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잡으러 갔다가 길을 잃다.

미아

by 나예스

추석이었다. 할아버지댁은 대구에 있었다. 1년에 두 번, 명절마다 동생과 엄마의 손을 잡고 갔다. 가끔 아빠가 태워주고 잠시 있다 가시기는 했지만, 돈사를 비우기 어려웠다. 일꾼을 따로 두지 않은 시골에서의 양돈업은 고단했을 것이다. 아빠는 돼지들을 지키느라 본가에 가기 어려웠을 것이고 엄마는 외갓집이 제주도라 가기 어려웠을 거다.


교통수단이라고는 아빠의 트럭밖에 모르는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토를 하고, 택시를 타고 나머지 토를 하며 도착했다. 그 동네는 잘 정돈된 벌집 같았다. 골목마다 똑같은 높이의 2층집들 앞으로 똑같은 대문이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었다. 쭉 페인트칠만 검은색, 회색,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서 옆골목, 그다음 골목이 이어졌다. 사방이 뻥 뚫려있는 시골에서만 살던 일곱 살 나에게는 아무튼 어렵고 정신없는 동네였다.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니 다른 친척들이 절반 이상 와 있었다. 어른 육 남매와 식솔들까지 스무 명 넘는 사람들의 신발이 한 현관에 모였다. 모처럼 엄마가 낡은 신을 버리고 새로 산 굽이 있는 슬리퍼를 신고 왔다. 사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먼저 와서 좀 더 친해져 보이는 그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쭈뼛대고 있었다. 어슬렁 거리며 거실장에서 장식품 따위나 만지면서 지루해하고 있는데 사촌들이 갑자기 와아 하고 밖에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야가 메뚜기 잡으러 간대!"

"어디? 나도 나도!"

"야들아, 차조심하고, 동생들 잘 챙겨라!"


어어, 나도 메뚜기. 도시에서도 메뚜기 잡고 놀 만한 데가 있다고? 어딘지는 몰랐지만 그저 와르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아이들을 따라 나섰다. 신발이 그렇게나 많이 빠져나갔는데도 내가 신고 온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을 놓칠 것 같아 불안해서 나는 내가 아는 신발을 신었다. 엄마의 굽 높은 슬리퍼. 계단을 내려가다가 넘어질 것 같아 보니 신발이 반대로 뀌어져 있었다. 다시 바꿔 신고 마저 뛰었다. 신발은 너무 컸고, 골목 끝에서 사촌들의 뒤통수 몇이 사라졌다.


'저쪽이다.'

헐겁고 급한 종종걸음으로 골목 끝으로 가니 두 갈래 길이 나왔고 내 사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동네에서 줄넘기하는 서너 살 많아 보이는 언니 오빠만 보였다. 길을 잘못 들면 안 되니 내가 왔던 길을 확인하고 왼쪽 길을 조금 가보니 또 다른 골목길 갈래에 놓였다. 다시 돌아와 오른쪽으로 갔더니 찻길이었다. 그런데 사촌들이 안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뒤돌아서 가려는데 , 내가 왔던 길이 어느 골목이었더라. 내 신발을 신고 왔으면 3분도 안 걸리는 거리일텐데. 첫 번째 골목을 가다가 신발이 벗겨지면서 점점 당황스러웠다. 첫 번째 골목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할아버지 댁인 초록색 대문이 보였다. 그런데 몇 집 더 지나 초록색 대문이 하나 더 보였다. 대문은 잠겨 있었다. 이 집이 아닌가? 이 골목이 아닌가? 다시 길을 처음 잃은 장소로 갔다. 두 번째 골목으로 갔다. 초록색 대문이 아예 없었다.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와 아까 그 동네 언니오빠에게 아이들 대여섯명이 어디로 갔는지 아냐고 물었다. 모른다는 답변을 듣고 나자 울음이 나왔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우리 할아버지 집 어딘지 아냐고 물을 수도 없지 않은가. 난감해서 더 크게 울었더니 줄넘기를 하며 놀던 오빠가 내 울음을 장난스럽게 흉내 내며 약 올렸다. 굴욕적이었다. 엄마의 새 신발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내 발등을 천장에 매달고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울음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위치한 집 1층에서 어떤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내다봤다.

"야야, 와 우노? 집 어디고? 혼자 왔나?"

나는 더 크게 울었다.

"으아아아 엄마... 할아버지 집... 어, 어, 모르겠어요."

"할배 집 왔다가 길 잃어삣구나. 할배 집 전화번호 뭐고?"

053에 952국이었던가 951이었던가, 뒤는 우리 집 번호랑 비슷했는데 당황해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전화번호 적은 종이 같은 거 없냐는 질문을 듣자 나는 그제야 외투를 열어젖혀서 안쪽 옷주머니에 찝혀있는 유치원 명찰을 꺼이꺼이 울며 보였다. 거기에 할아버지댁 전화번호는 없었다. 할아버지 댁이 3분도 안 되는 거리에서 나를 구원해 준 낯선 할머니는 병설유치원 명찰 뒤편에 적힌 '0562- 43-XXXX '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전화를 받자 확인 통화를 시켜 줬다. 할아버지 집 근처에서 길을 잃었고 여긴 골목이 많다는 말을 우는 중간중간에 전했다. 명절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아빠와 주변 초등학교며 슈퍼 이름을 대며 아느냐 묻다가 아빠가 아는 지점을 찾았다.


할머니의 인솔에 따라 15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 초등학교 근처의 한 슈퍼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댁과는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거기서 만나기로 했다며 베지밀 하나를 사 물려주시고 나니 꺽꺽하던 내 울음이 잦아들었다. 고마우신 그분과 슈퍼 주인은 함께 시계를 보며 기다려 줬다. 차탈 때마다 언제 도착해요, 몇 분 남았어요, 끈질기게 물을 때 아빠가 했던 아빠 말씀이 생각났다. 집에서 아빠 차로 할아버지 댁까지 빠르면 2시간 30분이라 했었다.


슈퍼의 미닫이 문이 열리면서 종소리와 함께 내 이름을 들었다. 아빠였다.

"와 여 있노."

"아빠!"

낯선 동네에서 아는 얼굴을, 그것도 아빠를 보다니, 살았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 드디어 피곤과 졸음이 몰려왔다. 시계를 본 지 1시간 30분도 안 되었다. 나를 데리러 오기 위해 전력질주를 한 모양이었다. 아빠가 돼지를 버리고 나에게로 왔다. 아빠에게 나는 돼지보다 중요하다. 당연한 사실을 새삼 느꼈다. 아빠의 차를 타고 할아버지 댁까지 3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만신창이를 만들어버린 엄마의 슬리퍼를 벗었다. 메뚜기를 못 잡고 금방 들어왔다는 사촌들이 할아버지 댁에서 메뚜기 대신 아빠를 잡아 온 나를 맞이했다. 월척이었다. 몇 시간 미아였지만 아빠가 시골 집에 계셔서 전화를 받은 덕으로 무사히 할아버지 댁에 귀환할 수 있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