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스 Sep 19. 2024

내 이웃에 사는 익명의 독서광들, 그 첫 만남

11화_오픈채팅의 그 흔한 풍경

지혜는 독서 모임 카톡 오픈 채팅을 개설 후 그녀가 사는 아파트 내 커뮤니티에 모집 글을 썼다.

오픈 채팅에 누군가의 인사말이 입력되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_< 첫 번째로 입장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도 안 들어오시면 어쩌나 했는데 감격스러워요~」

맘톡방에서 오픈 채팅 링크를 타고 행운의 첫 멤버가 입장했다.

「저는 10동에 살고 신지혜라고 합니다~ 7살 아들 하나 있어요.」

「저는 조서연입니다. 아이는 5살이에요.」

동호수 인증이 되는 맘톡방에 있다는 것은 아이 키우는 엄마라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사진이 ‘블록을 무너트리는 라이언’인 것으로 보아 아들 맘일까 생각해 본다. 기존 경험데이터로 보면 딸맘은 보통 ‘초롱초롱 어피치’ 사진이나 ‘머리 빗는 네오’ 사진일 확률이 높았고, 아들 맘은 ‘리듬 타는 제이지’나 ‘쑥스럽게 인사하는 프로도’ 등등 캐릭터를 모두 신중하게 고르는 모양이었다. 성별을 물어보니 예상대로 아들 맘이 맞다.


 자연스럽게 1:1 대화처럼 아이 이름도 나온다. 상호 존대를 하되 닉네임 실명제와 나이, 책의 관심 분야를 간단히 기재하기로 공지한다. 얼굴 모르는 분과 1:1로 대화하니 고등학교 때 한창 유행한 세이클럽 채팅을 하는 것 같이 들뜨고 부끄럽다. 


「으네 님이 들어왔습니다」가 잠시 후

「주은혜 / 42 / 자기 계발 님이 들어왔습니다」로 바뀐다.

 10살짜리 딸 하나가 있으며, 자기 계발과 인문학을 좋아한다고 한다. 인문학을 좋아한다니 독서 고수인가 보다. 

 그다음 사람이 들어올지 기다리고 있는데 지혜의 개인 오픈 채팅 프로필에 새 메시지가 떴다.

「안녕하세요~ 카페 독서 모임 글 보고 왔습니다.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저는 10동에 살고 신지혜라고 하고요, 7살짜리 아들 하나 있어요^^」     

「넵, 저는 배도영이고 1동에 삽니다. 아이는 아직입니다. 」


 지혜는 이 말에 두 방을 맞았다. 하나는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이름이고, 또 하나는 맘톡방에서만 있다 보니 아이에 대한 정보를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에 반성을 느끼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자기소개가 아이 소개가 되었는가. 소개할 말이 몇 동인지와 아이 신상밖에 없었던가? 신혼부부 특공 당첨이 많고 아이들이 특히 많은 아파트라 당연히 책 좋아하는 기혼 여성은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속단한 건 아니었는지. 

얼굴을 모르니 이름도 조심스럽다.


「아 넵, 저희는 여성 모임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네, 그러면 이틀 뒤 3월 30일까지 필사 노트와 책 준비 해주시고, 오픈 채팅에 초대해 드릴게요~」

맘톡방에서 3명, 카페에서 2명, 아파트너에서 4명이 들어왔다.


 카페나 맘톡방은 그렇지가 않은데 ‘아파트너’ 커뮤니티 앱에 독서 모임원 모집 글을 올리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던 지혜였다. 가뜩이나 한 달 전에 소통공간 게시판에서 특정인과 입주자 대표회의의 특정인끼리의 ‘의견 배틀’이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앱을 설치한 전 세대에게 새로운 알림이 가서 놀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도 분위기를 염려하는 대화가 오고 가는 게 예사였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팩트로 시작되던 의견 대립이 감정이 격해지면서 둘 다 잘한 것 같지 않은 지경이 되고 조용히 살고 싶다는 기분만 남는 것이 공통된 심리였다. 공동주택관리규약이나 법의 테두리는 너무 어려워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소송 전까지는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독서 모임 모집 게시글을 올린다는 것은 전 세대에 제목과 함께 알림이 발송되는 행위라 지혜에겐 진땀 빼는 용기였다. 먼저 들어온 서연이 ‘아파트너에도 올려보면 어떨까요?’라고 말했고, 모임장 지혜는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눈 딱 감고 글을 등록한 것이다. 노력은 효력이 있었다. 가장 많은 회원이 아파트너에서 모집되었다. 

