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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Sep 05. 2024

도서관에서 읽기 근육을 키우다.(&도서관 사용법)

5화_하버드 졸업장 보다 도서관

지혜는 독서 모임에 가지 못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속도대로 책을 읽어 나갔다.

베트남쌀국수 가게에서 3시간 점심 피크타임에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했다.

신도시로 이사 와서 반년간은 공부 없이 주식 투자한 결과 더이상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상태까지 목돈이 묶였었다. 어떤 이웃은 코로나 관련주 위주로 바짝 투자해서 잔금대출을 모두 갚았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하지만 지혜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원인이 바로 그 코로나 관련주가 상당수였다. 행운으로 얻은 소중한 일자리라 처음 보름 동안은 감사한 마음으로 직장을 다녔다. 다리가 좀 아프긴 했지만 생산 활동을 하고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갚는데 적은 금액이나마 가계에 보탬이 되어 뿌듯했다.

  

 지혜가 ‘선플라워 카페’에 보름 만에 갔다. 여 사장님이 주문을 받았다.

“카페라테 하나 주세요.”

“네, 따뜻한 거 준비해 드릴게요. 오랜만에 오신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하느라고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

지혜는 오래간만에 왔는데 사장이 자신의 얼굴도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 모를 카페 사장과 예전부터 알고 지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결제하고 잠시 후, 보기에도 예쁜 잔에 따뜻한 카페라테가 나온다.


 “아! 사장님 저.. 독서 모임에 가 봤어요.”

지혜가 수줍고도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 어땠어요?”

“뭔가 으쌰으쌰 하는 느낌? 어린 친구들이 열심히 산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는 그 나이에 뭐 했나 모르겠어요. 독서 동지가 있으니까 책을 더 읽고 싶기도 하더라고요~”

“네 꾸준히 교류하면 습관 만들기에 좋아요.”


 카페라테를 후루룩 마시며 지혜는 아르바이트에 대해 고민했다. 일이 손에 익기 시작하면서 초심은 점차 사라져 간다는 생각을 했다. 하는 일에 비해 시급이 너무 적다는 마음속 외침을 차분히 누르고 있었다. 육체적 피로에 기운도 없어지니 언제까지고 이 일을 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 새삼 남편이 고깃집에서 종일 서서 일을 한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서울에서 살 때처럼 다시 경리 파트타임 자리가 나오길 고대하며 잡코리아, 알바몬, 알바천국을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키워드 알림 설정으로 ‘경리 파트타이머’, ‘회계 시간제’ ‘마곡 경리’,‘김포 파트타임’,‘검단 사무보조’ 출퇴근할 수 있는 지역 이름까지 넣어서 채용 공고 알림을 받고 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도 도보로 가기에는 멀었다. 그녀는 버스를 타고 도서관을 가서 책을 부지런히 대출해서 읽었다. 아이는 책에 꽂힌 엄마 덕에 뒤늦게 새로운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물론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읽어 주는 것을 '들으며' 페이지 그림을 볼 뿐이지만.


 낮 아르바이트 퇴근 후 1~2주마다 한 번은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책장에서 책을 찾다가 아이를 늦게 데리러 간 날도 있었다. 손님들의 점심을 지켜보며 자신은 점심도 못 챙겨 먹고 배고픈 상태로 퇴근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도서관 책 반납일에는 삼각김밥 먹을 여유도 없이 도서관 갔다가 어린이집에 갔다. 책장에 책 찾는 것이 은근히 귀찮은 일이었다. 제목은 알지만 비슷한 분류번호 안에서 작가의 성씨 가나다 순서대로 책이 꽂혀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리즈인 경우에는 작가 이름이 아니라 출판사끼리 묶여 있었다.

 경제 경영서, 부자의 마인드, 성공 철학 등의 관심 분야에서 요즘은 ‘엄마의○○○’ 같은 제목의 책들에 손이 갔다. 아빠로서의 공부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엄마로서 해야 하는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 보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거기서 소개되는 책들이 있었고 그 책과 결이 맞는 추천서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 자료검색대에서 찾아보았다. 추천서만 따라 읽기에도 벅찼다. 우연히 마주친 책이 아니고서야 원하는 책을 찾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주로 가는 도서관에 없는 책들이 더 많았다.

 '책 좀 누가 골라 주었으면!'


 그때쯤 지혜는 상호대차 제도를 알게 되었다. 지혜가 가던 도서관은 해당 도서관이 소속으로 있는 많은 구립도서관 중의 하나였다. 도서관 자료검색에서 ‘상호대차신청’이라는 버튼을 눌러 해당 구에 있는 다른 도서관의 책이 가까운 도서관으로 배달되는 것이었다.

