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의 쓸모를 찾아주는 부녀

by 나예스

“좀 버려. 버리고 사, 제발.”

다이소가 보이길래 ‘잠깐’ 들렀다가 생필품 열 가지 이상을 사 와서, 숨겨 놓은 걸 남편에게 들켰다. 남편은 플라스틱 통을 굳이 또 살 거면 제발 갈색 뚜껑 달린 죽집 포장 용기부터 좀 버리고 사라고 한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 나는 잡동사니 맥시멈 라이프를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수상한 생활 습관이 내겐 낯설지 않다. 어릴 적, 아빠는 못 쓰게 된 물건을 다시 살려내는 데에 꽤 진심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 쓴 듯한 물건의 쓸모를 자꾸만 상상하고 만다.


동생들은 그렇지 않은데 나에겐 남다른 준비성이 있었다.

“가방에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여행 짐이 많다고 손사래 치던 친구들은 결국 내 만물 가방 덕을 톡톡히 봤다.

“점심 먹은 게 소화가 안 되네. 근처에 약국 없겠지?”

하면 내 가방에서 약이 나왔고,

“앗, 와인만 사고 와인 따개 안 들고 왔다!”

탄식할 때 내 가방에서 와인오프너가 튀어나왔다.

“헉, 설마 거기서 와인 따개가 나올 줄이야!”

그 순간의 감탄은 내게 묘한 쾌감을 준다. 어딘가 불안해서 모든 걸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내 성향이 그럴 때는 빛을 발했다. 언제부터 나는 물건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는 ‘보부상’이 되어 버린 걸까. 어릴 적, 망가진 것을 그냥 두지 않던 아빠를 보면서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연필꽂이는 언제나 꽉 차 있었다. 양돈업을 하실 때 쓰시던 곡선형 겸자 가위만 해도 크기별로 세 개쯤 꽂혀 있었고 그것들은 철사나 부품을 고정해서 잡고 당길 때나 무언가를 만들 때 쓰였다. 고장 난 물건이 생기면 바느질은 엄마 몫, 그 외의 모든 수리는 아빠의 일이었다. 금속 절단용 그라인더, 용접기, 페달 달린 재봉틀까지 다룰 줄 아는 아빠는 못 고치는 게 없었다. 내가 산 물건마다 집요하게 붙어있는 ‘Made in China’ 스티커처럼 아빠가 고친 물건에는 반드시 아빠만의 표식이 있었다. 사인을 새겨 넣거나, 녹 방지를 위해 초록색 래커로 칠하거나. 그건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새 생명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보였다.

순간접착제를 다룰 때는 굵은 나일론 실로 부러진 곳을 감은 뒤 그 위에 접착제를 떨어뜨려 튼튼하게 붙여 주셨다. 순간접착제가 잘못 흘러 아빠의 검지와 엄지가 붙어버리면 커터 칼로 붙은 지문을 조심스럽게 썰어 떼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시절, 산골에서 읍내까지는 차를 타고도 제법 걸렸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 내셨다.


내가 여덟 살 겨울, 집 앞 냇물이 얼자 아빠는 ‘얼음 썰매’를 만들기 시작하셨다. 돼지우리를 짓고 남은 건축자재를 모아 용접을 시작하셨다. 하필 작업 장소가 변소 옆이라니. 똥 작대기를 저은 지 얼마 안 된 특유의 냄새에 아빠의 담배 냄새를 실은 겨울바람이 내 코빼기를 쳤다. 코와 뺨은 얼얼한데 제작 과정은 너무나 흥미롭고 감탄스러웠다. 합판에 박히는 타카 소리, 망치질의 진동, 그라인더로 얼음 썰매의 쇠 날을 갈때 튀는 작은 불꽃, 거기에 철근 끝을 어묵꼬치처럼 뾰족하게 다듬어 인체공학적인 둥근 파이프까지 용접해 붙인 손잡이까지 완벽했다. 쪼그려 의자에 앉아 타면 발 받침대까지 있었으니, 남들이 무릎 꿇고 탈 때 나와 동생은 다리 한 번 저리지 않고 빙판을 쾅쾅 찍어가며 질주할 수 있었다.


