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_'작게' 일 벌이기
4월의 봄기운을 가르고 일요일 오후 11시에 이들 모자가 들른 곳은 역시 선플라워 카페다. 지혜가 독서 모임에 못 나간 지는 한 달이 넘었을 성싶다.
이미 커피 중독자이며 이제는 제법 활자에도 중독이 된 지혜가 오늘 여기 온 것은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꽃 때문이다. ‘꽃톡방’에 사진으로 뜬 오늘의 꽃이 말도 안 되게 예뻤다. 부케에나 들어갈 법한 주먹만 한 수입 작약이 2송이나 들어가는 비주얼을 보는 순간 눈팅을 졸업하고 주문해 둔 것이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아까 톡방에서 오늘의 꽃 주문했는데요~ 닉네임 ‘꽃별천지’ 요.”
“아니? ‘꽃별천지’님이 책벌레 손님이셨네~? 여기요, 15,000원요.”
“허얼... 너무 예뻐요..!!”
남자에게 받는 꽃은 이 카페의 묘한 매력이다. 보통은 ‘꽃집 아가씨’를 떠올렸었다. 아저씨와 식물을 연결 지으려면 어렵지 않게 소나무 분재 전문이나 개업용 해피트리, 블루베리 묘목 따위를 취급하는 농원을 떠올렸던 지혜였다.
그런데 잘 생기지도 않고 여성스럽지도 않은 남자 사장이 꽃에는 진심인 듯 보인다. 한쪽에서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열심히 커피잔을 씻고 있고, 그 안쪽 옆으로는 남자 사장이 꽃을 다듬다가 한 움큼씩 재어 팔을 멀리 뻗어 들어보며 홀로 감탄하고 있는 풍경이다.
‘저 아저씨, 꽃에는 찐이다, 찐. 저렇게 꽃 좋아하는 남자가 또 있을까?’
지혜는 이 꽃집 단톡방을 알아버린 후로 이제는 남편에게 결혼기념일마다 ‘받아내는’ 꽃다발이 성에 차지 않는다. 눈이 높아졌다. 그녀의 남편이 사 오는 꽃다발은 뭐랄까, 어디 지하철 통로 마감 세일 할 때 사 온 것 같다. 꽃의 얼굴들을 바가지 대고 싹 깎은 것처럼 호를 그리는 구도 하며, 뻔한 장미, 뻔한 프리지어, 뻔한 잎사귀 장식인 것이다.
지혜 손에 들려진 꽃다발은 평소의 ‘오늘의 꽃’보다 훨씬 고급지다. 탐스러운 작약 하나는 봉우리가 진 ‘코랄 참’, 또 하나는 드레스 자락같이 촘촘한 레이스가 피어나는 듯한 ‘보그’라고 꽃아저씨가 알려 준다. 새하얀 꽃잎에 빨간 무늬가 틴트를 떨어뜨린 것처럼 아주 살짝 보이는 것이 포인트다.
화이트 옥시 두 송이가 애교처럼 섞여 있고 벌꿀 향이 나는 조팝나무 한줄기가 옆으로 뻗어있으며 연주황의 거베라도 있다. 생화보다 조화가 많은 예식장 화환 중앙에 투명 깔때기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만 알고 있던 거베라. 카톡방에 종종 뜨는 사진처럼 깔때기 없이 45도 위를 향해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대신 주먹만 한 작약의 턱에 투명한 커피 뚜껑을 오려 만든 꽃받침이 티 안 나게 무게를 받쳐주고 있다. 이 플라워카페 사장이 만든 ‘꽃톡방’에서 주문하면 로드 손님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꽃을 살 수 있다.
'선플라워'에서 오늘의 꽃이라고 올린 사진에는 반드시 이름 모를 꽃이 한두 가지 들어있다. 아무리 사장이 톡방에서 말해줘도 꽃이름을 모르겠다.
“한아름 들꽃을 따온 것 같은 이 내추럴한 느낌, 꽃 얼굴과 얼굴 사이의 공간감은 딴 데서 함부로 따라 할 수 없을걸요~”
사장의 자화자찬을 들으니 어쩐지 좀 더 이득인 기분이다. 그녀는 웃는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은 뭔가가 맘에 안 드는 모양이다.
“사장님,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한 잔 주세요.”
“엄마, 나도 음료수!”
“어... 알겠어. 뽀로로 음료 파란 거, 밀크맛?”
“나 애기 아니야!!”
“얘가 왜 갑자기 소리를... 그래, 그럼 블루베리 스무디?”
“응!”
“멋진 신사분이 블루베리 스무디를 주문해 주셨네?”
사장의 말 한마디로 도훈의 얼굴에 조금은 우쭐해진 표정이 나타났으나 여전히 불만스럽다.
