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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Sep 03. 2024

난 생 처음 독서 모임_아줌마도 껴줘요

4화_다시 찾은 내 이름

지혜는 당근마켓에서 검색으로 찾은 동네 독서 모임 채팅방에 간단한 인사를 하고 토요일에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독서 모임이 처음인데 혹시 책을 다 읽어야만 참여할 수 있나요?」

「아니요 지혜님, 책을 다 읽지 않으시고 참석하셔도 좋습니다. 저희 모임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함께 만들어나가는 중이에요. 이번 주는 자유 책입니다.」

      

 며칠 동안 지혜는 집 앞에 있는 베트남쌀국수 가게 서빙 아르바이트도 시작했고 독서도 시작했다. 오랜만에 서서 일하니 자신의 다리가 더욱 무겁게 퉁퉁 붓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붓기’ 일까 ‘살’일까, 붓기로 명명하기로 한다. 고작 3시간 하는 일이라지만 가장 바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에 일하는 터라 화장실 한번 맘 편히 갈 여유가 없다. 일을 마치고 나면 기운 없이 30분가량 멍하니 앉아있다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 어느새 아이 어린이집 하원 할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지혜의 모습은 이랬다.

 오며 가며 만나는 어린이집 아이 엄마들과 커피 한잔할 때도 있고, 태권도 학원에 데려다주고 나오면서 마주치는 엄마들과 수다도 떨기도 했었다. 다들 비슷비슷한 시간대에 아이 픽업하고, 늘 마주치던 얼굴을 또 보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할 집안일은 태산 같아 마음은 바빴다. 그러나 분주한 마음과는 달리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다 보면 누구랄 것도 없이 태평하게 커피 한잔을 권하고, 좋다며 흔쾌히 카페에 가서 엄마들의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니 출근한다는 사실이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값으로 쳐주지도 않는 집안일보다 생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고, 어쩌죠? 출근할 준비를 못 하고 나와서... 조만간에 커피 한잔해요~”

“아, 맞다. 일 나간다고 했죠~ 어서 준비하러 가요~”


 도대체 책 읽는 사람들은 언제 시간이 나서 읽을까, 지혜는 궁금하다. 주변만 하더라도 아이 책을 10권씩 대여하러 버스 타고 도서관 가는 엄마들은 많이 봤다. 하지만 그 많은 책을 읽어주면서 자신의 책을 읽는다는 엄마들은 보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역시 한참 손타는 아이 육아하면서 책 읽는 것은 웬만한 결심이 아니고서야 힘들다는 결론을 짓는다.

     

 지혜는 남편에게 이번 주 토요일에 독서 모임에 한번 가보려 한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고깃집 점장인 지혜 남편이나 쌀국숫집에서 일하며 아이 돌보는 지혜나 정신없기로는 마찬가지여서 얼굴 맞댈 일이 거의 없는 부부였다. 중요한 일정은 카톡으로 보내고 있었다. 뭐가 그리 바쁜지 말로 해서는 언제 얘기했었냐고, 못 들었다고 할 때도 있어서 메시지를 보내 놓는 것이 증거 남기기도, 되새기기에도 좋았다.

「어떤 모임? 어디서?」

「어떤 모임이긴, 독서 모임이지. 스터디 카페 안에 스터디룸이 있대. 이번 주에는 한 4명 온대.」

「알았어. 마스크 꼭 쓰고, 다단계 아닌지 항상 조심하고. 뭔 일 있으면 전화해.」     

 엄마들끼리 단지 주변에서 만난 이야기만 듣던 지혜의 남편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모임에 간다는 것이 경계가 되는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젊은 시절에 친구 따라 불법 다단계판매도 다녀와 본 적 있는 터였다. 굳이 말리진 않겠으나 조심, 또 조심. 단단히 일러두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 3시 독서 모임.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한 스터디룸이다. 지혜는 며칠 동안 읽다가 만 책을 가지고 왔다. 두리번거리며 입구를 기웃대다가 지혜는 눈이 마주친 눈이 예쁜 여자에게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였다. 밀거래라도 하러 만난 사람들처럼 마스크를 쓰고 눈인사를 나눴다. 사진으로 봤던 33살의 모임장 초연은 눈이 사진 보다 더 생기 있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네, 지혜님? 저랑 이쪽으로 가시죠.”

도훈 엄마로만 불리다가 ‘지혜+님’까지 붙여진 조합에 왠지 낯설기도 하고 부끄럽다. 단톡방에서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님’이라고 부르는 분위기였다.

 안내를 받아 아늑해 보이는 스터디룸에 앉았다. 스터디카페도 처음 왔는데 4인 테이블에 노트북 2개가 펼쳐져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미리 와서 무슨 업무라도 본 모양이다. 

    

“한 분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오늘은 셋이서 모이게 되었어요. 지금부터 3시간까지 스터디룸 사용시간이에요. 그럼 시작할까요?”

“네~ 여기 질문지 우선 드릴게요.” 27세의 남자 현준이 질문지를 컬러로 인쇄된 종이 한 장을 주었다. 카톡 오픈 채팅에 공지된 질문지다.

