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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Sep 01. 2024

독서 습관을 만들려면_책읽는인간 되기

3화_1년에 100권 읽는 동네 카페 사장님

역시 오픈빨은 하루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2,500원짜리 커피를 500원에 행사한 어제와 달리 오늘은 매우 한적하다.

커피 맛은 괜찮았지만 제 가격을 주고 마셔야 할 때는 애매한 가격대가 고민스럽다. 스타벅스라면 모를까, 이런 동네 카페의 무난한 맛은 1,500원짜리 저가 프랜차이즈 아메리카노 가성비에 묻혀버릴 수밖에 없다.     

 매장에도 손님이 한 팀뿐이다.


테이블의 두 여자는 마스크를 낀 채로 웅얼웅얼 말하다가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커피를 홀짝, 다시 급하게 마스크를 올린다.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에는 코로나의 정령이 잠시 눈을 감아 준다고 믿는 눈치다.

 보려고 본 건 아니지만 하얀 마스크의 콧등 끝부분에 비비크림 21호 색상이 묻어 있다.


“어서 오세요~”

사장이 보던 책을 덮는다. 마스크를 올리고 손님을 맞이한다. 지혜는 메뉴판을 둘러본다. 커피가 대여섯 종류 있고, 차 종류, 스무디나 주스 등이 있다.

“음... 카페라테 따뜻한 걸로 하나 주세요.”

“라테 하나, 드시고 가세요?”

“네.”

“4,500원입니다. 카드 꽂아 주세요.”

“네.”

지혜는 또다시 카페를 둘러본다. 전셋집 알아보는 것도 아닌데 구석구석 둘러보게 된다.

매장 가운데 멋들어진 우드슬랩 테이블이 있다. 한 6명 이상은 앉을 수 있는 크기다.

요즘같이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저 테이블에서 인원수만큼 앉아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있을까?     

 이사 오기 전에는 마스크 5부제일 때도 있었다. 마스크 2장을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주민등록증을 들고 30분 넘게 줄 서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런 발버둥이 코로나 감염을 막아 줄 거라 믿던 시절이었다. 마스크가 믿음과 의무인 시절에서 예절과 생필품이 되어버렸다. 

 귀 안 아픈 새 부리형 KF-94 마스크'를 대형, 중형, 소형별로 몇 박스를 쟁여놓고 있어도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지혜네 집에도 최근 다녀갔었다. 지난달 두 남자를 간호하느라 몸살 났던 일이 잠깐 스친다. 그렇게 한 푸닥거리하고 나면 한동안 안심이다.

 새 아파트 방 4개에 화장실 2개란 이럴 때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주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코 점막이 뇌 속까지 뚫리기를 거듭하더니 주변에 코로나 안 다녀간 집이 없다. 빈도수에서 감기보다 흔해졌지만, 흔하다고 해서 감기보다 덜 아픈 건 아니다. 다시 급증한다는 소식에 식당이든 카페든 매장을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벌써 몇 가게는 문을 닫았고, 배달 앱은 풍년이다.


선플라워 카페의 벽 쪽에는 고사리과 식물이 야자 화분에 담겨 공중에 달려 있고, 너무 밝지 않은 노르스름한 조명이 분위기있다.     

“라테 한잔 나왔습니다-”

입구가 넓고 낮은 커피잔에 오랜만에 보는 라테아트다. 하트 모양이 아니라 나뭇잎 모양이다. 어제는 분주해서 몰랐는데 고소 쌉쌀한 커피 향 너머에 가만히 꽃집 특유의 유칼립투스 향기가 코에 스친다.

“우와.. 라테아트 된 커피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커피에 그림 그리는 재미죠.”

기분 좋은 미소가 배어 나오는 지혜의 시선이 책장으로 향한다.


“근데요, 어제 줄이 엄청 긴데 사장님이 그 와중에 책 얘기를 하셨어요. 기억나세요?”

“네. 그랬죠. 1년에 책을 1권도 안 읽는 사람들도 있다니 놀랍지 않냐고 물었었죠~”

“근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럴 여유가 있을 상황이 아니었는데요~”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여사장님이 웃으며 하나마나한 대꾸를 한다.

“그러니까 모든 손님한테 다 얘기하시는 것 같지 않은데 그 한마디가 왜 자꾸 생각이 나던지...”


“제가 어제 책에 관해 대화 한 사람이 딱 세분이 있었어요. 책장에 눈길을 준 분들이죠. 한 분은 20대 남자분이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아예 허리를 구부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듯이 유심히 책장을 살폈죠. 그리고 제가 ‘책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더니 ‘네’라고 말씀하시며 책을 꺼내 넘겨보면서 다음에 책 읽으러 한번 날 잡고 와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언제든 그러시라고 했죠. 저도 책을 좋아하거든요.”

“네.. 책 좋아하시니까 꽂아 놓으셨겠지요.”

“그리고 또 한 분은 서점도, 도서관도 근처에 없는데 잘 되었다며 책은 여기서만 볼 수 있냐고 하시길래 자주 오시면 빌려 드리겠다고 했죠.” 

   

“네.. 근데 저한테는 왜 그렇게 물으셨어요?”

