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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Jul 21. 2024

존재의 이유를 아는 AI가 행복을 실현하다(스포有)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지음 (허블) SF소설

안녕하세요, 어제보다 한 걸음 성장한 나예스에요.

SF영화나 소설을 좋아하시나요? 우주를 좋아하는 저는 비현실적인 미래를 다루는 분야를 참 좋아합니다. 이번 독서모임 공통책으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소설에 흠뻑 빠졌네요~


동물, 로봇. 이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입맛에 맞게 개조되어 간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책 제목이 <천 개의 파랑> 인데요. 여기서 천 개는 "(브로) 콜리"라는 C-27번 휴머노이드* 로봇이 알고 있는 단어의 개수예요.  이 로봇은 경마장의 경주마 위에 올라타는 용도로 제작된 '기수' 휴머로이드인데 인간의 실수로 잘못 태어난 존재라고 합니다. 생산과정에서 부품이 잘못 조립되어 보통의 로봇과는 조금 다르게 독특한 사고를 하는 '이상한 로봇'이지요.  무려 사색하고 철학하는 로봇이요.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의 형태나 특징을 지니면서 인간이 아닌 실체 (=인간형)
독서모임 선정도서 -천 개의 파랑


로봇이 주인공인 이야기라고는 카봇, 또봇 애니메이션처럼 언제든 주인공이 부르면 슝 날아와  말도 하고 변신하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존재를 다루는 내용이 익숙하지요. 평소엔 자동차 모습이나 물건인 듯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반드시 인간 호출이 있어야만,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모습을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라져 줍니다.

<천 개의 파랑>에서는 좀 다릅니다. 배경은 11년 뒤인 2035년이고 이상한 로봇 콜리는 실체로서 존재하고 어쩌면 생각하는 법을 잊어가고 인간에게 질문을 통해 생각하게 해 주고, 어쩌면 점점 생략되고 있는 대화를 이끌어줘요. 편의점 알바자리를 대신하는 '배티'도 , 청소부 자리 나 소방관의 역할을 빼앗거나 도와주는 다르파 (DARPA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 로봇도 있다고 나오네요.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AI의 모습은 어떤가요? 로봇청소기, 지니부터 시작해서 나보다 더 나를 잘 알고 있어 추천상품을 골라주는 알고리즘, 챗GPT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다양하게 일상에 녹아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렵지 않게 움직이는 관절로봇들이 등장하고 있지요.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지만 언젠가부터 섬뜩하리만큼 인간의 지위를 위협받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핵심주인공은 로봇입니다.


한번 의도적으로 낙마를 해 본 C-27 휴머노이드 하체가 산산이 부서진 채로 폐기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이 마주친 우연재라는 소녀가 자신의 전재산 80만 원을 털어 휴머노이드를 사가지요. 로봇분야에 소질 있는 이 소녀는 초록색 몸체의 망가진 로봇을 보고 브로콜리를 연상했고  '콜리'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천선란 작가님의 따뜻한 전개와 속 깊은 질문들로 하루 날 잡아서 푹 빠져 읽고 눈물도 흘렸네요.

저는 소설책의 도입부에 인물이나 정황 파악이 쉽에 안 될 때가 많아서 이렇게 간단히 그림을 그리면서 읽기 시작합니다.

악필인 것을 보니 미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13 콜리는 끝도 없이 읊었다. 단어가 화물칸에 가득 쌓여 포화되기 직전에 목적지에 도착했으며 콜리가 아는 단어도 거기서 멈췄다. 천 개. 콜리가 떠올린 단어는 천 개였다.
p.22. "왜 말을 타고 달리는 경기를 열게 됐나요?"
p.23. "인간이 재미있는데 왜 말이 달리나요? 그럼 인간이 달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p. 30 (달리는 경주마에 채찍질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상하게도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투데이의 속은 고요해졌다. 콜리는 납득할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다니 투데이는 달려 살아 있음을 느꼈지만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

p.31 그렇다면 실격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콜리는 짧은 순간 완주해야 한다는 존재 이유와 투데이를 살려야 한다는 규칙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 후자를 선택했다. 투데이를 지켜야 한다.

 AI 로봇이 철학적 사유를 합니다. 인간이 재미있으라고 경마 경기를 만들었고 말이 달려야 하는 현실입니다.

달리는 오늘에  행복을 느끼는 3살 백이 말 '투데이'는 경마장에서 달리는 것이 존재의 이유였으나 채찍을 맞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어요.  초원이 아니라 경주로를 질주하는 것이 경주마로서의 역할과 사명이었고 과도한 관절염으로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되면 안락사를 당하는 것이 운명 수순이었습니다. 안락사를 당하지 않으려면 경주가 잡혀야하고 그 느린 말에 배팅을 거는 바보같은 어른이 있어야합니다. 미성년자 아이들은 그것을 추진했어요.


p.114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각기 다른 몸값을 지니고 나왔다. 연재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 휴대폰의 존재가 인식되네요. 휴대폰이 생김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게 되었어요.   일하는 시간에 시도 때도 걸려오는 스팸 전화와 문자, 스팸번호로 저장해도 소용없고 끊임없이 저를 필요로 하는 낯선 사람들의 연락이 와요. 마치 그들을 위해 돈 주고 폰을 산 것 같다는 착각이 듭니다.

