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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Jul 11. 2024

 자연은 차별하지 않는다. 차별을 가르칠뿐.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카터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  1976년도에 쓰인 자전적 소설이다. 마흔 인 내가 태어나기 9년 전이니 아득한 고전소설이다.

 인디언 조부모님과 살아가는 유년기의 어린이 '작은 나무'. 그 아이가 받았던 자연의 교육 이야기이다.


페이지 27 (매 종류인 탈콘이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가 하는 말씀)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 게 자연의 이치라는 거다. 탈콘은 느린 놈을 잡아갔어. 그러면 느린 놈들이 자기를 닮은 느린 새끼들을 낳지 못하거든.  또 느린 놈 알이 든 빠른 놈 알이든 가리지 않고 메추라기라면 모조리 먹어 치우는 들쥐들을 잡아먹는 것도 탈콘들 이란다.
말하자면 매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 거야. 외출하기를 도와주면서 말이다."

 자연의 이치 진화 측면에서 강자만 살아남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나도 육식 공룡과 초식공룡에 대해 아이에게 알려줄 때 난감했었던 기억이 있다. 꽃을 만지려는 아이에게 놀이터에서 살짝만 만지자 꽃이 아예 야하니까라고 말해놓고 티라노가 잔인하다 생각한 아이가 "육식공룡 미워, 초식공룡 잡아먹고.."라고 했을 때 육식 공룡에게는 초식공룡이 밥이라고, 잡아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고 알려줘야 했다.  

동물의 세계는 이렇게 자연의 섭리대로 흘러가는데 인간 세상은 약한 자가 보호를 받는다. 복지 자금과 정책으로 허약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 더불어 살아간다. 이게 인간만이 존엄성이다. <물고기를 존재하지 않는다> 책에서  열성인자로 치부하는 가난하고 흑인인 사람, 피부병이 심한 혹은 장애가 있거나 똑똑하진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무차별로 불임화 수술을 강행하고 우성인자만 남게 만드는 사회적 사건들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가족이 열성하게 태어나도 그랬을까? 매가 메추라기를 도와주면서 사는 건가?


페이지 161 (작은 나무가 송아지를 기독교인이라는 자와 거래했을 때 )
"자 봐라 작은 나무야. 나는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단다. 만약 내가 그 송아지를 못 사게 막았더라면 너는 언제까지나 그걸 아쉬워했겠지? 그렇지 않고 너더러 사라고 했으면 송아지가 죽은 걸 내 탓으로 돌렸을 테고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단다"

어른들이 참을성 있게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일이다. 경험에서 오는 깨달음을 느낄 기회를 줘야 한다.

 후에도 책임도 모두 스스로 했을 때 미련 없는 것이다.

페이지 176 (소장농이 딸을 혼내며 모카신을 되돌려준 장면 )
"그 사람이 가진 건 자부심밖에 없을 거야. 좀 잘못 발휘되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그 여자애나 자기 자식 중에 누군가가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걸 좋아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걸 받아 들고 좋아할 때는 매를 드는 거란다. 애들이 깨달을 때까지 매를 때리지 그렇게 매를 맞고 나면 아이들도 그런 것들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단다"

꿈도, 희망도, 종교도 있어 의지할 데는 있지만 지주에게 매번 속고 새로운 지주에게 식구들의 삶을 의탁할 소작을 구하기 위해 신발도 없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삶. 너무 마음이 아프다. 매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신체에 타격이 느껴질 때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안 된다는 느낌이 잠재의식 깊이 체득되는 것이다.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니다.


페이지 201( 방울뱀에게 작은 나무 대신 손바닥을 물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뻔한, 위험한 고비)
 할머니는 몸부림치는 메추라기를 할아버지의 손에 댄 채 앞 한참 동안 붙들고 계셨다. 나중에 떼내 보니 메추라기에 뱃속은 온통 새파란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뱀의 독이 옮아간 것이다.