 모두가 규칙에 맞게 필사를 인증했다. 필사 내용을 보고 격려의 코멘트도 남겼다. 그 격려의 공감대가 필사를 더욱 하고 싶게 만들었다. 한편, 쓰다 보면 비밀일기가 되는 경우도 흔해서 ‘내 생각’에 모자이크도 등장하고 심지어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을 뜯어 일부를 가려놓고 ‘휴자이크’라고 말하는 재치 있는 모임원도 있었다. 휴자이크 아래에는 파란 만년필 글씨가 눈물자국으로 번진 흔적이 얼핏 비쳐 있었다. 

지혜를 제외하면 모두 글씨가 반듯반듯했다. 필사인증이 아니라 글씨인증 같았다.


지혜는 남편에게 아파트에 글 올린 사건 하며, 모집된 회원들과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고 말했더니 너무 잘했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일 벌였다고 뭐라 할 줄 알았더니 책 싫어하는 자기 입에서 칭찬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당연히 칭찬할만하지~ 이제 독서 모임 가겠다고 주말에 도훈이 봐달라고 얘기할 일 없을 거고~”


“아니지. 그건 그거지~ 거길 자주 못 가는 상황이니까 온라인으로 하나 만든 건데? 기회 되면 오프라인 모임도 가야지~~~”

“아... 그래? 뭐 어쨌든. 근데 정말 잘 만들었다. 나 어차피 퇴근 마치고 늦게 들어오니까 도훈이 재워놓고 엄마들끼리 친분도 쌓으면서 울 집에서 맥주라도 마시든~.”

“엄마들이라니~ 신혼도 있고 미혼도 있어.”

“아~! 그래~?”

 아까보다 한 톤 높은 긍정의 추임새다.

이사 온 뒤 아이의 어린이집이나 학원 엄마들 이외 인간관계를 시도한 지혜를 새삼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보다 여성 모임이라는 그 ‘건전함’에 가장 안심하는 눈치다.


 사실 지혜는 남편보다 아들 눈치를 더 봤다 할 수 있다. 카페 꽃사장과 엄마가 웃으며 대화 몇 마디 하는 것에 묘한 배신감을 느꼈었던 아들이었다. 아저씨랑 왜 친하게 얘기하냐며 타박을 주는 예민한 시기의 아들을 얼마 전에 경험한 터라 오해의 소지를 아예 ‘자체 차단’ 해버린 것이다. 

‘책은 좋은 것’이어야 한다. 엄마가 책 읽는 활동이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오면 안 된다는 게 지혜의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미인은 나뿐인 거 같아~?”

우스갯소리로 말하며 예쁜 글씨들을 경외감 없이는 볼 수 없다는 둥, 경시대회인 것 같다는 둥 실없는 소릴 하고 있는데,

“너 악필 끝까지 유지해라~”

“왜?”

“그래야 악필인 사람이 들어와도 글씨를 쓸 수 있을 것 아냐.”

“일리가 있네.”


 다양한 각자의 책을 필사하고 인증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처음엔 그림일기의 하단처럼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게 어려웠던 회원들이었다. 그러다 점점 노트 인증사진에 글밥이 늘어갔다. 

 한 달 중 15일만 채우면 미션은 성공이지만 지혜는 거의 매일 인증을 했고 feel 받은 날엔 4페이지를 필사하고 생각 쓰기를 인증했다.

 회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걱정되면서도 멈추기 어려웠다. 필사하며 읽는 독서법은 지혜에게 너무나도 잘 맞았다. 책을 읽었을 때 무슨 생각이 떠오르려다 말거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알쏭달쏭한 것은 일단 노트에 적고 나면 생각도 확실히 할 수 있고 이해가 좀 더 잘 되었다.

 

4월 1일에 시작한 독서 필사 모임이 어느덧 15일 지났다. 한아파트에 살면서 얼굴을 한 번도 마주하지 않은 채 익명의 여인들이 보름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두 명은 봤다.


 모임을 만든 사람의 얼굴이라도 알고 있어야 정 붙이기 쉬울 것 같아서 여러 번 셀카를 찍었다. 그중 가장 잘 나온 것으로 프로필 사진등록 해 두었는데 용케도 지나가다 얼굴을 알아본 회원을 만난 것이다.


"지혜님~~!!!"

지혜는 상대방을 알지 못한다. 모르는 사람이 손을 반갑게 흔들며 외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