“감사합니다.”하며 지혜는 책과 비슷한 크기의 노트와 펜도 함께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첫 번째 질문에 자기소개 (이름, 나이, 책 관심분야, MBTI)라고 적혀있다.


“우선 1번 질문 자기소개, 저부터 할게요. 저는 정초연이라고 하고요. 나이는 서른셋이에요. 검단신도시에 살고 서울에 있는 소아과에서 간호사로 있어요. 관심사는 심리학이고 MBTI는 ESFJ이고요.”

지혜는 소심하게 소리가 날 듯 말 듯 손가락끼리만 부딪는 박수를 친다. 

“안녕하세요, 저는 27세 배현준이고요. 저는 김포에 살고 빈티지 의류 쇼핑몰 하고 있어요. MBTI는 ENFJ에요. 관심 분야는 자기 계발서입니다. ”     

 지혜는 저도 모르게 기가 꺾인다. 간호사와 쇼핑몰 사장님. 도대체 자신은 저 나이에 뭐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결혼 준비를 했고, 결혼을 했다. 작은 회사 다니면서 주말에 남편의 죽마고우 친구들을 따라 여행 다니고, 술 마시고. 즐거운 시절이긴 했다. 그러나 이 두 명처럼 독서 모임 같은 건 생각도 안 해 본 시절이었다고 지혜는 회상했다. 


“저는... 신지혜라고 합니다. 마흔이고요, 검단에 살고요~ 6살짜리 아들 하나 있고, 지금은 낮에만 쌀국숫집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때 ‘타닥 다다다닥’, 양 편에서 키보드 치는 소리에 지혜는 깜짝 놀란다. 지혜의 동공이 부지런히 떨고 있다.

“아, 저, 노트북으로 독서 모임 하는 거예요? 저는 노트북이 없는데... 아.. 요즘 분들은 노트북에 적는 게 편하시구나! 저는 그냥 종이 노트 들고 왔어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지혜의 표정.

그 모습을 본 두 사람은 깜빡했다는 듯이 노트북을 가방에 집어넣고 볼펜을 꺼낸다. 지혜를 위한 배려다. 드디어 기자회견이 끝난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자기소개에서 '마흔'이라는 나이를 말하고 어린 친구들 사이에 있으니 그 자체로 주눅이 든다.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되었던가? 저 친구들이 어린데도 불구하고 철이 빨리 들어서 독서 모임을 만들고 이 자리에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눈치 없는 늦깎이 신입생인 걸까? 그래도 모임원을 모집하는 글에서 20~50세라고 적혀있었으니 많은 나이 아니겠지? 꼭 이력서 지원할 때 심정 같구나!'

 마음속은 태풍인데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저의 관심분야 책은... 자기 계발서? 육아서? 많이 읽어 본건 아니지만요. MBTI는 ‘INTP’로 나왔네요.”     

“아~ 지혜님 T예요?”

초연은 배시시 웃는다.

“네, 동생이 그러던데요, 언니는 ‘사회화된 T’인 것 같다고요.^^ ”

지혜도 배시시 웃는다.

 어릴 적엔 혈액형별 성격에 대한 편견이 전부였는데, MBTI 결과가 ‘T’인 지혜는 초면부터 ‘T예요?’라는 말 한마디에 변론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 씁쓸했다. 성격유형 테스트에서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중에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T와 F이다. 판단 기능이 사고형인 ‘T’와 감정형인 ‘F’로 분류되는 것이 어째서 ‘공감 능력이 있냐, 없냐’가 되는 것인지 알 수없다.

 사람을 16가지로 분류하는 이유도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답을 구하기 위해 역술인을 찾아가듯 테스트하고, 상대를 간파해 보려는 시도로 편견을 씌운 뒤 그 틀 안에서 이해를 해보려는 노력이기도 할 것이다.

 막상 MBTI 결과가 사교성 좋아 보이는 E로 시작해서 T대신 F로 분류되는 두 사람은 다만 지혜에게 ‘T’인지를 물었었다. 어린 시절에 꿍하고 있는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너 스몰 a형이지?’ 또는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버럭 화내고 가버리는 친구를 보고 ‘어우, 저 B형’이라고 얘기하던 것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두 번째 질문으로 갈게요. 읽은 책에서 와닿는 문장이 있었나요?”

 모임장 초연이 두 번째 질문을 말하며 현준을 바라본다.     

“네, 저는 허브 코헨의 「협상의 기술 1」(김영사)을 읽었는데요. 첫 출간이 1982년이라네요. 한국어판은 2021년도에 처음 인쇄 되었고요.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나온 책인데도 협상의 본질이 안 변한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245쪽 문장인데요. ‘성공적인 협력적 협상은 상대측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상대측에게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와닿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비즈니스 관계, 그러니까 거래처 간에 협의할 때 가능한 얘기고, 고객이 전화 와서 진상 부리면 대부분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료반품이에요. 길게 끌 것도 없이 환불해 주라고 직원들한테 얘기하죠. 전화 붙들고 실랑이하느라 시간 다 빼앗기면 우리가 손해예요. 직원은 감정 소모전 겪고, 제때 일 못 끝나서 야근하면 연장수당 받고도 퇴사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거든요. 신경 덜 쓰고 한 개라도 더 파는 게 낫더라고요.”