부모 없는 손자의 목숨이 빼앗길 뻔했을 때 순간적으로 지혜를 발휘해 대신 손바닥을 물려준 침착한 할아버지. 1초에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서 살려내겠다는 의지로 뱀독을 빼낸 할머니 울며 달리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죽을힘을 다해 도움을 청한 작은 나무 이 산속 인디언들에게 느껴지는 생명력은 거친 감동을 몰고 온다. 희생된 메추라기는 너무나 안 되었지만 그렇게 본다면 산에서 잡아먹히는 모든 동물이 마찬가지이리라. 뱀이 '망할 짐승'이라면서도 방울뱀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연의 그 부분까지도 받아들인 인디언의 숭고한 정신 느껴진다.


페이지 251 수박을 두드려볼 때는 이 점을 알아둬야 한다.  
'팅' 소리가 나는 수박은 아직 하나도 익지 않은 것이고 '탱' 하는 소리가 나면 지금 바야흐로 익고 있는 중이며 '텅'소리가 나는 수박이라야 완전히 익은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진리가 그러하듯이 이렇게까지 해도 수박을 잘랐을 때 원하던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항상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어제 사온 수박이 '' 소리가 났는데 너무 오래된 모양이다. 심지어 꼬리와 배꼽이 말려들어간 것이 맛있다고 자신있게 골라주신 수박이다.

평생을 수박 사면서 바람 든 수박도 처음이지만 수박색 노각이라 해도 믿을 무맛이었다.  50% 확률이라는 것은 얼마나 치명적인가.


수박에서 노각 맛이 나요...


페이지 302 (고소장 같은 편지의 내용) 사람들이 내 교육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몹시 걱정하고 있다.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페이지 303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내가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법에 고소했으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양육할 자격이 없다. 두 분 다 늦은 데다가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할머니는 인디언이고 할아버지도 반은 인디언이다. 더구나 할아버지는 평판이 좋지 않다 반론이 없으면 나는 곧바로 고아원에 수용될 거라고 했다.

페이지 359 (고아원 주위를 서성이는 할아버지)
다만 할아버지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어 하는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결정하게 만드셨던 것이다.

잔잔하고 따뜻한 에피소드가 4/5를 차지했다.

그런데 후반부 약 80 페이지 가량에서 왜 이 책의 원제가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 였는지 제대로 쇄기를 박아주었다. 펑펑 울며 읽고 말았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직업을 갖기 위해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된 기술 연마를 하는 것은 1차적인 교육일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변하지 말아야 할 교육의 목표는 인성과 최선 배려 낭비 없는 절약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결과물과의 책임을 가질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깊은 감동으로 전해진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인 그들만의 정의와 판단으로 한 사생아 유아의 교육 환경을 '고아원 수용'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차별과 색안경 없이 본질적인 교육 환경이란 걸 자세히 보았더라면... 이것은 인종 차별이었으며 경멸감만 있고 책임감 없이 한 아이를 학대한 것이었다. '작은 나무'는 웬만한 부모들보다 나은 교육자인 지혜로운 조부모님들과 자연에서 교육을 받았었다.  기다려주는 것, 그걸 가르치자. 그게 교육이다.


이 책의 저자 포리스트 카터(Forrest Carter)의 본명은 아사 카터(Asa Carter)이다.  아서 카터의 할아버지는 소설에서 나온 체로키 인디언족이었는데, 자전적 소설의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교훈과는 달리 백인우월주의자였다. 인종차별로 유명한 KKK 단 활동을 이끈 리더로서, KKK단은 흑인노동자를 공격해 성기를 절단을 하는 등 엽기적인 인종차별 활동을 했다고 한다.


다시 첫 번째 발췌한 문장을 살펴본다.

페이지 27 (매 종류인 탈콘이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가 하는 말씀)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 게 자연의 이치라는 거다. 탈콘은 느린 놈을 잡아갔어. 그러면 느린 놈들이 자기를 닮은 느린 새끼들을 낳지 못하거든.  또 느린 놈 알이 든 빠른 놈 알이든 가리지 않고 메추라기라면 모조리 먹어 치우는 들쥐들을 잡아먹는 것도 탈콘들 이란다. 말하자면 매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 거야. 외출하기를 도와주면서 말이다."

우월한 백인은 남기고 열성인자는 잡아먹혀 사라져 주는 게 인간의 우월성을 후대에 전하는 길이라는 말로 보인다. 그게 자연의 이치라고 하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따뜻한 이야기에 그의 주장을 녹여놔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뿌리 깊은 교육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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