지혜가 어떤 의미심장한 이유를 눈빛에서 찾으려 하며 질문했다.

“별 뜻 없었어요. 책을 티 안 나게 살펴보며 제목들을 읽는 것 같았죠. ‘여기에 이런 게 다 있네’ 하는 호기심 어린 표정이요~”

“아~ 별 뜻 없었구나...”

지혜가 살짝 맥이 빠지며 말끝을 흐렸다. 마스크를 끼고 두 눈밖에 안 보이는데 그런 예리한 표정을 찾는 실력은 불가사의다. 생각해 보니 어제 책을 훑으며 '여기에 이런 게 다 있네'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는 별 뜻 없이 말했는데 손님이 별 뜻있게 받아들였다면 그건 ‘신호’라고 생각해요.”

“신호요? 무슨신호요?”

“네. 책 읽어야 할 신호요.” 

 지혜는 왠지 이런 대화가 책이 가득한 북카페라면 모를까, 동네 카페 카운터 앞에 서서 나누기에 오글거린다는 생각이 든다. 사장님이 참 책을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한다. 지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제목의 책 하나를 골라 자리에 앉았다.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밖은 춥고 카페라테는 따뜻하다.

‘제목 참 기가 막히게 지었네. 말에 대한 온도라니. 책이 한 손에 잘 들어오는구나. 짤막한 일화들 속에 이런 의미를 발견하다니 작가는 작가구나. 좋은 말을 따뜻하게 담아 놨네.’


 남자 사장님은 꽃 냉장고 너머에서 연분홍빛의 탐스러운 장미 송이들을 손질한다. 가시를 도구로 훑고, 원예용 가위로 절도 있게 툭, 툭, 장미 끝을 사선으로 자르고 있다. 왠지 잘드는 가위로 장미 줄기 끝을 한 번에 자르는 소리가 시원스럽다. 


 오늘은 증권사 앱을 한 번도 열지 않은 것이 생각난 지혜는 후다닥 주식을 확인하려고 급하게 핸드폰 지문을 인식시킨다. 손에 물기가 있었는지 한 번에 인식이 안 되어 화면을 한번 냅킨으로 닦고 엄지를 갖다 댄다. 보유한, 아니 물린 주식에 큰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 졸일 것 없이 한 달 기간 예약매도를 걸어두고 잊어버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싶어 오늘 저녁에 예약매도를 걸어놔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렇게는 못 살아! 나도 책을 좀 읽을까? 그래. 책을 좀 읽어야겠다.’     

맛있게 카페라테를 마시고 컵과 책을 갖다 주며 지혜가 말했다.

“사장님, 사장님은 1년에 책을 몇 권정도 읽으세요?”

“1년에 100권 정도 읽죠~”

“네?! 100권이요??”

“넘을 때도 있고, 어제는 그러고 보니 어젠 가게 오픈한답시고 4페이지밖에 못 읽은 것 같네요.”

“100권이라니..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으세요?”

“처음엔 재미로 조금 읽기도 하다가, 좋다는 책 꾸역꾸역 읽어 보기도 했어요. 그다음 독서 습관이 잡히고 나니까 일처럼, 밥처럼요.”

“독서습관이 어떻게 생기셨는데요?”


“손님도 독서 모임에 한 번 나가보세요. 당근 마켓이나 소모임 어플에 가까운 동네 모임이 있을 거예요.”

"거기에 간다고 책 읽는 습관이 생길 수가 있을까요?"

"손님 주변에 책 읽는 사람 많이 있으세요?"

"아뇨~? 없는 것 같은데요? 아예 책 얘기 자체를 안 해서 그런가... 책 얘기를 한 적도 없지만 혼자 읽은 책 얘기를 누구한테 하겠어요~ 낯간지럽게요."

지혜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 읽는 사람도 있긴 할 거예요, 서로 책에 대해 말을 안 하니 모르는 걸 수도 있겠죠."     

"아예 그런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에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한테는 안부 묻기 바쁘고, 놀이터 벤치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랑은 아이 키우는 얘기를 하지, 어떻게 '요즘 책 뭐 읽냐' 같은 얘길 꺼내겠어요~?

지혜가 고개를 도리질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독서 모임에 가는 것이 '독서 습관 만들기'에 도움이 된다, 이거예요."     

"아..."

지혜는 바보같이 입을 벌렸다.

     

"첫째는 '책 읽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거고요, 둘째는 '책에 대해 말하는 환경'에 들어가는 거예요.

 독서를 시작하겠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만 하면 겉으로 티가 안 나요. 그러면 다른 티 나게 급한 일에 묻혀서 습관 만들기가 흐지부지 해져요, 뭐든."     

“아, 감사해요. 친절하게 말씀해 주셔서.”

“네, 저도 즐거웠어요. 또 오세요~”


 지혜는 당근 마켓 앱과 소모임 앱을 찾아봤다. 독서 모임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끼리 토론하고, 비판하고 그런 것은 아닌지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난생처음 독서 모임. 지혜처럼 책이 낯선 사람들도 제발 있길 바라며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독서 모임을 찾아 가입했다.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 3시. 마침 지혜의 남편이 쉬는 날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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