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나를 잃어버린 시간들
어릴 적 나는 어디에도 쉽게 속하지 못했다.
피부가 까맣다는 이유로 자주 놀림을 받았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늘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다.
'아프리카 띠까띠까'
그게 처음 나에게 붙은 별명이였다.
친구들과 같이 있고 싶어 역할놀이를 할 때면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문' 역할이라도 하며 그 자리에 남아 있으려 했다.
문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중심에 서지 않아도 되는 역할.
어린이집에서의 나는
늘 눈치를 먼저 보는 아이였다.
하지만 동네에서의 나는 달랐다.
시골 마을에서 자란 나는
마을이 떠들썩할 만큼 시끄러운 아이였다.
해가 질 때까지 밖에서 뛰어놀았고,
우리만의 기지를 만들러 다녔다.
여름이면 메뚜기를 잡아 튀겨 먹었고,
겨울이면 쌀포대를 끌고 산에 올라 썰매를 탔다.
늘 뛰고 넘어지기를 반복해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피부가 까무잡잡했던 이유에는
그 시간들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조용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저, 안전한 곳에서만 시끄러운 아이였다.
어른들의 시선은 어린이집에서 특히 더 차갑게 느껴졌다.
집이 가난해서였을까,
선생님들은 나를 다른 아이들처럼 애틋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어느 날, 의자를 벽 삼아 뛰어오르다
이불장 모서리에 입술을 부딪혀 피가 흘렀다.
하지만 다친 나를 본 어른은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얌전하게 놀지 왜 말썽을 부리냐며 혼을 냈고, 꿀밤을 주었다.
그 순간,
아이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나에게 쏠렸다.
그 시선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설명할 언어가 없었고,
말을 꺼내도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골목길에서 작은 교통사고가 나 무릎이 찢어져 피가 나도,
칼에 손가락이 베여 두루마리 휴지에 피가 잔뜩 묻어나도
나는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픈 것보다
지적받는게 더 무서웠고,
상처보다
시선이 더 아팠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부터
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말해도 되는 순간에도 망설였고,
들어가도 되는 자리 앞에서 멈췄다.
괜히 튀지 않기 위해,
괜히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는 자꾸 나를 뒤로 물렸다.
그 당시에 나는
문처럼 살았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손잡이를 잡지 않는 사람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세상의 시선을 너무 일찍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배움은
오래도록 나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문 앞에 서서 망설이는 아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