내 기억 속 아빠가 가장 멋져 보였던 순간은 이따금 나오는 그런 세상 하나뿐인 맞춤형 배려였다. 쓸모없는 물건들의 쓸모를 찾아 주는 게 삶의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아빠는 도시로 이사 간 뒤에도 아파트의 재활용장을 유심히 살피곤 했다. 무더운 여름날 고장 난 선풍기를 세 대나 주워 와서는 분해하고 각종 공구로 고쳐서 작동시켰다. 조리학원에서 내가 쓰던 아끼는 식칼의 목 부분이 부러졌을 때도 새것처럼 고쳐 주셨다. 쓸모를 다한 물건을 끝까지 살려내는 그 끈기는 아빠가 가진 가장 빛나는 재능이었다. 어른이 되어 타지 생활을 하다가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집안 물건의 3분의 1이 공기구로 바뀌어 있었다. 공구 서랍장으로 바뀌어 버린 우리가 썼던 옷 서랍장은 너무 무거워 왠만한 힘으로는 여닫지도 못했다. 아빠에게 장비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오래된 아파트가 안 무너진 게 신기할 정도다.


지금 우리 집에도 아빠에게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공구가 몇 개 있다. 그건 남편이 산 게 아니다. 거의 내가 마련하거나 아빠 집에서 한두 개 업어온 것이다. 손잡이나 샤워기 교체를 내가 해 놓으면 남편은 늦은 퇴근 후 박수 담당이다. 해머 드릴을 쓰는 일, 식탁 의자 커버 수선까지 웬만한 수리는 내가 한다. 전문가를 부르면 비싸니까 방법을 잘 몰라도 일단 해보는 것이다. 몇 달 전에는 프린터기를 열어 안쪽 부품을 갈았다. 서비스센터를 부르지 않았으니, 부품값까지 못해도 15만 원은 아꼈다. 자신감이 붙고 나니 엊그제는 로봇청소기가 먼지통을 비울 때마다 나는 소똥냄새의 원인을 찾기 위해 물걸레도 빨아주는 충전기기를 열었다. 먼지통으로 가는 주름관에 악취가 배여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일곱 살 때 치아가 흔들리는데 치과를 가기 싫다고 울었다. 난감한 나는 유튜브에서 ‘이 뽑는 방법’을 검색했는데, 옆에서 같이 보더니 더욱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엄마 나한테 이렇게 할 거예요? 문손잡이에 실 묶어서 문 쾅 닫는 거 하지 마세요!”

아들은 이전보다 더 겁먹은 눈빛이었다. 나는 엄마가 내게 뽑아줬던 것처럼 실을 묶어 이마를 칠 생각을 하니 나 역시 떨렸다. 이마를 세게 밀치지도 못하면서 내가 눈을 감아버리겠지.

“알았어, 실 안 묶을 거야. 그러면 이 뿌리가 어디까지 보이는지 한번 살펴만 볼 거야. 글쎄, 살펴만 본다니까.”

나와 아들 모두를 다독이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나는 바느질 파 보다는 공기구 파인가 보다. 소독한 ‘아빠의 겸자’로 아랫니를 잡아 고정하고는 봄날 냉이 뽑듯 아들의 이를 뽑았다.

“어머, 뽑혀버렸네?”

아들은 아픈 줄도 모르고 이를 빼니 신이 났다.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수리 욕구’와 아들이 부지런히 들고 오는 ‘부러진 장난감’이 만나 내 수선 실력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아이고, 조심 좀 하지. 어쩌다 또 부러뜨렸어?”

투덜거리며 공구함으로 걸어가는 나를 보며 문득 웃음이 났다. 그렇게 망가진 장난감 하나에도 성심껏 손을 대는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 아빠의 그림자를 따라가고 있는 것만 같다. 뭔가 아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큰 사랑을 주고 있는 기분이다.


어쩌다 집에 들른 손님이 “못 보던 의자다”라거나 “화분을 들였어?”와 같은 얘기를 하면 그만 신이 나고 만다. 물건에 담긴 사연 풀이를 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 패브릭 의자 얼룩이 안 지워지길래 인조가죽으로 덧씌웠지.”

“아, 이거? 원래 깨진 화분인데 우드 퍼티로 메우고, 삼 년 전에 현관문에 쓰고 남은 페인트로 칠했는데, 감쪽같지?”

무언가를 고치고 살려내는 일은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고장 난 물건을 수선하면서 나도 아빠처럼 쓸만한 물건으로 탈바꿈시키는 재미를 느낀다. 물건 하나하나에 사연을 새기듯, ‘아직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말을 건네듯. 쓸모없는 물건을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시키는 건 어쩌면 나의 쓸모를 증명하는 것 같으니까.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