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차 : 익숙함
계단 오르기 내일이면 100일 차이다. 미리 자축하는 이유는 오늘의 글감이 '익숙함'이라, 가장 먼저 계단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2025년 10월 15일부터 3개월 반 동안 14층까지 오르며 시장을 보고 들어왔다가 다시 못 나간 상황, 극한 몸살 같은 상황만 아니면 계단으로 집에 왔다.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힘들고 귀찮아서 자꾸만 미루며 체력이 고갈되었다. '해야 한다'라고 느껴야만 하는 나란 사람은 노예근성인가?
재작년까지 다녔던 직장에 교통편이 나빠서 자전거로 편도 45분 내외를 왕복 2년 반동안 출퇴근 했는데, 그때도 처음엔 죽도록 힘들고 막막했다.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나 시간이 비슷하게 걸렸다. 출근을 해야 했고 집에 가야 했기 때문에 한 운동이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았겠지만 자전거 타기는 운동이 그렇게 많이 된 것 같지는 않다. 페달을 굴리는 것은 집 주위 평지 산책보다 힘이 덜 들었다. 경사가 높은 오르막길에는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이 아파 중턱에서 내려 끌고 올라갔다. 도무지 근력이 붙을 틈을 주지 않았다. 퇴사와 함께 먼 거리 자전거 타기도 그만둔 후에는 걷기 만으로 숨이 차는 나를 인식하며 걱정이 되었다. 새로운 직장에서 지하철 한 방에 가니 편한 만큼 몸이 걱정 되어 시작한 최소한의 운동, 바로 '계단 오르기 숙제'다. 3년 다이어리에 '계단 99일 차'라고 적으며, 계단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작은 노력을 기울인다.
의도적으로 좋은 습관을 만든다는 건 '익숙함'을 향한 여정이다. 김치를 '익'혀서 '숙'성시 키는 것과 같달까. 절여서 버무리는 과정이 배추에게는 어쩌면 따갑고 매운 과정이지만, 매일 유익균과 꾸준히 대사 하며 기다리면 어느새 잘 발효된 건강한 맛의 김치가 된다.
자전거도 적응되었던 것처럼 99일 차가 되니 계단도 적응이 된다. 하루 단 4분만으로도 익숙해지니 정체성이 자리 잡으며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한 66일 차 정도부터 익숙했던 것 같다. <원씽> 책에서 꽂혀서 실행했었던 '66일' 습관 만들기의 신묘한 힘이다.
아직도 4층부터는 숨이 차기 시작한다. 어떤 날엔 무릎이 시큰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 지인에게 들었던 "엉덩이 힘으로 올라야 무릎이 안 다쳐."를 떠올리며 좀 더 등을 뒤로 젖히며 무릎과 먼 쪽으로 힘을 싣는다. 3분 안에 올라오면 5분 이상은 집에 와서까지도 숨을 몰아쉬고, 4분 만에 올라오면 2분 정도 집 안에서 숨을 몰아쉰다.
그래도 요즘은 '어느새 10층이네.'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이건 계단 오르기가 익숙해졌다는, 결정적인 내면의 증거다. 왜냐면 50일 차쯤 까지도 '아직도 6층이네.' 하는 막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새 13층이네.' 하는 자각이 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애초에 집에 가기 위해 오를 수밖에 없던 환경에서 시작했으니 집을 지나쳐 올라갈 수도 없고. 그때는 '계단 오르기 + (새로운 작은 운동)'을 추가해야겠다.
이런 좋은 '익숙함'에 대해서는 결별을 하면 안 된다. 결혼하듯 평생지기로 가거나, 양다리를 걸쳐서 새로운 습관을 하나 더 만들면 될 테다. 나중엔 문어발로 좋은 습관을 달고 다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