심지어 한 날은 휴대폰 전화번호가 찍혀 전화를 받았더니  모르는 남자가 제 이름을 언급하며 주식 종목을 추천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됐어요! 요즘 주식 안 해요. 예전에 끊었어요."라고 했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라고요. "그럴 리가요."  무서운 세상입니다. ㅋㅋㅋㅋㅋ



집 근처 언덕에서 피어나는 천 개의 꽃들
P. 157 지독히도 인간 중심적인 이 행성에서 동물들은 변화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보호받지 못하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자유를 주다니 복희는 그것 역시도 착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 여겼다.

스스로 산다는 게 동물들에게 힘겨운 일이 되었어요. 거북이나 열대어를 키우다가 점점 물이 탁해지고 귀찮으니 죽든지 말든지 "방생"해버리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요. 붉은 귀거북은 생태계교란종으로 지독히도 살아남아 방생된 곳에서 닥치는 대로 생물을 잡아먹습니다.

상아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처럼 인간의 존재는 동물들에게 가장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살아남으려면 먹이 급여와 살 공간을 강제로 제공받아도 인간을 의지하고 선처를 바라며 애교를 부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P.172 긴 병은 가족 사이의 부채를 만들었다


 P.204 콜리 :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보경 :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P.205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좋은 말이지만 다 읽고 나서 다시 보니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중요한 문장 이상으로 와닿았어요. 현재가 행복하다면 과거의 시간을 놔두고 올 이유가 없지요.  현재 남편(소방관)의 빈자리가 크고 삶을 책임감으로 버텨내는 보경은 자신이 찬란했던 순간을 그리움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의 행복은 과거를 추억으로 볼 수 있게 해 주고 현재의 불행은 과거를 그리움으로 물들게 하니까요.

P.233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투데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예요.

행복해지세요! 그래야 과거가 추억이 될 수 있으니까요.

성공하세요! 그래야 과거가 비참했어도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요.


P.257 "정말 감사해요. 당신은 영웅이에요. "
P.258 "영웅 말고 은인."
P.258 "하지만 어제 당신들이 봤던 영화에서는 생명을 구해준 사람을 영웅이라고 불렀잖아요."

콜리. 너야 말로 투데이에게 있어서 영웅이야.  작은 터미네이터지.


P.303 "당신은 누구의 불행을 모르는 척했나요?"
P.304 "우리 가족."
P.304 "왜냐고 물어봐도 되나요?"
P.304 "가족들의 불행을 마주 본다는 건 내가 외면했던 내 불행을 마주 보는 거랑 같거든."

외면하는 부분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요.


(몇 주 후 단풍이 빨갛게 물들 거라는 얘기를 연재가 콜리에게 얘기할 때)
P.312 "왜 그런 것들이 있는 건가요? 세상에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
P.313 "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기수가 되기 위해서이고 인간이 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이유가 있어서예요. 무의미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인간이 휴머노이드를 만들었고 그 목적은 경주마와  함께 달리는 것에 있었지요. 인간은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을까요? 인간의 자연이 던진 무작위의 산물이라던가 아무 이유 없이 생긴 게 아니라면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하겠지요. 모든 사람이 존재 이유와 삶의 의미를 다 찾아내고 나서 생을 마감하진 않을 텐데 신이 있어서 그에 의해 창조된 게 인간이라면 다른 모든 생명이든 무기물이든 인간의 입맛에 따라 개량되거나 파괴되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P.327 이해받기를 포기한다는 건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이 때로는 가슴에 크나큰 상처로 새겨지기도 합니다.


P.332 "내가 너를 '그냥' 데리고 왔다고 했잖아. 사실 그거 거짓말이야. 몸이 다 망가진 채로 건조더미에 누워서 나한테 하늘이 예뻤다고 말하는 네가 불쌍했어.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너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도 들었어. (...) 그리고 지금 말에는 대답하지 마. 명령이야."
콜리는 연재의 명령을 지켰지만 처음으로 명령을 어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 그냥도 없나 봅니다. 여기서 인간의 명을 받기 위해 태어난 AI가 인간의 명령을 어기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서 조금 두려워지기도 했어요. 정황상 위험하지 않았는데도요. 사고할 줄 아는 로봇이 인간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인간은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말 그대로 우주인이 지구인을 정복하는 듯한 영상이 떠오릅니다.


 P.351 (로봇 콜리가 다친 경주마 투데이에게)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저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당신의 주로가 있으니 그것만 보고 달려요. 당신의 속도에 맞춰서요."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제안하는 천선란 작가님입니다.

너무 빨리빨리를 외치는 것에 비해 인간과 말도 진화가 빨라진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속도에 맞게 달려도 실격은 아니다'는 말에 위로와 용기를 받았어요. 책의 요약본을 골라서 급하게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책을 붙잡고 충분히 의미를 곱씹어보고 사색하고 그려보면서 읽는 것, 그게 느리게 달리는 연습이고 수십만 권의 책 속에서 내 손에 쥐어진 운명의 책을 기억하는 방법이겠지요.  

오늘도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걸었어요. 아주 작은 습관을 만들어가고 있지요. 오디오북을 들으며 걷는 게 아니라 천 개의 초록을 발견하는 15분의 시간이지요.


내 맘대로 핵심 키워드: #존재의이유  #삶의2막  #대화  #천천히달리기  #호흡  #휴머노이드


Q. 여러분은 속도에 맞게, 혹은 천천히 달리기 연습을 생각해보신적이 있나요?

Q. 삶의 2막(이전의 나의모습과 새롭게 시작하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나요?

Q. 사람의 특정 역할들을 대신할 실체 있는 로봇 휴머노이드와 살아가는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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