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온도를 맞대는 시간이 필요해

12일 차 : 온도

by 나예스

재작년 11월부터 물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초등학생 아이가 생명과학 방과 후 수업 시간에 데려온 네온테트라 2마리가 시작이었다. 열대어는 2마리였지만 대부분의 취미가 그렇듯 많은 장비가 투입되었다. 오염을 관리해 주는 여과기, 적정 온도를 담당하는 수중히터, 어항, 바닥재, 뜰채, 스포이드, 사료, 박테리아, 수초, 이끼청소도구, 교체용으로 미리 며칠 수돗물을 받아놓은 통. 생명을 책임지고 기르려면 많은 돈과 관심과 시간이 들어간다.

물 생활 다시 시작 한 날의 볼품없는 수조


어항이든 사람이든 관심을 주는 만큼 자라는 것 같다. 아파트에서 어항채로 나눔을 받았다. 생각보다 어항이 커서 손수레에 싣기 어려웠지만 큰 물속 세상은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좀 더 예쁜 열대어를 채우고 수초도 심었다. 새로운 물속 친구들을 들일 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물 맞댐


물을 맞댄다는 이 행위는 입수쇼크나 스트레스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다. 우선 '온도쇼크 방지'를 위해 비닐에 봉해서 데려온 열대어들을 바로 집에 있는 어항에 넣는 게 아니라 봉지째 30분에서 1시간 정도 수면 위에 둥둥 띄워둔다. 그러면 어느 순간 차가워진 비닐 속 물과 미지근한 어항 물의 온도가 비슷해진다. 그런 다음엔 '수질쇼크 방지'를 위해 비닐을 개봉한 후 내 어항 속 물을 스포이드로 조금씩 부어 섞어준다. 이걸 게을리하면 바로 죽지는 않고, 4~6일에 걸쳐 서서히 죽는다. 인간에게 공기의 질과 바깥 온도가 중요하듯, 물속 생물들에게도 수온과 수질이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이 녀석들은 마스크나 외투도 없으니 얼마나 생명에 큰 타격일까.

2025년 10월 물맞댐
2026년 1월 어항. 수초 폭풍번식중.


열대어보다 덩치 큰 사람에게도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온도가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첫째, 환경적으로는 계절마다 바뀌는 온도가 있다. 이 온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옷을 얇게 혹은 두껍게 입는다. 그리고 카페에서 '뜨. 아'를 마실지 '아. 아'를 마실지도 결정짓는 요소다. 둘째, 관계에 있어서는 매너의 온도다. 예절과 배려심의 중요도를 일찍 간파한 당근마켓은 매너온도로 거래여부를 결정짓게 했다. 물건뿐 아니라 태도 평가를 주고받으며 신용점수를 잘 유지해야 한다. 지방 도시에 사는 남동생은 얼마 전에 수도권인 엄마네 집과 내 집을 왕래하며 당근을 캐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노다지다. 노다지! 여기로 이사 오고 싶네."
당근마켓 앱의 스크롤을 올리던 남동생의 눈동자가 바빴다. 엄마를 데려다 드리는 길에도 차에 싣고 온 물건을 팔고 돌아왔다. 우리 집에 이틀간 놀러 온 목적이 이쯤 되면 '거래'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남동생은 사기당하지 않기 위해 매너온도를 살폈다. 99.8도 같은 조작된 온도를 고르고, 최소 45도 이상의 매너 판매자를 골라 거래했다. 내 온도는 몇인가 보니 48.6도였다. 휴우, 당근 전문가가 얘기한 커트라인보다는 높아서 다행이다.

나의 매너 온도

사람을 가장 쾌적하고 평온하게 하는 기분 좋은 온도가 26도라고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당근은 과열되어 있었다. 동생이 머물다 간 날은 매우 추운 날이었다. 우리 집에 남동생네가 머물던 방을 포함한 방 2개가 난방장치 고장인 줄도 모르고 재웠다. 빨리 따뜻해지지 않는다며 전기장판도 줬는데 자기 전에 실수로 꺼버렸는지 밤새 떨었다고 했다. 동생은 뜨거운 당근과 차가운 잠자리를 경험하고 남쪽도시로 돌아갔다. 다음에는 동생이 오기 전에 온도를 잘 점검해 주어야겠다.

동생네는 갑자기 와서 자고 가는 편이라 나도 집상태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채로 맞이하게 된다. 이때 아니면 언제 보겠나 싶기도 하지만, 내 안에서는 사실 작은 쇼크가 일어나서 예민해진다. 미친 듯이 청소하고, 미친 듯이 장을 보고, 미친 듯이 미리 일을 끝내야 하는 압박감이 있다. 일 년에 얼마 보지도 못하는데 준비없이 맞이 하기에는 서로가 서운해진다. 최소 2주일 전에는 알려달라고 말해야겠다. 내 말에 가시가 돋지는 않았는지 내 말의 온도도 잘 점검하고, 최적의 컨디션을 미리 만들어 두고 불러야겠다.

온도 맞댐.


사람 관계에서도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아야 평온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서로의 온도를 맞대는 시간적, 체력적 여유를 가지고 대해야겠다. 그럼 애써 뭘 더 껴입거나 벗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숨쉬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