7살의 봄을 맞이하고부터 철저하게 ‘형아 병’이 걸려버린 도훈이다. 도훈이는 이제 더 이상 약국에서 넣어주거나 식당 주인이 손에 쥐여주는 ‘뽀로로 사탕’ 따위는 받지 않는다. 어린이용 포크, 수저는 받지 않고 굳이 점원에게 돌려준다. 키가 작아서 더 어리게 보는 어른들에게 좀 더 또래처럼, 더 어른스러워 보이도록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 것이다.
“오늘은 은선 사장님 안 계세요?”
‘여 사장님’이라 불렀다가 ‘은선 사장님’으로 불러 달라고 한 날부터 지혜는 그렇게 칭하고 있다.
“네. 서울 갔어요. 뭐 전해 줄 말이라도 있어요?”
“아.. 전해 주실 것까지는... 그냥요, 일요일 11시에는 독서 모임 하는 날인데 못 나간 지 오래됐거든요.”
“못 나가요?”
“네, 보시다시피 남편이 주말에 못 쉬어서...”
“엄마~! 아빠 쉴 수 있어~! 왜 자꾸 모르는 아저씨랑 친하게 말해~!”
아까부터 아들이 생떼를 쓰는 이유를 몰랐던 지혜였다.
엄마가 도훈의 아빠 아닌 다른 남자에게 꽃도 받고 말도 섞는 것이 질투 나는 것이다. 왜 ‘우리 아빠’ 말고 모르는 아저씨랑 친하게 지내느냐, 그 마음은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아이들의 본능 같은 것이다.
“쓰읍- 도훈이, 오늘따라 어른한테 예의 없이 왜 이러지-”
톤 다운된 목소리로 엄하게 끝을 늘어 빼는 지혜의 핀잔에도 도훈이의 튀어나온 입술은 들어갈 생각이 없다.
“도훈이? 도훈아, 아저씨는 꽃 파는 아저씨야. 도훈이 엄마가 여기 커피 파는 이모한테 도훈이 아빠 자랑을 얼마나 많이 하는데~, 오늘 꽃 사러 왔다가 커피 이모가 안 나와서 아저씨가 대답해 준 거야. 도훈이가 엄마 생각하는 마음이 아주 기특하네. 엄마 지켜줄 줄 아는 거 보니 다 컸네~! 여기 도훈이도 파란 장미 한 송이.”
꽃 사장은 마술사인가. 위험 신호를 담당하던 도훈이의 편도체는 이내 초록 신호등으로 바뀌었다.
파란 장미와 블루베리 스무디에 흡족해진 도훈이는 가져온 <나무집> 책에서 해적 ‘나무머리 선장’과 선원이 그려진 그림에 푹 빠진다.
“아까 독서 모임 하는 날이 일요일이라 못 나간다고 했던가요?”
“네... 토요일이라도 별 수 없지만요.”
지혜는 특별히 남편에게 불리한 말이 되지 않게 도훈이를 신경 쓰며 말했다.
“그럼 뭐가 걱정이에요? 만들면 되잖아요.”
“네? 제가요? 아니에요~! 저는 누가 이끌어 주면 잘 따르는 스타일이지, 리더십 같은 거 하나도 없어서요. 일도 살림도 바빠서 그런 것 신경 쓸 자신도 없고요...”
“잘할 것 같은데? 책도 많이 읽는 거 같고, 말도 잘하고. 말 잘하는 거 하곤 상관없겠다만.”
“책도 읽은 지 몇 달밖에 안 됐는데... 게다가 일단 제가 모임에 언제든 혼자만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요... 일 크게 벌였다가 욕먹기 싫어요.”
“작게 벌이면 되지 뭐. 요즘은 핸드폰 하나로 못하는 게 없던데. 책벌레 손님한테 맞는 쪽으로 다시 찾던가 해 봐요.”
책 읽기 바쁘고 모임에 못 나가는 신세만 한탄했지, 만들어 볼 생각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지혜였다.
여태 ‘선플라워 카페’에 나름 단골이라 생각했는데 오늘같이 남자 사장이 말을 많이 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카페에는 ‘대화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지 은선 사장이 자리를 비우니 남편 사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지혜가 아들 앞에서 낯선 남자 어른의 이름씩이나 묻는 날에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테니까 그분을 ‘꽃사장님’이라고 칭하기로 마음먹는다.
도훈이는 블루베리 스무디를 배 터질 때까지 흡족하게 먹었다. 그리고 뱃속이 춥다며 처음으로 음료를 남겼다. 음료를 남긴 아들의 표정에 만족감이 어려 있다. ‘고망고’에서 미니 사이즈의 ‘식후땡 망고’ 음료는 먹어 봤어도 어른들이 먹는 양의 블루베리 스무디는 처음이다. 스무디를 시작했으니 앞으론 카페에 갈 때마다 자기 몫을 주장할 것이다.
