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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Oct 17. 2024

[최종화_에필로그] 독서모임 2주년

23화_'책 봄' , 그리고 봄이 옴.

신도시 한 아파트 독서 모임 ‘책 봄’. 그녀들에게도 봄이 왔다.

여자 셋 이상이 모이면 뭐가 깨질까? 접시?

편견이 깨진다. 독서모임을 하면 고정되어 있던 관념이 깨지고 남의 머리를 동원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해서 독서 모임으로 출발한 그녀들은 또 한 번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꽃이다.

꽃을 좋아하는 그녀들은 선플라워 카페에 모여 미리 주문한 ‘오늘의 꽃’을 받는다.

지혜가 감탄한다.

“어머~어떻게~! 너무 예뻐~~!.”

선플라워 카페의 작가 은선은 커피와 차를 만들고 꽃을 담당하고 있는 은선의 남편 창현은 오전부터 작은 꽃다발 줄기 끝에 물주머니까지 예쁘게 달아서 전달해주고 있다.      

“꽃은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것 같아요. 봄엔 이렇게 튤립이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정미의 말에 지혜가 말했다.

“저 작년 12월에 ‘발코니 1’ 화단에 심은 튤립 구근이 자라서 꽃 3월 초에 봤거든요~? 근데 일주일도 안되어서 활짝 펴 버리더라고요~ 구근을 여러 종류로 심었는데 어떤 건 국그릇처럼 개화하고 또 어떤 건 괴물 혓바닥처럼 뾰족한 것이 뒤로 확 젖혀져서 좀 징그러워지는 종도 있더라고요~?”

“하하, ‘발코니 1’이래~. 안방 베란다라 하면 되지~. 튤립이 다 같은 튤립이 아니에요?”

“네~ 그래도 이렇게 오므린 봉우리 모양은 너무 이뻐요~”


지혜의 대답에 서연이 맞장구쳤다.

“맞아요, 저는 튤립도 너무 예쁘고 라넌큘러스도 예쁘더라고요~ 얇은 천을 겹겹이 돌려 감아놓은 느낌이 너무 귀여워요-”

“우와, 서연님 표현이 너무 예뻐요. 라넌을 그렇게 표현하다니~ 시인 같은데요?”

“고마워요.”

   

이번엔 주희가,

“근데 꽃 버릴 때는 너무 아깝지 않아요? 길어야 일주일. 전 차라리 꽃 화분이 좀 더 오래 보고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수국은 화분이 확실히 더 오래가니까. 근데 화분도 난 잘 죽이더라고. 날파리 생기고.”

“그거 ‘뿌리 파리’에요. 습하고 환기 안되면 생기더라고요.”

지혜의 대답이다.


민지가 갑자기 생각 난 듯 말했다.

“근데 꽃 받으면 다들 좋아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오랜만에 친구 만날 때 여기서 꽃을 사서 주거든요? 리액션이 좋은 친구예요. 그러면 친구가 뜻밖이란 표정으로 활짝 웃어요. ‘어머, 꽃을!’ 이러면서요. 그럼 저는 그 표정 보는 게 너무 기분 좋은 거예요. 꽃은 받을 때도 좋지만 줄 때 더 기분 좋은 것 같아요.”

“민지 님 천사이시다~ 나두나두! 진짜 리액션 제대로 할 수 있는데...”

모두가 즐겁게 웃는다.


이번엔 수진이 말했다.

“저도 꽃이 너무 좋아요. 요즘엔 한 달에 한 번 정도 꽃을 사지만 그전엔 매주 꽃을 구독해서 꽃병에 꽂았거든요. 근데 그것도 안 쓰고 모았다면 제법 되더라고요.”

“와- 매 주면 진짜...”

“그래서 저는 꽃을 사는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고 싶어요. 진짜 그러면 좋겠어요.”

“저는 책 사는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부유해졌으면 좋겠어요. 집에 도서관 만들고 싶어요. 그러면 더 큰 집도 필요하겠죠?”

“하하 저도요~.”은영이 덧붙였다. “그리고 전 매주 청소업체 한 번씩 부를 수 있는 삶! 정리정돈이 체질에 너무 안 맞아요.”

그 말에 은혜가 말했다. “청소 체질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생각만 해도 좋네요. 청소업체 매주 부르는 삶. 저는 빨래 개어주는 기계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예전엔 빨래 말려주는 기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건조기 생겼으니 언젠간 빨래 개어주는 기계도 나오겠는데요?” 

   

주희의 말에 정미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죠, 돈은 결국 건강에 쓰이게 되잖아요. 돈 쓸 일이 없는 게 최고죠.”

“이렇게 한 가지 주제 나오면 우린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나나 봐요. 결국, 돈 걱정 없을 정도로 돈이 있는 게 좋겠어요. 그게 경제적 자유잖아요.”


“저는 먹을 거 돈 생각 안 하고 사 먹을 만큼요!”

서연이 필사적으로 말했다가, 다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실은 저 ‘책 봄’에 할 말이 있어요.”

“할 말이요? 뭔데요?”