“콜센터에 전화 걸면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니 따뜻하게 대해 달라’는 멘트가 나와도 막무가내인 고객이 있나 보네요?” 지혜가 물었다.     

“네, 쿠팡 같은 이커머스에서는 멤버십 정액제 요금 내면서 로켓 배송, 무료 반품이 가능한데 '스마트 스토어' 판매자들한테 사면 택배비가 아까워서 그럴지도 모르죠.”

      

이번엔 초연이 말했다.

“저는 브라운스톤 저자의 「부의 본능」(토트) 인데요. 부자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되는 9가지 본능이랑 재테크에 관심도 있어서 읽었어요. 음,,150페이지에 ‘부자가 되고 싶다면 남 탓하는 성격부터 고쳐라’라는 말과, 153페이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적응이다’라는 문장인데요, ‘탓’을 하고 있는 버릇이 나도 모르게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환경이 변하면 재빠르게 적응할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혜님은 어떤 책 읽으셨어요?”

       

“네, 저는 서안정 작가님의 「엄마 공부가 끝나면 아이 공부는 시작된다」 책을 읽고 있는데요. 제목이 마음에 쏙 드는 게, 제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고 싶어 졌거든요. 여기서 ‘엄마공부’라는 것이 ‘엄마가 아이 키울 준비’라는 말이겠지만, 저는 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거든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하진 못했는데 이제 와서 좀 후회도 되고요. 163쪽에 ‘아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지금 내가 행복해야 한다’라는 문장을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이제 아이 엄마로서의 희생은 그만하고 저를 좀 더 챙겨보고 싶어요!”


 목소리 톤이 높았는지 스터디카페 사장님이 노크를 한다. 조금만 조용해 달라고, 밖에 공부하시는 분들이 시끄럽다고 민원 들어온다고 한다. 크게 말한 것 같지는 않은데 민원이라니, 괜히 위축되고 민망하다. 방음이 안 되나 보다.      

“저기, 사장님. 스터디룸에서 다른 분들은 회의하는 소리 안 새어 나가나요?”

초연이 사장님께 의아해하며 말했다.

“면접 준비 하시는 분이 혼자 스터디룸을 쓰기도 하고요, 자료가 많거나 조용히 공부하고 싶을 때 쓰지요.”

 카페에서 지난주 모임을 가지다가 모처럼 스터디룸을 예약했었는데 세 명 모두가 다음번에는 그냥 카페에서 만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질문지대로 책을 읽고 실천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인생 책이 있는지 등등 독서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누었다. 조촐한 인원의 첫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가며 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싱글벙글 웃음을 머금었다. 독서 모임 그게 뭐라고, ‘도훈 엄마’가 아니라 오랜만에 되찾은 ‘신지혜’라는 자신의 이름이 벅차오르게 기뻤다.


일찍 퇴근한 그녀의 남편. 

밤 10시 30분인데 벌써 집에 들어왔다.

“자기야, 나 다음 주도 독서 모임 갈려고. 토요일 휴무 잡을 수 있어?”

“내가 토요일마다 쉬면 딴 직원들은 어쩌고? 주말엔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못 쉬지~ 다단계는 아니디~?”     

“아니지 당연히~! 그럼 나 어떡해, 다들 미혼인데 도훈이 데리고 갈 수도 없잖아... 독서 모임 좋더라고. 책 읽고 자기 계발하는 동지들이 있으니까 왠지 습관도 잘 쌓을 수 있을 것 같고. 다음 주에도 가고 싶은데 휴무 진짜 못 내?”

“어쩌냐... 요식업은 주말이 더 바쁜 거 알잖아.” 

 오늘 독서 모임에서 지혜가 ‘아이 엄마로서의 희생은 그만하고 나를 좀 더 챙겨보고 싶어요’라고 당차게 외쳤던 말이 마음속에서 아우성친다. 그 말이 얕게 밀려오는 파도 하나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파묻힌다.


 지혜의 아이가 첫돌 지나고부터 6살이 된 오늘날까지 이사 올 때쯤의 '반년'만 빼고는 파트타이머로 쉬지 않고 직장생활을 한 지혜였다. 아이는 사랑스러웠지만 일과 육아를 혼자 도맡아 하면서 지혜 자신의 삶이 없었다. 풀타임으로 일하면 남편 못지않게 벌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속 편히 직장 생활하며 직원들과 술자리도 잦은 남편에 비하여 지혜의 삶은 어떠한가.

 회식은커녕 남들보다 이른 시간에 퇴근해서 홀로 육아하며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휴일이 단 하루도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아이에게나 회사에나 죄인이 된다. 

'나만 부모인가?' 남편에 대한 원망에 울컥한다.

 이제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려고 뭐 좀 해보려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맺히는 것이다. 


‘내겐 독서 모임도 사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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