 원하는 도서관으로 책이 왔다는 문자를 받고 3~4일 내 수령한다. 상호대차를 이용하면 도서관의 해당 영역에서 책 고르는 시간 없이 원하는 책을 바로 대출해서 1분도 되기 전에 도서관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꼼수도 생겼다. 같은 제목의 도서가 자주 방문하게 되는 도서관에 대출 가능한 상태에 있어도 읽던 책의 분량이 남아있는 경우 굳이 다른 도서관에서 자주 가는 도서관으로 상호대차 신청을 하는 것이다. 3~4일 뒤 사서에게 가서 바로 수령 하는 게 책 찾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 더 좋은 것이다. 

 그러다 한 날은 커다란 책 수레를 끌고 들어오는 배송 담당자를 보고 나서 그녀는 괜히 미안해졌다. 주로 다니는 도서관에 있는 책은 이제 다른 도서관으로부터 배달하지 않고 해당 책장에서 찾았다. 못 찾아서 사서에게 물어보면 찾아준다. 책을 모바일로 검색하고 버스를 탔는데 가는 동안 점찍어 둔 책을 다른 사람이 이미 대출해 간 적도 있었다.


 도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신간 도서를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 하기도 했다. 연초 2~3월에 도서관으로 예산이 잡히기 때문에 연말보다는 연초와 연중이 좋다. 몇 권 정도 희망도서를 신청해서 새 책을 받아 읽기도 했다. 도서관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는 느낌과 빳빳한 새 책 냄새가 좋았다. 객관적으로 향기로운 냄새는 아니었으나 ‘새 책’이라는 그 느낌이 좋은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다니!'


 도서관이 해변이라면 자신이 읽은 책은 모래알 수 만큼도 안된다는 사실에 압도되었다. 그녀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독서량이 얼마나 하찮은 양인지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3달 동안 읽은 책이 9권이었다. 1년에 1권도 안 읽던 지혜가 1달에 무려 3권을 읽었다.

 선플라워 카페 사장이 말한 대로 ‘1년에 책을 1권도 안 읽는 사람들도 있다니 놀랍지 않아요?’ 이 질문에 지혜는 이제야말로 맞장구를 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렇게 책 읽는 게 좋은데 어떻게 책을 1년에 1권 읽을 시간도 안 낼 수가 있죠?’라고.


 이제 틈나는 대로 읽었다. 아르바이트를 20분 일찍 가지 않고 10분 동안 직장 근처에 서서 책을 읽다가 들어갔다. 10분이면 2~3쪽은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저녁 되기 전에 커피를 마셔가며, 도훈이를 재우고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서 읽었다. 몸부림이 심하면서도 엄마가 바로 옆에 없는 것을 귀신처럼 아는 아이, 잠결에도 엄마가 자기 옆에 있는지 팔이나 다리로 걸쳐봐야만 안심하는 아이였다. 남들은 아이 방이 따로 있다는데 지혜의 아들 도훈이는 밤만 되면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말하며 공포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특히 안방 침대에서 화장대와 드레스룸으로 이어지는 그 어두운 공간에서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말해서 가림막 커튼도 설치했건만 귀신 타령은 멈추지 않았다. 거실에서 독서 하는 지혜는 부디 아들이 잠꼬대로 끝나길 바랐다. 못 들은 척, 없는 척, 죽은 척까지 해 보았지만 6살 아이는 “엄마! 엄마?!” 두 번 외쳤을 때까지도 반응이 없으면 밤 10시이건, 새벽 2시이건 상관없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튀어나왔다. 

 걸어 나오는 법이 없이 언제나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아이는 엄마를 끌고 침대로 들어가야만 날이 밝기까지 남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하.. 수면 분리... 수면 분리를 이젠 해야 할 나이인데, 내가 물러 터져서 그렇겠지? 얘는 왜 혼자 못 자는 걸까.’


 책 반납일이 다가오는 어느 날에는 완독을 위해 작정하고 오후 5시에 커피를 ‘복용’했다. 그러나 아이는 잠든 지 1시간 만에 엄마가 거실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독서대 앞에 앉은 지 10분 만이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혜는 병아리 몰듯 자던 방으로 아이를 몰고 들어가서 옆에 눕는다. 어차피 다시 나올 것이므로 핸드폰은 거실에 둔 채다. 안심시키기 위해 '음-냐'소리까지 내며 잠깐 자는 척한다. 먼 곳에서 들리는 알람 소리에 눈 떠보니 아침이다. 커피는 효과가 없었던 걸까? 절망스러운 하루가 시작된다.