지혜는 카페를 나오면서 투명 비닐로 가볍게 감싼 ‘오늘의 꽃’ 다발을 왼손에 들고 있다. 동시에 오른쪽 어깨엔 세상 모든 짐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쳐 매어 왼쪽으로 그녀의 상반신이 휘영청 꺾인다. 균형이 안 맞는 저울 같다. 꽃들의 목이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살피던 지혜는 비로소 자신을 위해서 한 번도 꽃다발을 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동안 옷을 살 때는 때가 타도 표시 안 나는 ‘블랙’ 색상 아니면 ‘네이비’였다. 물건을 살 때도 제일 싸면서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다이소에는 그야말로 ‘구경’ 삼아 갔을 뿐인데 빠져나올 때는 마치 ‘오늘 다이소에 들를 줄 나는 알고 있었다’라는 듯이 가방에서 장바구니가 나온다. 2만 원 치 잡동사니를 알뜰하게 장바구니에 담아 넣으며 아주 현명한 소비를 했다고 믿는 패턴이었다.
생활에 필요해서 사는 용품이 아니라 아름다운 순간을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며칠 후 시들어서 버려질 이 꽃다발의 존재는, 특별하지 않은 날에도 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새로운 자각을 심어주었다. 낙타같이 짐만 지고 살면서 아들과 남편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희생을 하고 사는지 주장할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 작은 선물이나마 주는 버릇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그녀는 하고 있었다.
꽃도 팔고 커피도 파는 동네 카페 사장 내외를 통해 지혜는 점점 독서력이 상승하고 내면이 성장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카페에서도 느낄 수 없는 따뜻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꽃사장님’이 무심히 했던 말을 다시 곱씹는다.
지혜가 ‘일 크게 벌였다가 욕먹기 싫어요’라는 말을 했을 때,
‘작게 벌이면 되지 뭐.’라고 꽃사장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에게 맞게. 내 상황에 맞게.
‘내가, 모임을... 내가 어떻게...? 그렇지만 이렇게 혼자서만 읽으니 깨달음을 나누지 못하는 외로움이 있어. 이러다 혼자만의 굴을 파고 그 속으로 점점 고립되어 가는 건 아닐까? 고립되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바쁘다며 언제 또 책을 놓을지도 모른다. 동지가 필요하다. 기존 독서 모임은 참석하지 않으면 전혀 책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분위기였지. 참석도 안 하는 내가 오늘 어떤 얘기 나누었냐고 물어보기도 멋쩍고. 꾸준히 참석하는 사람들도 결혼을 안 했거나 아이를 다 키운 분들이 나온다. 좋은 책 내용을 나누고 책을 손에서 안 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 나서는 건 너무 싫은데...
독서 모임? 못 나가면 안 나가도 되는 걸로 만들면 돼.
용기를 내서 조금만 일을 벌여보자. 지르자!’
[맘톡방, 입주자 네이버 카페, 아파트 커뮤니티 앱 아파트너]
안녕하세요~^^
독서루틴을 잡기 위한 카톡 독서 모임을 함께 해요. 여성분만 ‘10명’ 모집합니다. 소모임 공동체 유대감 등 특성상 한정한 것이니 남성 입주자님들은 섭섭해 마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참가비는 없고요, 좋은 내용을 서로 공유하면서 좋은 습관 함께 만들어요!
- 책 읽는 습관을 만들고 싶은 분
- 책을 읽다가 좋은 내용을 발견했는데 금방 잊히는 게 아쉬운 분
-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만, 갈 상황이 안 되는 분
자기 계발서, 육아서, 고전, 소설, 무엇이든 좋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준비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읽기로 한 책 1권
● 편히 필사할 노트(A5 책사이즈 추천)
● 볼펜 2가지 (흑색. 청색 추천)
ㅡㅡㅡㅡㅡㅡㅡㅡ 인증방법 ㅡㅡㅡㅡㅡㅡㅡㅡㅡ
0. 성공 시 나에게 줄 선물 고르기 (5천~2만)
1. 하루 15분 이상 책 읽고, 1줄 이상 필사 (따라 쓰기)
2. 다른 색 볼펜으로 느낀 점을 2줄 이상 쓰기
3. 그날 필사한 노트 사진을 카톡방에 인증.
4. 시작일은 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 15일 이상 성공할 시에
5. 골라놨던 선물구매 사진인증 하는 거예요~
6. 매월 1일마다 재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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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 성공 기준은 책 문장 베껴 쓰기 1줄 + 내 생각 2줄입니다.
절대 부담 갖지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카톡 아이디로 문의하시면 오픈 채팅 초대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골똘하게 생각한 지혜는 밖에 나가지 않고 손바닥 안에서 독서 모임을 하기로 한 것이다.
만난다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처지가 비슷한 여자들이라면 ‘정모’를 해도 지혜네 집에서 아이를 재운 뒤 심야에 모일 수도 있다. 오며 가며 인사할 수 있는 거리에, 책 좋아하는 이웃 커뮤니티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아무도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본전이다.
그러나 제발 한 명이라도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그 얼마나 큰 소득인가.
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 안에서 독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책 읽는 습관을 서로 격려할 수 있는 온라인 친구를, 지혜는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