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집안 사정 때문에 떠맡겨지듯 혼자 할머니댁으로 보내져서, 나는 잔뜩 뿔이 났던 것 같다. 며칠을 밥도 먹지 않고 심술을 부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할머니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배곯는 허기에 심술이 한 풀 꺾일 즈음, "먹고 싶은 것 없니?"라는 할머니의 말이 반가웠다.
나는 떡볶이라고 대답했다. 오래 굶어서 맵고 단것이 먹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할머니가 찌개를 한 솥 끓일 때 쓰는 냄비에 처음 보는 음식을 담아오셨다. 어묵 하나 없이, 얇게 썰린 떡국떡이 가득 담긴 고추장국이었다.
며칠 만에 먹는 음식을 기대했던 터라 짜증이 솟구쳤다. 데굴데굴 구르며 울어 재꼈다.
할머니가 불같이 화를 냈다. 엉덩이도 몇 대 맞았다. 할머니가 잘못한 건데 왜 내가 혼나야 하는지 억울해서 더 크게 울었다. 할머니가 방 한쪽으로 자리를 피해 고개를 돌리고 앉으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훌쩍였다.
사실 할머니는 떡볶이라는 음식을 몰랐다. 아직도 빨래터가 있던 외딴 농촌에 사는 할머니는 떡볶이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 먹어본 적이 있었다고 해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점방이라고 불렀던 마을의 구멍가게에는 떡볶이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떡볶이가 먹고 싶다던 손자를 위해 할머니는 이웃집에서 과외를 받았다. 읍내에서 농협을 다니는 아주머니께 떡볶이란 음식에 대해서 듣고 오신 것이다. 그런데 글을 몰랐던 할머니는 메모를 할 수가 없었고, 오롯이 들었던 기억에만 의존해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만드셨다. 게다가 재료도 변변찮았으니 어찌 보면 고추장 떡국이 나온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땐 미처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할머니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이었다. 불같이 화를 쏟아냈던 대상은 내가 아니라, 할머니 자신이었다.
손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줄 몰랐던 할머니, 글을 배우지 못해 만드는 법을 적어오지 못한 할머니, 부모와 떨어져 속상한 손자를 더 속상하게 했던 할머니는 자신에게 화가 났고 손자에게 미안했다.