지혜가 괜스레 졸아들며 조심스레 묻는다.     


“저 다음 달에 필사 1달만 쉬고 싶어요.. 실은... 둘째가 생겼거든요... 바로 생길 줄 알았는데 너무 안 생겨서 힘들었거든요. 이제 책도 예전보다 많이 읽으니까 태교도 더 잘 될 것 같아요. 너무 졸리고 먹덧도 와서.. 얘길 할까 말까 하다가... 12주 되었거든요.”


“네에? 서연님.. 저도요! 저도 애기 생겼어요. 13주예요.”

신혼인 도영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모두가 너무나 기쁘고 놀라운 표정으로 눈이 크게 벌어졌다.

“대박.. 도영님! 서연님..!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이번엔 사랑이 소식을 전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저도 축하해 주세요. 저 어제 남자친구랑 웨딩홀 내년 1월로 예약 잡았어요. 남자친구랑 결혼하기로 했어요.”

“사랑님도요? 와.. 오늘 왜 이렇게 겹경사예요?! 사랑님 예전에 결혼 생각 없다고 하셨었는데 결혼하시는 거예요?”

“네. 이제 마음 잡았어요. 원래 결혼 생각 없었는데 우리 ‘책 봄’이랑 있다 보니까 결혼하고 싶어 졌어요. 지혜님이 변하시는 모습도 영향이 있었고요.”

“네? 변하다니 세상에.. 제가요? 저는 결혼을 후회할 때도 있었고 아이 때문에 제약을 느낀 적도 많았거든요. 저 필사인증 할 때 모자이크도 한 번씩 있었잖아요. 종이에 대고 화 풀고~막~.”

“제가 기억나기로도 초반에 모자이크 많으셔서 힘드시거나 비밀 있으시구나 했거든요. 그리고 가슴에 화도 좀 있으신 것 같고. 저희 엄마도 그랬거든요. 아빠는 속 썩이고 혼자 다 하시고. 결혼하면 여자가 무조건 손해구나. 좀 더 즐겨야겠다, 그런데 최근 한 1년? 너무 잘 지내시는 것 같고 행복해 보여요.

뭔가 마인드가 달라지신 것 같달까요.”


“사랑님... 전 ‘변했다’라는 그 말이 너무 기뻐요. 은연중에 미혼인 사랑님, 은영님한테 결혼이나 육아에 부정적인 인식을 주면 어쩌나 걱정도 했어요. 근데 이렇게 경사 소식을 세 명에게 동시에 들으니까 모임을 만들기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혜의 목소리가 떨리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그녀들은 축하와 기쁨으로 꽃다발을 들었다. 선플라워 카페 은선이 사진을 찍어준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들의 얼굴과 똑같은 꽃다발이 있다.

똑같은 재료로 만든 10개의 꽃다발이 똑같은 아파트에 사는 그녀들 삶의 형태처럼 모두 다르다.

하지만 모두, 예쁜 꽃이다.


************                                                                   

결혼을 하고 나서 더 잘 살아 보려고 노력했지만 여러 번의 경제적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번은 제게는 너무 큰 절망이라 모든 것에 의욕이 사라졌습니다.

가족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니던 회사 사장님이 며칠 사이에 너무나 달라진 저의 모습을 보고 위로도 시도해 주셨지만 제 눈에서 빛은 좀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약일까요, 보름 정도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느닷없이 한 마디를 들었습니다.


"박대리우리나라 성인 중에서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고리타분한 말씀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까지 질문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두 돌도 안된 아이를 봐서라도 일어서야 했습니다. 절박했습니다.     

'다 내려놓고 책이나 읽어 볼까?'

저는 다음 날 사장실에 있는 여러 책 중에 한 권을 빌렸습니다.

저의 독서는 그때 시작 되었습니다.

점심시간, 버스, 아이 재운 뒤.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던 제가 그 해에 50권 남짓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책으로 도피하고 있던 저는 어느 날 남편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책은 도대체 왜 읽는 거야?"


그 말은 순수한 격려의 물음이 아니었습니다. 심야에 일을 마치고 집에 온 남편에게 짜증을 낸 뒤였습니다.

 오늘도 회사 일, 퇴근길에 시장에서 장을 보고 어린이집 하원시킨 후 놀이터 들렀다가 집에 가서 아침에 못다 한 설거지하고, 저녁을 짓고, 놀아주다가 재우느라 오늘 책을 한 줄도 못 읽었다고.

남편에게 울분을 토로하며 짜증을 내고 있었습니다. 고집스럽게 책을 읽다가 현관문이 열리고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린 저를 보고 물은 것이었습니다.

책은 도대체 왜 읽는 거야? 


5개월 전에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몸이 회복되면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열망이 작년보다 커졌습니다.

<신도시 그녀들의 독서법 찾기>는  몇 년 전 다니던 회사의 사장님이 던져주신 질문과 나중에 남편이 던진 질문에서 시작된 연재입니다.

답을 찾는 과정은 저를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살면서 계속 바뀔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겠지요.

책은 왜 읽는 거야?라고.


<신도시 그녀들의 독서법 찾기> 연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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