 보이는 자리, 그러나 엄마의 손도 닿지 않는 거리에 둔다. 아이가 힐끔 봤을 때 남은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놔두어 임의로 조정할 수 없는 서로 간의 약속된 시간이라는 것을 인지시키고 덤으로 끈기도 길러 준다.
책 읽을 장소에 바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독서대를 놔두고 나서 아이를 재우러 들어간다. 아이 재울 때는 눈을 처음부터 감지 않거나 30분 뒤 진동으로만 알람을 설정한다.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뱀파이어처럼 유유히 거실로 나가서 심야 독서를 시작한다.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 읽기 시작한 날짜와 끝나는 날짜를 적은 A4용지를 냉장고에 붙이고 완독 할 때마다 체크박스에 V 표시를 한다.
인터넷 서점에 종종 들어가서 광고 뜨는 책 중에 관심 분야의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사놓고 나중에 볼 생각으로 일단 산 책의 '나중'은 웬만해서는 오지 않는다. 당장 읽고 싶은 책도 갈수록 많아지기 때문이다. 책에도 쇼핑중독이 있을 수 있으며, 과소비로만 이어지지 않게 책이 배송 오면 그때부터 읽겠다고 생각되는 것만 결제한다. 꼭 필요하지만 사놔도 안 읽을 것 같은 책은 도서관으로 상호대차 신청을 받아놓는다. 이름을 걸고 예약한 거라 읽게 된다.
이제 지혜에게는 독서가 '우선순위'가 되었다.
마음을 정하고 행동했는데 습관이 들여지고 있을 때의 그 뿌듯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다. 이제 출근하는 중에도, 일할 때도 ‘어서 집에 가서 오늘은 꼭 읽던 그 책을 끝내고 자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