 

 어떤 날은 아이가 낮에 놀이터에서 실컷 놀아서 그런지 아침까지 안 깨고 잤다. 그런 날은 결코 흔한 날이 아니어서 마음 놓고 새벽 3시까지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리한 날의 이틀 뒤는 당연히 컨디션 최악이었다. 그땐 만사에 신경질이 나고 아이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봄날의 꿀벌 소리같이 몽롱하고 귀찮게 들렸다.     

 처음엔 책을 1권 단위로 읽어내던 지혜는 점점 동시에 읽는 책의 수가 늘어났다. 오후에는 이 책 조금 읽고, 아이 재운 뒤엔 저 책 조금 읽고 하면 흥미와 집중력이 새로이 솟아났다.


 상호대차와 예전에 신청한 희망도서가 동시에 오면서 읽고 있던 책까지, 반납기한이 다가오니 읽는 속도를 늦출 수도 없어졌다. 책상 위에 할 일을 잔뜩 늘어놓고 쳐내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 지혜의 식탁 위로 나타났다. 아이가 밥 먹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밥 먹어라 괴물’로 변신하는 대신 앉은자리에서 책을 읽었다. 마감 기한이 있는 연재 작가라도 된 기분으로 허겁지겁 읽게 되면서 성취감을 얻고 수면시간을 잃어 갔다.


 그때쯤 지혜는 한 공장에 지원한 경리/회계 업무 파트타이머 면접에 합격했다. 면접을 볼 때 인사담당자는 경력도 보겠지만 지혜의 일하고 싶어 하는 의지와 열정을 더 높이 샀는지도 모른다. 몸 쓰는 일에서 앉아서 하는 일로 전향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품고, 일하고자 하는 마음은 언뜻 자신감으로 내비치기도 했다. 아무렴 식당 아르바이트보다 근무시간이 길고 점심밥도 주는 데다 신도시로 이사 오기 전에 하던 업무다. 중소기업 사무직을 하며 도시락 싸 들고 다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도시락 짐과 반찬 고민이 없는 것 자체가 회사 다녀야 할 이유 그 자체인 것이다. 일단 붙고 보자는 심정이었다. 면접 중간에도 자신의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자세를 하며, 눈을 반짝인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러나 직장까지의 출퇴근 교통편이 좋지 않았다. 실컷 걸어가서 버스 타고 내려서 실컷 걸어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자전거로 가는 것이 더 빨랐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지혜 남편의 자전거가 이제부터 지혜와 한 팀이 되었다. 지혜는 튼튼한 바구니를 주문해서 달았다. 광주리보다는 작지만 달아놓고 보니 부담스러운 크기의 장바구니다. MTB 자전거 모습은 드디어 멍청이 꼴이 되었다. 그러나 만물상을 방불케 하는 책가방도 싣고, 퇴근길에 마트에도 들렀다가 오려면 짐 싣는 바구니는 무조건 커야 한다. 가방에 책을 한 권이라도 들고 다녀야 그녀의 마음이 놓인다. 물론 지혜의 가방에는 수많은 잡동사니가 각각 ‘꼭 들고 다녀야 할 이유’와 함께 들어있었다. 거봉 박스도 충분히 들어갈 만한 대왕 바구니를 달고 자출사, 그러니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직장 근처의 다른 도시에서 운영하는 시립 작은 도서관과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교육도서관에도 서울에서 쓰던 '책이음' 회원카드를 등록했다. 이제 버스를 타고 도서관을 다니지 않아도 된다. 퇴근길에 자전거로 자유롭게 드나들면 되는 것이다. 마음껏 원하는 책을 자전거에 실어 나르며 읽기 습관을 강화해 나갔다.


 그동안 아파트 안에 있는 헬스장도 이용하지 않았던 ‘만성 운동 부족형 인간’인 지혜는 먼 직장을 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운동도 하고 돈도 버는 일거양득의 기회가 되었다. 또한 그녀는 새로 뚫은 도서관의 단골 회원이 되어갔다. 기본 대여 기간 2주 안에서도 여러 권을 읽게 되니 2주가 빠듯했다. 대출하는 책 욕심이 늘어나면서 도서관 웹페이지를 핸드폰 홈화면에 추가했다. 지혜는 퇴근길 도서관 책을 대출하는 그 자리에서 반납일을 1주일 연장 버튼을 눌러 대여 기간을 3주로 세팅하고 도서관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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